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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와 부모 사이

부부에서 부모로

by 강시루

22년 9월 4일,

부부와 부모 사이


결혼 전 나는 출산은 하지 않겠다는 아내 의견을 수용했다. 정상가족 신화가 깨진 지 오래라는 점에 공감했기에 별로 어렵진 않았다. 혼자든, 딩크든, 유자녀든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다. '인생에 정해진 답이 없다'는 클리셰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가장 중요한 가치는 바로 현재의 행복이다.


고도성장기 청소년기를 보낸 한국인 대부분은 행복을 유예하는 데 익숙하다. 우리 부부도 그 정규분포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았다. 다르게 살려고 했지만, 남들만큼 평범하게 사는 것도 힘들다는 걸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초 경쟁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가 앞만 보고 달려가서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없었던 탓이 크다. 멀리서 파랑새를 찾았고 미래를 위해 현재의 즐거움을 포기하는 법을 힘겹게 배웠다.


우리 부부는 그래도 운 좋게 많은 시간을 함께하며,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잘 보면 사람들은 자신의 사고방식을 기본값으로 주위 사람도 자신과 비슷하게 생각할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또 다른 사람의 삶에 큰 관심이 없고, 그렇게 관심을 가질만한 여유도 없다. 이렇게 일정 수준 정형화된 기본값이 널리 통용될수록 우리가 해야 할 역할놀이, 부부에서 남편과 아내가 할 일 즉 부모의 기대 역할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우리 둘은 오늘날 한국 사회가 둘이서 살아내기도 힘든 세상이란 데 동의했다. 나이가 들수록 그 생각에는 이견을 내기 어려웠다. 세상을 살아가는 일반 법칙이 모두에 적용할 순 없지만, 많은 이들이 사는 보편적 방법이 있긴 했다. 부모가 된 어른 모두, 가족계획에 따라 아이를 갖는 것은 아니다. 어쩌다 부모가 되고, 아이를 보며 팍팍한 현실을 버텨낸다. 우리 둘은 최소한 그렇게 부모가 되고 싶진 않았다.


고약한 현실을 버텨내 얻는 성과가 고작 부조리한 직장에서의 '어떤 성취'라면 굳이 이뤄내고 싶지 않았다. 우리 부부는 결혼 생활 5년 동안 아이를 낳아 키울 생각이 없었기에 아이가 없는 미래를 구체화하는데 열심이었다. 그러다 아이가 생기면서 정상가족 범주에서 벗어난 미래를 상상하기 어렵다는 점을 비교적 최근에 깨달았다. 그만큼 정상가족 신화는 우리 사회에서 강력했다. 정상가족 신화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느껴졌다.


아이가 태어난 이상 이제 우리는 좋은 부모가 되기로 했다. 부부와 부모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 모든 부부가 부모가 되진 않지만 부모가 된 이들은 부부, 또는 그와 비슷한 관계였다. 과거에는 부부의 연을 맺은 이들은 거의 모두 부모가 됐다. 그러나 요즘은 부모가 되는 건 선택의 영역이 됐다. 부부, 전 단계인 결혼을 필수로 보지 않는 이들이 상당수가 됐으므로 부모 되기를 택할 수 있다는 건 당연했다.


그러나 정상가족 신화가 작동하고 있는 사회에서 비혼, 딩크족으로 살아가기 어려운 건 또 다른 현실이다. 앞선 세대에서 본보기를 찾기 어려운 탓도 있다. 서구 사회에는 다양한 가족 유형이 존재하지만, 우리 사회 내 가족 형태는 획일적이다. 아내는 부부로 잘 살아온 우리가 부모가 되면서 겪게 될 어려움에 대해 우려하는 듯했다. 나도 경험해보지 않았기에 막연한 두려움이 앞섰다. 주변 지인들은 아무리 부부로 잘 지냈더라도 아이를 키우면서는 갈등을 피하기 어렵다고 했다.


아내는 출산 전, 부부로 인연을 맺은 우리 둘이 어렵게 이뤄낸 관계의 균형이 무너질까 두렵다고 했다. 부부에서 부모가 되고 그 역할을 해내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찾을 답이었다면 이렇게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을 것 같기도 했다. 부부가 되면서 그랬던 것처럼 현실과 부딪치면서 그때그때 적절한 해법을 찾아야 할 것 같다.


가보지 않은 길이라 막연히 두려운 것도 어쩌면 자연스럽다. 그러나 나는 그간 부부로 잘 지내온 우리가, 우리를 찾아온 아이와 함께 가족이란 관계의 새 균형점을 찾아갈 것으로 확신한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부부가 되면서 그랬던 것처럼 우리 셋도 그렇게 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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