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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책방 May 13. 2024

파혼, 이루지 못한 사랑

인간실격, 아무것도 되지 못한 나의 이야기

막 성인이 되면서부터 서른이 넘어서까지 십수 년 동안 반복되던 꿈이 있었다. 꿈의 배경은 항상 결혼식장이었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나는 계속 고민을 하고 갈등을 하다가 결국은 신부 입장 순서 직전에 돌아서서 예식장을 나가버리거나 입장을 하는 도중에 돌아서서 예식장을 나가버리는 꿈이었다. 십수 년 동안 해마다 여러 차례 씩 반복되던 꿈은 그것이 현실이 되고 나서야 멈추게 되었다. 좋은 인연을 만나는 것도 인생의 큰 행운일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나는 무엇 하나 쉽게 가져본 적이 없었다. 누군가는 태어나면서부터 갖고 태어나거나 살면서 쉽게 손에 쥘 수 있는 것들을 나는 피나는 노력을 해야만 얻을 수 있었다. 그것은 꼭 물질적인 것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사랑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평생을 함께 할 운명의 짝을 만난다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 치열한 삶을 살아내느라 친목모임이나 동호회 활동은커녕 취미생활조차 하지 못했고 직장도 여성 성비가 많은 직장을 주로 다녔기 때문에  또래의 친구들에 비해 연애 경험의 횟수가 적었는데, 20대 초반에 잠깐 아르바이트를 했던 곳에서 만난 7살 연상의 남자와 만나 연애를 한 것이 처음 경험해 보는 ‘사랑’이었던 것 같다. 그와의 연애는 매우 강렬했다. 그는 모든 것을 나에게 맞춰주었고 아낌없는 사랑을 주었다. 지금 생각을 해봐도 부모가 아닌 사람이 그렇게까지 나를 사랑해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는 나에게 헌신적이고 무한한 사랑을 주었다. 아주 오래 지난 일이지만 나를 바라보던 그의 눈빛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 당시에도 벅찬 감정에 찬 그의 눈빛을 보며 ‘아.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의 눈빛은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내 주변 지인들조차 나를 향한 그의 사랑에 감탄을 할 때가 많았다. 우리의 사랑은 뜨겁고 강렬했지만 현실적인 문제들에 부딪혀 끝내 그 사랑은 완성되지 못했다. 그는 서른을 넘긴 나이에 다니던 회사가 부도가 나는 바람에 실직을 하게 되었다. 오랜 기간 동안 그는 새로운 직장을 구하지 못했는데 그러다 보니 경제적으로 많이 어려워지게 되었고, 나는 앞으로의 그의 진로에 대해 같이 고민하며 여러 가지 제안도 해보았지만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자포자기라도 한 듯 움츠러들었고 그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적극적인 시도를 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답답해하던 나는 여러 번 이별을 고했지만 그를 향한 애정과 측은한 마음 때문에 헤어지고 다시 만나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게 되었다. 하지만 상황은 점점 악화되어 그는 카드대금이 연체되고 많은 빚까지 지게 되는 상황이 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소극적인 그의 태도에 결국 이별을 택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를 버렸다는 죄책감과 다신 그를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오랜 기간 동안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되었는데 무려 1년 정도를 밥을 제대로 먹지 못했고 겨우 밥을 먹고 난 후에는 구토를 했다. 하루에 세끼를 먹으면 끼니를 먹은 후마다 세 번을 구토를 할 때도 있었다. 그를 향한 그리움을 잊기 위해 나는 주말 아르바이트까지 하며 몸을 혹사시켰다. 일주일에 하루도 쉬지 못하고 일을 하다 보니 체력이 바닥이 나버렸고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그를 떠 올릴 틈도 없이 지쳐 쓰러져 잠이 들어버렸다. 그렇게 일 년을 보내고 나니 격했던 슬픔이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주변 친구들을 둘러봐도 누구도 이렇게 심한 이별 후유증을 겪는 사람은 없었다. 남들보다 예민한 감정을 타고난 나는, 이별의 대가도 혹독하게 치러내야 했고 다음 사랑을 하기가 두려워졌다. 어마어마한 이별의 고통을 또다시 감당해 낼 자신이 없었고 그렇게 나는 오랜시간을 혼자 지내게 되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우연한 기회로 두 번째 사람을 만나게 되었는데 다시 연애를 시작하게 되자 억눌러왔던 첫사랑에 대한 기억과 그리움이 올라왔고 이전의 사람과 자꾸 비교하는 마음이 생겼다. 새로운 사람에 집중을 하지 못했고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친구들은 너무나도 착했던 이전 사람에 대해 “세상에 그런 사람은 다신 없을 거다. 그런 만남을 기대하면 안 된다” 고 조언했지만 얼마 못 가 그렇게 두 번째 연애가 끝나버렸고 이후에도 비슷한 짧은 만남이 몇 번 스쳐 지나갔을 뿐이었다. 어느새 주변 친구들은 하나, 둘씩 결혼을 하기 시작했고 나는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결혼에 대한 대단한 로망이나 환상은 없었지만 그저 때가 되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사는 것이 평범한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의 엄마와 나의 관계가 그렇듯 예쁜 딸아이를 낳아 정서적 교감을 나누고 친구처럼 지내고 싶은 꿈이 있었다. 나는 소개팅뿐만 아니라 어른들이 주선해 주시는 선도 마다하지 않으며 인연을 만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다. 다양한 직업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만남의 기회를 가졌는데 대부분이 나보다는 좋은 환경 속에서 순조롭고 편안한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조건상으로는 나에게 과분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좀처럼 호감이 생기질 않았다. 그러던 중에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람을 소개받게 되었는데 대화가 잘 통했고 선하고 차분한 느낌이 들었다. 이후 그와 몇 차례 만남을 더 가지게 되었고 그렇게 그와 연인으로 관계가 발전하게 되었다. 나는 유약한 아버지를 보면서 성장한 탓에 늘 터프하고 강인한 사람을 이상형으로 꼽았는데 이상하게도 내가 선택한 사람들은 모두가 내 이상형과는 정반대 되는 사람들이었고 모두가 선한 성품을 가지고 있었지만 강인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사람은 익숙한 것에 끌리는 것인지, 항상 남자답고 리더십 있는 강인한 남자를 선호한다고 말하면서도 막상 그런 남자들을 만나면 거부감이 들곤 했다.

