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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안 Oct 12. 2023

#33 부탁

소설 연재


재인이 당황한 듯 아무 말 없이 준영을 본다. 그는 다시 입을 연다.


“재인아… 우리 여기서 그만하는 게 좋을 거 같아…”

“아니… 오빠…”


준영은 더 말을 잇지 않는다. 재인이 준영의 손을 잡는다.


“오빠, 내가 그동안 서운하게 해서 미안해. 나도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 속마음 털어놓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준영은 차분한 눈빛으로 재인을 쳐다본다. 그리고 손을 살며시 빼낸다.


“재인아, 네가 뭘 잘못해서 그런 거 아니야. 오히려 내가 적응을 못했던 거 같아. 내가 너랑 하는 연애에 적응을 잘하지 못했어. 그리고 너를 힘들게 했어… 그동안 힘들게 해서 미안…”

“아니야… 오빠 내가 오빠를 서운하게 많이 했던 것 같아… 그래서 나도 이제 바뀌어 보려고 조금씩 노력하고 있었는데… 오늘도 원래는…”

“재인아… 더 이야기 안 해도 괜찮아…”

“오빠 그래도 나는…”


그의 입은 굳게 다물어져 있다. 다른 주변의 소리는 들리지 않고 둘 사이 고요한 적막만 흐른다. 준영과 재인은 서로의 찻잔만 바라본다. 준영은 차분하지만 단호한 얼굴을 하고 있다. 재인은 처음 보는 준영의 모습에 입 더 뗄 수가 없다.


엄마의 조언이 문득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재인아, 너도 잘해야 해. 준영이 같은 사람이 평소엔 모든 걸 받아주면서 웃고 있지만 오히려 그런 사람이 한 번 돌아서면 정말 끝인 거야. 그러니까 준영이가 너한테 뭔가 부탁하거나 힘들다고 말한다면, 몇 번이나 참고 참은 다음 그 말을 꺼낸 걸 거야. 그럴 때는 잘 들어줘.”


엄마의 말이 맞았다. 준영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너무 늦었다. 그동안 재인은 준영이 가진 어떤 상처들이 자신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까 봐 걱정했다. 연애하는 동안 준영이 요구한 것들에 대해서도 재인은 준영의 어머니 사건과 연결 지어 생각했다. 그리고 과거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그가 가진 알 수 없는 우울함이 자신의 연애를 방해하고 있다고만 여겼다. 하지만 이번엔 재인이 틀렸다.


준영은 오히려 최선을 다해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준영을 과거에 발목 잡힌 사람이라 잘못 판단한 건 오히려 재인이었다. 칼자루를 들고 연애의 끝을 외칠 수 있는 사람은 그 연애의 끝을 염두에 두지 않고 최선을 다한 쪽이다. 반대로 늘 이 걱정 그리고 저 핑계로 연애의 끝을 상상하는 사람은 그 연애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기 때문에 헤어지고도 후회가 남는다. 이제 그 후회는 재인의 몫이다.


준영이 뜸을 들이며 조용히 말한다.

“그럼… 나 먼저 일어서볼게…”


준영은 조용히 카페를 빠져나간다. 재인은 그 자리에 한참이나 홀로 남아 다 식은 커피를 조금씩 나눠 마신다.



***


야간 근무 중 재인은 모든 빈소를 한 바퀴 돌면서 상황을 점검한다. 110호 빈소까지 확인하고 나오는데 식당 쪽에서 나지막한 대화소리가 들린다. 고인의 마지막을 지키고 있는 20대 친구 두 명이다.


“재호가 이렇게 갑자기 떠날 줄은 몰랐어 정말…”

“그러니까…”

“그때 우리가 재호랑 같이 있었다면 상황이 달랐을까?”

“그건 모르는 일이지… 사고였으니까…”


둘은 식사는 하지도 않고 숟가락으로 그릇만 계속 저으며 한숨을 내쉰다.


“근데 그 서비스가 끝나지 않았다면 재호도 알림을 받았으려나…”

“사망 프로필?”

“응…”

“아마도… 그랬겠지…”


한 친구가 육개장을 한 입 떠먹는다.


“그때 재호가 그거 가입하고 나서 자기가 언젠가 죽게 되면 우리 보고 마지막 시간 같이 보내자 했었잖아…”

“...”

