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조리원
22년 8월 28일,
산후조리원과 불편한 동거
조리원으로 옮긴 지 거의 1주일이 됐다. 아내는 조리원 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조리원 입소 전후로 바뀐 조리원에 대한 내 생각은 곰곰이 되새겨 봐야 한다. 남자란 이유로 조리원 생활에 대해선 인터넷 후기, '산후조리원'이라는 드라마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만 접했다. 직접 경험해 본 지인이 없었던 탓에 조리원 생활은 흔히 말하듯 ‘폭풍전야’로만 생각했다.
육아가 워낙 힘들고 우여곡절이 많다는 얘기를 들은 탓도 있다. 또 임신 때는 아이가 빨리 나왔으면 하는 심정이지만, 아이가 일단 나오고 나면 임신 기간이 호시절이란 말도 했다. 드라마에서 그려진 조리원 생활은 개인마다 달랐지만, 그래도 임신과 출산으로 지친 여성이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모습이 일부 있었다. 내 짧은 결론은 산후조리원 생활 자체가 작은 폭풍이었다. 드라마에서 허구, 과장이 많을 것으로 생각하며 봤던 몇몇 요소가 역시, 우리를 불편하게 했다.
입소 전에는 사회와는 다른 관계 정의, 빈번한 수유 콜, 프로그램 등 바쁜 일정, 부모나 친지 등의 방문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우리의 평화를 깰 것 같았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다른 산모와의 접촉, 외부인 방문이 제한됐기에 몇 가지는 애초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우리는 조리원 예약을 할 때부터 배우자를 제외한 다른 사람의 출입을 통제한다는 사실을 알고, 여러모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의외의 암초가 있었다. 조리원에서의 생활을 모두 파악하긴 어렵지만, 주말 이틀을 조리원에서 보내면서 어느 정도 짐작할 순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수유였다. 신생아의 수면 패턴이 아직 안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는 1~2시간마다 잠에서 깼다. 긴 잠을 오래 잘 수 없다는 점은 알고 있었지만, 문제는 아이가 일어나면 바로 먹어야 한다는 점이다. 모유를 직접 수유하거나, 유축기로 저장한 모유나 분유를 신속하게 먹여야 했다. 수유 방법은 몇 가지로 압축됐지만, 이게 말처럼 쉽게 되진 않았다. 글로는 간략히 정리가 되지만, 실전은 복잡하고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직접 수유를 하는 방법은 아이와 엄마의 호흡이 잘 맞아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와 엄마 둘 다 힘만 빼고 별 소득을 얻지 못하는 때가 많았다. 유축기로 저장한 모유를 먹이는 방법은 언제 아이가 잠에서 깰지 모르기 때문에 시간이 나는 대로 모유를 최대한 많이 유축해야 했다. 저장 방식은 매우 단순하고 무식했다. 젖소가 불쌍해 앞으로는 우유를 먹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게 할 정도였다.
마지막, 분유를 먹이는 방식은 그나마 합리적 대안으로 느껴졌다. 분유는 조리원 직원들이 아이가 일어나면 이를 준비해 먹이는 방식이다. 수유는 다음과 같은 절차로 이뤄진다. 1) 아이가 잠을 잔다. 2) 잠에서 깬다. 3) 조리원 직원들은 엄마에게 모유를 수유할지, 분유를 먹일지 묻는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엄마는 완벽하게 독립적 선택을 할 수 없다. 직원들은 그런 의도가 아닐 테지만, 엄마는 모유 수유를 못 하겠다는 말을 어렵게 꺼내야 했다.
산후조리원은 전 세계 어느 곳에도 없는 시스템이다. 출산 후, 산모의 회복과 아이의 적응을 돕는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생각했다. 하루아침에 엄마가 된 여성에 실질적 도움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산업이 된 산후조리원은 본인의 정체성 변화로 대혼란을 겪고 있을 여성에 모성을 강요한다는 점에선 문제다. 전통적 모성이란 것이 하루아침에 형성되는 것도 아니고, 여성에게만 강요할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 그렇다. 또 모유 수유를 하지 않는다고 모성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여성 경제활동 인구가 늘었고, 남성이 전통 엄마 역할을 하는 경우도 꽤 있다는 점에서 엄마 역할을 여성에게만 강요하는 것은 무리다. 각 가정이 독립 개체이므로 각자 상황에 맞게 '합의한' 엄마, 아빠 역할을 나눠 수행하면 된다. 또 사회적으로 양육 체계를 더 잘 구축하면 남녀 모두 일-가정의 양립을 걱정하지 않고, 경제활동에 집중할 수 있다. 여기에는 정답이 없고, 답을 찾아가는 긴 여정 일지 모른다.
이런 면에선 변화가 느린 한국 사회에서 이 인식이 널리 퍼질지 의문이다. 분명, 좋은 뜻에서 엄마 역할을 여성에게 강요하는 분위기는 당장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 측면에서 산후조리원이 산후 여성의 회복, 신생아 육아를 외주로 확실히 맡아준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외주가 보다 상식 선에서 이뤄진다면 보다 많은 이들이 출산을 꿈꿀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