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수에 대해 알아가고 있어요
22년 9월 10일,
은수라는 세계
은수가 세상에 나온 지 24일째다. 조리원 생활도 막바지에 이르며, 은수도 이제 신생아 딱지를 떼게 됐다. 통상 생후 한 달을 '신생아'라고 한다는 것도 조리원에서 처음 알았다. 갓 부모가 된 우리 부부는 뭘 모르는지도 모른 채 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부모가 되니 그전에는 감히 하지 못한 생각,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 지나간다. 쉽게 설명할 수 없지만 부모가 된 이들끼리는 어렵지 않게 공감할 수 있을 법한 것이다.
아무리 공부를 하고 준비한다고 해도 부모가 되는 길은 불확실성의 연속이다. 이제 겨우 삶이 예측하기 힘들다는 것을 조금 알게 됐는데, 부모가 된 우리는 더 자주 모호함을 마주할 것이다. 아이라는 존재로 인해 우리 부부, 가족이 더 큰 불확실성에 맞서게 된 것이 분명해서다. 아무리 계획을 세워도 인생에서 그대로 되는 일이 얼마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우리가 그 부질없는 노력을 계속해야 하는 건 이제 숙명이다.
삶을 어떻게든 살아가고, 시간을 이겨내려는 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끊임없이 계획을 세우고, 또 그것을 수정하는 것일지 모른다. 은수가 우리에게 찾아온 것도 그와 같은 맥락에서였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우리 부부는 아이를 낳지 않을 계획이 확고하지 않았다. 결혼 전에 딩크족으로 살기로 약속했지만, 살면서 아이를 낳을지 말지의 경계가 옅어질 만큼 결혼생활은 달콤했다.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결심이 분명하지 않다면 아이를 갖게 되는 게 당연한 수순으로 보였다.
우리 부부는 많은 면에서 비슷했다. 가치관, 기질 면에서 맞지 않는 대목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나는 세상에서 말이 잘 통하고 내 마음을 잘 이해하는 이로 아내를 꼽을 수 있다. 아내 역시 나를 그런 좋은 파트너로 볼 거라고 확신한다. 삶의 불가측성을 이겨낼 유일한 우리의 무기는 서로에 대한 신뢰라고 생각한다. 많은 이들이 공감하겠지만, 누군가를 잘 안다 또는 이해한다는 것은 상당히 오만한 생각이다. 그만큼 서로가 서로를 촘촘히 지켜보고, 끊임없이 배려해도 도달하기 어려운 경지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내와 많은 얘기를 하는 편이다. 그 이유는 서로의 지난한 일상을 공유하면 어느 순간 절대 극복하지 못할 것 같던 문제도 사소한 것이 되는 마법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여러 고비를 넘겨 여기까지 왔다. 결코 짧은 세월이라 할 수 없는 지난 결혼생활 5년은 그렇게 채워졌다. 우리는 우리 부부에게 찾아온 은수라는 아이에 대해 열심히 알아갈 것이다. 은수를 만난 지 20여 일이 지난 현재, 무장해제된 채 전쟁터에 나가야 하는 군인의 심정이지만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하나하나 우리에 맞는 해법을 찾아갈 것이다.
은수는 순한 아이 같다. 출산 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찾아간 조리원에서 은수는 큰 울음을 터뜨리지 않았다. 옆방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는 차원이 달랐다.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신생아실 직원 분들께 은수가 밤사이 어떻게 지내는지 물었다. 퇴소를 며칠 앞둔 상황이었으므로, 추후 혹시 모를 변수를 미리 파악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아이의 수유, 수면, 놀이 등에 대한 패턴을 알아두면 좋을 것 같단 생각에서였다.
여러 직원에게 물어봤는데 답은 비슷했다. 첫째, 은수는 다루기 편한 아이라는 평이 많았다. 대체로 순한 편이어서 불편한 상황을 잘 견뎌준다고 했다. 둘째, 은수는 현재 하루 8회 정도 수유를 한다고 했다. 3시간마다 한 번 정도 수유를 하는 것이니 2~3시간은 놀든지 잠을 잔다는 의미였다. 셋째, 수유할 때 똘똘하게 잘 찾아 많이 먹는다고 했다. 신생아는 잘 먹고 잘 자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으니 이보다 좋은 평은 없었다.
은수가 정말 어떤 아이인지는 이제 하루를 온전히 같이 보내면서 더 잘 알게 될 것이다. 우리 부부가 서로라는 우주를 만나 함께하게 된 것처럼, 은수도 우리에게 신세계가 될 것이다. 우리 삶의 그 어느 시점보다 불확실성이 커졌지만, 인생에서 이보다 더 즐거운 여정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우리는 신대륙을 발견한 이들처럼 '은수라는 세계'를 항해하는 탐험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