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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안 Oct 16. 2023

#37 흔적

소설 연재


엄마의 발인 절차까지 모두 끝나고 재인과 아빠는 집으로 돌아온다.


“재인아, 들어가서 한숨 자라… 고생 많았다.”

“네… 아빠도 좀 쉬세요…”


그녀는 방으로 들어가 문은 살짝 열어둔 채 침대에 그대로 눕는다. 신기하게도 눈물은 더 이상 나지는 않는다. 피곤해서일까. 엄마의 모든 흔적이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는 집에서 며칠 만에 깊은 잠에 빠져든다.


아빠는 거실에 앉아 사진을 보고 있다. 장례를 치르고 가져온 엄마의 영정사진이다. 손으로 액자 표면을 만져본다.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 표정을 짓는다. 시간이 한참 흐르고 재인이 방에서 나온다.


“일어났어?”

“네, 아빠는 안 주무셨어요?”

“응… 잠이 안 와서 그냥 있었어…”


재인은 주방 쪽으로 가면서 묻는다.


“아빠, 저녁은요?”

“재인이 너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딱히 생각이 안 나요…”

“그래… 아빠도…”


재인은 식탁 의자에 잠깐 앉는다.


“아빠, 그럼 커피나 한잔 같이 할까요?”

“그래, 그러자…”


그녀는 커피 머신 앞으로 가서 전원을 켜고 캡슐을 꺼내든다. 머리 위 찬장에서 머그컵 두 잔을 꺼내 따뜻한 원두커피를 두 잔 내려 식탁으로 가져온다. 아빠도 들고 있던 액자를 텔레비전 옆 장식장 위에 세워두고 재인 앞으로 온다. 함께 마주 앉은 부녀는 아무 말이 없다. 서로 커피잔만 잡고 멍하니 있다. 그러다 아빠가 먼저 입을 연다.


“재인아… 엄마가 아빠한테 정말 잘했나 봐…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엄마는 아빠한테 참 고맙고 대단한 사람이었어… 아빠가 더 잘해줄 걸 그랬다…”

“아빠… 이미 충분히 잘하셨어요…”

“...”


아빠는 커피를 몇 모금 더 마다.


“엄마가 우리 집에서 하던 역할이 너무 많았어서… 아빠가 엄마 몫까지 너한테 못해줄 수도 있어… 아빠가 노력은 하겠지만… 재인이 너도 알듯이… 아빠는 엄마만큼 섬세하지 않잖아…”

“아빠…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그냥 엄마 생각해서라도 우리 시간이 흐르면 흐르는 대로 자연스럽게 적응해 봐요… 같이…”


아빠가 아무 말 없이 재인을 바라본다. 그리고 재인이 말한다.


“아빠, 아빠도 다음 주 월요일부터 다시 출근하시죠?”

“응.”

“저도 경조사 휴가 다 쓰고 나면 월요일부터 다시 출근해야 할 것 같아요… 우리 그때까지 시간 있으니까 천천히 생각해요… 사실… 저도 지금은 아무 생각이 안 나요…”

“그래… 그러자 재인아…”


다음날도 특별한 일정 없이 지나간다. 저녁쯤 외삼촌이 아빠에게 전화가 다.


“매형, 저희도 내일 여기서 이른 새벽에 출발해서 갈게요.”

“오긴 뭘 와, 삼우제는 재인이랑 둘이서 조용히 지내면 돼. 괜히 멀리서 고생해서 오지 마.”

“그래도, 갈게요.”

“아니야. 처남, 장례 기간 내내 같이 신경 써줘서 고마웠어. 그리고 재인이 엄마도 원래 뭐든 단출하게 하는 걸 좋아하잖아…”

“네… 그럼 내일 잘 다녀오세요.”

“그래, 고마워 처남.”


다음날 엄마가 하늘나라로 떠난 지 벌써 5일 차 되는 날이다. 삼우제를 지내기 위해서 오전 일찍 납골당에 도착한 재인과 아빠는 2층 제전실로 이동한다. 아빠는 먼저 준비해 온 제사 음식을 상에 올린다. 그리고 향을 피운 뒤 재인과 함께 두 번 절을 한다.


그 후 무릎을 꿇고 앉은 아빠가 든 술잔에 재인이 술을 따른다. 아빠는 엄마에게 술을 건네고 다시 퇴주에 비운 뒤 두 번 절을 한다. 축문은 생략하고 부녀는 잠깐 눈을 감는다. 엄마의 혼이 식사하도록 시간을 잠깐 가지고는 마지막으로 다시 같이 두 번 절을 한다.