“미리 알았다면 재호한테 인사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그 서비스 내용이 진짜 말이 된다면… 그랬겠다…”

“근데 이미 재호는 가고 없는데… 이런 말이 다 무슨 소용이야…”


재인은 사무실로 돌아온다. 민석이 말한다.


“재인씨, 잠깐 안에서 눈 좀 붙이고 나와요.”

“네, 그럼 저 잠깐 들어갔다 올게요.”


재인은 휴게공간 안쪽에 칸막이 커튼을 치고 간이침대에 눕는다. 그리고 옆으로 돌아누워 휴대폰으로 사망 프로필 서비스에 접속한다. 자유게시판에는 여전히 수많은 글들이 업로드되고 있다. 그 덕에 한동안 게시판을 뒤덮고 있던 항의와 비난 글들은 아래로 내려가고 못 보던 글들이 눈에 띈다.


제목: 서비스 왜 중단하셨나요.

서비스 이어서 해주세요. 저는 근위축성측색경화증 환자예요. 5년 간 투병 중에 있어요. 이제 근육이 많이 빠지고 몸이 예전 같지 않네요. 그동안 가족들한테 너무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아직까지 이 병을 완치할 수 있는 약이 없어서 이제 서서히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렇다고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계속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면 가족들이 너무 슬퍼할 것 같아요. 그래도 떠나기 전에 미리 가족들한테 마음을 표현하고 가고 싶어요. 이 서비스 계속해주시면 안 되나요. 부탁드립니다.


제목: 고맙습니다.

이 서비스 덕분에 딸과 마지막 인사를 충분히 나눌 수 있었네요. 고맙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딸이 자기가 곧 죽는다더군요. 어이가 없어 쳐다보는데 거짓말이 아닌 것 같았어요. 믿거나 말거나 딸이 제안한 대로 우리 가족은 꼬박 3일을 딸과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제목: 후기글 남깁니다.

그것을 알아보자 방송을 보고 사이트에 들어와 보니 비난글이 상당히 많네요. 사람마다 생각하는 게 다 다르겠죠. 어쨌거나 저는 사망 프로필 덕분에 아버지 죽음을 미리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아주 오랜 기간 아버지를 간병하셨어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시간들 속에 어머니와 가족들은 지쳐갔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께서 어디서 보셨는지 저에게 이 서비스에 가입해달라시더군요.


이기적인 알지만 저는 아버지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저도 너무 지쳤었거든요. 다행히도 이 서비스가 종료되기 전에 아버지는 사망 알림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아버지의 긴 투병생활 속에서 가족들은 서로 짜증스러운 얼굴로 상처되는 말들도 많이 주고받았습니다. 긴병에 효자 있나요. 그래도 마지막 3일은 서로에게 못다 한 마음을 전하는 시간을 가졌네요. 감사합니다.


제목: 혹시 서비스 다시 재개하실 계획 있으신가요.

꼭 부탁드립니다. 최근 암진단을 받은 20대입니다. 병원에서 짧게는 6개월 길게는 2년이 남았다고 하네요. 앞으로 남은 시간이 막막합니다. 어차피 시한부 인생이지만 그래도 6개월과 2년은 너무 차이가 크게 느껴지네요. 현재는 치료를 받더라도 예후가 좋을지는 잘 모르는 상황이랍니다. 제가 정말 6개월 뒤에 죽는다면, 고통스럽게 병원에서 치료만 하다가 떠나고 싶지는 않아요. 제게 과연 얼마의 시간이 남아있을까요.


재인은 올라온 글들을 차분히 읽어 내려간다. 그리고 문득 숫자가 떠오른다. 221210. 엄마 머리 위의 숫자 조합이다. 요즘은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이 숫자를 곱씹는다. 221210. 엄마에게는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재인은 엄마와의 이별이 두렵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엄마보다 자신이 더 걱정된다. 죽음을 맞게 될 엄마의 고통보다 오히려 아빠와 남게 될 자신이 엄마 없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가 더 막막하다.


그녀는 아주 어릴 때부터 엄마의 죽음을 준비해 왔지만, 정작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엄마가 원하는지 혹은 원하지 않는지 알 수 없었기에 숫자를 미리 알려줄 수도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가족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28살이 된 지금까지 엄마조금씩 자주 그리고 끊임없이 작은 추억들을 만들어왔다.


재인은 휴대폰을 들고 준영에게 메시지를 한 통 보낸다.


‘오빠, 나… 너무 힘든데… 나한테 기회를 한 번만 더 줄 수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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