그는 대학교를 졸업한 후 부모님의 금전적인 지원을 받아 여러 사업을 해왔고 현재는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는데 사회경험이 전무한 상태에서 사업을 시작했고 매번 사업에 실패할 때마다 다시 부모님의 지원을 받아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던 것 같았다. 그는 놀라울 정도로 세상 물정에 어두웠고 유약하기 이를 데 없었다. 선한 성품에 이끌려 만남이 시작되었지만 내가 가장 싫어하는 부분들을 가지고 있었기에 만남을 이어가면서도 늘 반신반의하는 마음이 계속되었다. 그와의 만남을 주선해 준 사람은 이런 고민을 가지고 있는 나를 회유했는데, 남자의 부모님이 경제력이 있고 사람이 착해서 너의 말을 잘 따를 테니 네가 리드를 잘한다면 결혼을 하더라도 어려움 없이 살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연애를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이미 호감을 가지고 만남이 시작된 후에는 상대방의 단점이 보이더라도 관계를 끊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와 그렇게 일 년여쯤 만남을 이어가고 있을 무렵, 자연스럽게 결혼 얘기가 오가게 되었고 어느새 결혼 준비를 하게 되었다. 나는 자립심도 없고 우유부단한 그를 보며 답답한 마음이 들 때가 많았지만 어쩌면 독립적이고 주장이 강한 나와는 반대되는 성향의 그와 결혼을 하게 되면 큰 충돌은 없이 살게 될 수 있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내가 그에 대한 고민을 할 때면 주변 지인들은 나에게 이런저런 조언들을 많이 해주었는데 누구나 결혼할 때 100% 확신을 가지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다들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결혼해서 그냥 그렇게들 사는 것이라고 말이다. 내가 결혼을 생각할 만큼 그를 사랑하고 있는지에 대한 확신도, 그가 평생의 동반자로 삼을만한 사람인가에 대한 확신도 없이 그렇게 난 결혼을 위한 결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그의 경제적인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한 수준이었다. 그의 소득은 그의 담배값과 취미로 즐기는 당구비용 정도를 겨우 충당할 정도였고 그와 결혼을 하게 된다면 삼시 세끼를 다 챙겨 먹을 수 있을지를 걱정해야 할 정도였다. 결혼얘기가 처음 나왔을 때 그의 부모님은 자신들과 같이 사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해왔는데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의 소득은 한 집안의 생활비를 감당할 정도도 안되었던 것이었다. 또한, 그의 부모의 재력도 알고 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그의 소득으론 대출을 받을 수 없기에 신혼집을 구입하는데 필요한 대출도 내 명의로 받아야 했고 그 외에 신용여행에 필요한 비용이나 결혼식 반지를 구입하는 등의 각종비용도 내가 부담을 해야만 했다. 그의 집안에선 어차피 결혼을 하면 자산이 합쳐지니 누가 비용을 부담하든 상관이 없는 것 아니냐는 황당한 말까지 했다. 그런데 그 시점에 나는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다. 내가 그를 전혀 사랑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결혼을 준비하면서 여러 가지 감정적인 혼란을 겪을 수 있다고 하지만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권태기라도 맞은 부부마냥 그의 뒷모습만 봐도 거부감이 들었다. 나는 여러 감정적인 혼란과 경제적인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되돌리기엔 너무 늦었다는 생각에 결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이끌려 가던 중에 신혼집을 꾸미는 과정에서 또 한 번 문제가 발생했다. 그의 부모는 결혼준비에 지나치게 개입을 했는데 심지어 신혼집의 도배나 장판을 새로 하는 과정에서 그의 아버지는 도배지의 디자인조차 자신이 원하는 것으로 할 것을 요구했고 가구를 구입하는 것 하나하나 간섭을 했다. 그의 부모에게 그는 성인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여전히 모든 것을 챙기고 보호해야 할 어린 자녀와 같은 존재였던 것 같았다. 아마도 그가 그동안 모든 것을 부모님께 의존하고 있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신혼집은 그의 부모님과 가까운 동네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결혼을 하게 된다면 얼마나 많은 간섭을 받게 될지 불 보듯 뻔했다. 여러 가지 난관에도 극복을 해보고자 노력을 하며 결혼준비를 이어가고 있었지만 더는 안될 것만 같았다.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그에게 내 마음을 전달했고, 그렇게 결국 나는 파혼을 하게 되었다. 파혼 후 내 방에 잔뜩 쌓여있는 혼수품을 보며 펑펑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지만 내 선택에 후회는 없었다. 결혼을 감행했더라면 아마도 6개월도 채 살지 못하고 돌아왔을 것 같았다. 사는 동안 나는 지지리도 운이 없었고 신이 있다 해도 신은 내 편이 아니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지만 이번만큼은 신이 나를 도왔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신기하게도 파혼을 한 후, 오랫동안 반복되어 왔던 꿈은 더 이상 반복되지 않았다.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나고야 만다’는 격언이 떠올랐다. 어쩌면 이 일은 내가 반드시 겪어야 할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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