집으로 돌아온 재인과 아빠의 시간은 뭘 해도 잘 흐르지 않는다. 식사를 간단히 차려 먹고 조금 앉았다가 거실에서 아무 의미 없이 텔레비전을 켜놓기도 하고, 괜히 화장실을 한 번 더 다녀오기도 한다. 원래는 하지도 않던 낮잠을 자보기도 하고 뜬금없이 휴대폰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또다시 하루가 지나고 방에서 퍼즐을 맞추고 있던 재인에게 아빠가 다가온다.


“재인아, 오늘 시간 되면 아빠랑 일처리 좀 같이 할까?”

“네…”

“그럼 천천히 준비해서 주민센터부터 다녀오자.”



***



아빠를 따라 재인은 주민센터 문을 열고 들어간다. 아빠가 입구 쪽에 서 있는 직원에게 말한다.


“저… 사망신고 하러 왔는데요.”

“아, 네. 혹시 사망진단서나 시체검안서 가지고 오셨나요?”

“네, 챙겨 왔습니다.”

“그럼 번호표 뽑고 대기하시다가 해당 창구로 가서 안내받으시면 됩니다.”


대기 의자에서 기다리다 순번이 되자 5번 창구로 간다. 직원과 아빠의 대화가 이어진다.


“어떤 업무 도와드릴까요?”

“네, 사망신고 하러 왔는데요.”

“네, 그럼 사망진단서나 시체검안서 먼저 주시겠어요?”

“네, 여기 있습니다.”

“그리고 아버님 신분증도 같이 보여주세요.”


재인은 옆에 앉아 기다린다. 서류 작업이 끝나고 직원이 인사한다.


“네, 신고 처리 완료해 드렸습니다. 사망자 금융거래조회 서비스 신청은 금융감독원 통해서 하시면 되고 상속 재산 통합 조회는 인터넷으로도 가능합니다.”


주민센터를 빠져나와 차를 타고 차량등록사업소로 이동한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아빠는 직원에게 말한다.


“차량 명의 이전하러 왔습니다.”

“네, 우선 번호표 뽑고 대기해 주세요.”


또 조금 기다린 후 해당 창구로 이동한다.


“차량 명의 이전하러 왔는데요.”

“네, 그럼 이전하실 분께서 직접 오셨나요?”

“딸이랑 제가 공동상속인이라 같이 왔습니다.”

“아, 그럼 상속 사유로 자동차 이전 등록 하신다는 말씀이시죠?”

“네.”

“그럼 자동차 등록증, 이전등록 신청서, 사망자의 기본증명서와 가족관계증명서 그리고 상속 대표자 분 신분증 함께 주세요.”


아빠는 서류 가방에서 봉투를 꺼내 건넨다. 한참 뒤 직원이 신분증을 돌려주며 말한다.


“자동차 상속 이전 등록 절차 완료됐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차를 타고 이동해서 근처 휴대폰 대리점으로 들어선다. 직원이 묻는다.


“어떻게 오셨어요?”


이번엔 재인이 대답한다.


“엄마께서 돌아가셔서 휴대폰 해지하러 왔어요.”

“아… 그럼 이쪽으로 앉으시겠어요?”

“네…”

“안내드린 서류들 가지고 오셨을까요?”


재인은 서류를 건넨다. 직원은 하나씩 확인한다.


“가족관계증명서, 신분증, 그리고 체 검안서… 네 확인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직원이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키보드 치는 소리가 들린다. 직원과 마주 앉은 아빠와 재인의 눈은 초점이 흐릿하다. 조금 뒤 직원이 서류들을 돌려주면서 말한다.


“네, 우선 제출하셨던 서류와 요금납부 영수증 받으시고요. 최정인님 휴대폰 해지 처리 완료해 드렸습니다. 그리고 약정은 남아 있지만 휴대폰 명의자가 사망했을 경우 별도로 위약금은 발생하지 않습니다.”


재인과 아빠는 터벅터벅 대리점을 빠져나온다. 오늘은 세상에 남아 있던 엄마의 흔적들을 없애고 다녔다. 여러 사람들의 입을 통해 몇 번이고 엄마가 죽었다는 사실을 확인받고 또 확인받았다. 온종일 서류 작업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더 해야 할 일들이 남았다.


“재인아,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집에 들어가자. 남은 일들은 아빠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해보고 도움 필요하면 재인이 너한테 부탁할게.”

“네… 아빠 오늘 하루종일 수고 많으셨어요… 우리 저녁은 외식하고 들어갈까요?”

“그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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