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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둥이를 만나고

새 생명의 탄생

by 강시루 Oct 30.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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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8월 18일,

둥둥이를 만나고


밤새 둥둥이를 볼 수 있다는 설렘보다, 수술을 앞두고 있는 아내 걱정에 잠을 거의 못 잤다. 아내도 옆에서 뒤척이며 깊은 잠에 들지 못한 것 같다. 그럴 수밖에 없는 날이었다. 임신 기간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겠지만 하루하루, 그냥 쉽게 지나가는 것이 아니다. 아내는 매 순간을 잘 버텨냈다. 오늘도 새벽부터 부산하게 움직인 아내는 병원에 갈 채비를 서둘렀다. 새벽에 겨우 다시 잠이 든 나는 늑장을 피울 수 없어 바로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켰다.


평소 쉽게 걸어가던 거리도 멀게 느껴진다. 둥둥이를 만날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마음 한 구석 설렘은 긴장으로 바뀌었다. 임신을 몸으로 직접 겪지 않은 내가 이러니, 아내는 더 힘들 게 뻔했다. 며칠 전부터 하나씩 필요한 짐을 쌓아 둔 가방을 메고, 우리는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평소라면 걸어가도 될 거리였으나 마을버스를 타기로 했다. 버스는 출근하는 사람들로 복잡했다. 이내 버스는 병원에 닿았는데, 그나마 가깝고 익숙한 길이라 다행이었다.


날씨는 이제 가을날 같았다. 시원한 바람이 이마에 닿는 느낌이 상쾌했다. 아침 첫 수술이라 병원에는 오전 7시에 맞춰 갔다. 아내가 오늘 출산을 잘 이겨내기를 내가 아는 모든 신들에게 빌었다. 불가지론자로 살아왔지만, 오늘만큼은 마음속으로 절절한 기도를 했다. 어제는 수술을 앞두고 긴장한 아내에게, 오늘을 둥둥이를 만나러 가는 여행이라고 생각하자고 했다. 분만일이라고 하면 느껴질 큰 무게감을 덜어내고 싶었다. 오늘은 둥둥이를 만나는 여행, 그중에서도 여정의 끝인 셈이다. 10개월 동안의 여행을 마치는 오늘, 건강한 둥둥이를 무사히 만나면 좋겠다.


수술을 준비하는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간호사의 여러 작업은 루틴으로 보였지만, 우리 둘에겐 하나하나 모두 조심스럽기만 했다. 모르는 것이 많아 묻고 싶은 것이 있었지만, 묻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고 부모가 된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았다. 임신과 출산은 아무리 준비하고 공부해도 제대로 대비할 수 없는 그런 일이었다. 하나 분명한 점은 아내가 수술 날인 오늘까지 힘을 내 씩씩하게 마지막 여정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간은 그렇게 또 흘러, 예정된 수술 시간이 됐다. 남편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아내와 헤어져야 하는 수술실 복도는 어두운 터널과 같았다. 수술 전, 의사는 내게 수술 절차를 간단히 설명했다.


여러 층위로 복잡하게 흘러가는 것 같은 한 인간의 삶은, 어쩌면 '무작위' 운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제발 오늘은 내게 행운이 찾아오길 바라야만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무사히 산모와 둥둥이를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었다. 내가 외롭게 서 있는 이곳은 아내가 차가운 메스를 마주할 수술실보다 안락한 곳이다. 1초, 1초 시간이 흘러 수술실 쪽 전동문 너머로 아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귀를 더 가까이 대고 소리를 더 찾았다. 울음소리는 우렁찼다. 여러 벽으로 막혀 있어 깨끗이 들리진 않았지만, 분명 큰 소리였다. 또 한 번 아내가 무사히 수술을 잘 버텨내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수술이 시작된 지 40여 분이 지나고, 신생아실 간호사가 보호자를 찾았다. 아이는 오전 9시 14분, 건강하게 잘 태어났다고 내게 전했다. 드디어 둥둥이가 세상의 빛을 본 것이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 순간이다. 새 생명에 대한 경이로움은 바로 현실로 덧칠됐다. 둥둥이가 세상에 마주 설 수 있도록 도와줄 무기가 필요했다. 여러 의료적 절차에 대한 보호자 동의가 필요했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둥둥이를 만났다. 아내 배 속에서 열 달을 보낸 아이가 세상 밖에 나와 있었다. 간호사 품에 안긴 둥둥이는 너무 작았다. 생각보다 더 작아 너무 놀랐다. 둥둥이를 본 찰나의 시간은 놀라움으로 가득 찼다. 눈을 깜빡이는 모습은 더 놀라웠다. 인형보다 작은 둥둥이 얼굴에 내 얼굴, 아내의 얼굴이 보였다. 둥둥이의 작고, 신비로운 몸짓은 나를 경건하게 만들었다. 아빠가 된 나, 엄마가 된 아내가 앞으로 둥둥이와 어떤 가족을 이뤄나갈지 궁금하다.


둥둥이를 만나러 온 여행은 그렇게 끝났지만, 둥둥이와 함께할 우리 세 가족의 여정은 이제 시작이다. 아내, 또 건강한 둥둥이와 함께라서 그 여정이 기대되고, 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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