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복을 입은 재인과 아빠가 문상객의 인사를 받고 있다. 그동안 자주 보지 못하던 친인척과 지인들을 접한다. 재인은 정신없는 와중에도 딱 어울리는 말이 생각난다. 무소식이 희소식.
곧이어 빈소 입구 쪽에서 형구 아저씨와 준영의 모습이 보인다. 아저씨는 향로에 향을 한 대 꽂고 준영은 옆에서 국화꽃 한 송이를 꺼내 헌화한다. 이내 조금 뒤로 물러서서 영정사진을 향해 두 번의 절을 마친 후 고개를 엄숙하게 숙인다. 그리고 이번엔 몸 방향을 틀어서 재인과 아빠 쪽을보고 서로 맞절을 한 번 한다. 아저씨는 아빠를 와락 안는다.
“성재야…”
“형구야… 와줘서 고맙다…”
재인은 눈시울이 붉어진 채 바닥을 보고 있다. 준영이 다가와 재인을 꼭 안는다. 그 뒤로 모두 아무 말이 없다. 그녀는 참았던 눈물을 왈칵 쏟아낸다. 준영은 그녀를 안은 채 등을 따뜻하게 토닥인다. 인사를 마치고 아저씨와 준영이 빈소 옆 식당으로 자리를 옮긴다. 재인은 아빠에게 작게 말한다.
“아빠, 형구 아저씨 오셨을 때 같이 식사 좀 하고 오세요. 오늘 한 끼도 못 드셨잖아요.”
“아니야… 괜찮아…”
“그러지 마시고, 여기는 제가 잠깐 혼자 있을 테니까… 아빠 한 숟가락이라도 뜨고 오세요… 어서요…”
아빠는 못 이기는 척 식당 쪽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조금 뒤 빈소로 민아가 들어선다. 민아의 눈에는 이미 눈물이 가득 고여 있다. 애써 눈물을 떨어뜨리지 않으려 노력하며 조문 예절에 맞게 인사한다. 하지만 그녀는 재인과 눈을 마주치자마자 고개를 떨구며 눈물을 흘린다.
“재인아…”
“민아야… 흐으윽…”
어떻게 시간이 흘러가는지 알 수 없이 장례 첫날이 지나간다. 자정이 지난 새벽 시간에도 조문객이 드문 드문 찾아온다. 손님이 뜸한 시간대에 재인과 아빠는 말없이 나란히 앉아 있다. 재인은 조용히 아빠의 손을 잡는다. 아빠도 재인의 손을 꼭 맞잡는다. 그리고 둘은 한참을 말없이 영정사진을 바라본다.
다음날 아침 재인은 사무실 문을 열고 미영에게 다가간다. 미영은 재인을 안는다. 재인은 미영을 쳐다보며 눈물을 그렁이며 말한다.
“팀장님… 저희 엄마 부탁드려도 돼요?”
“당연하지… 재인씨 많이 힘들지?”
“네… 저는 늘 생각해 왔어요… 엄마 마지막 모습은 제가 단장해 드릴 거라고요… 그런데 막상 돌아가시고 나니까 엄두가 나질 않아요… 여태까지 제가 아닌 다른 분께 맡길 생각은 안 했었는데… 진짜 이렇게 되니까 용기가 안 나요… 제가 못할 거 같아요… 용기가 나지 않아요… 그렇게 많은 분들 염을 해왔는데도… 엄마만큼은… 제가 입관해 드리면 눈물만 흘리고 있을 것 같아요…”
“재인씨… 그럴 수 있어… 걱정하지 말고 아버지 옆에 같이 있어 드려… 내가 준비되면 빈소로 갈게…”
둘은 같이 사무실을 나와서 재인은 빈소 쪽으로 미영은 입관실 쪽으로 발을 돌린다.
두 시간 정도지나고 미영이 105호 빈소로 신발을 벗고 들어간다.
“이제 입관실로 안내하겠습니다.”
재인과 아빠 그리고 외삼촌 내외는 미영을 따라 이동한다. 입관실 문 앞에 도착한 후 미영이 멈춰 선다.
“유족분들께 말씀드립니다. 공이 이르기를 예가 우선이요, 슬픔은 그다음이라 했습니다. 입관실에서 너무 울지 마시고, 고인 분이 마음 편히 떠나실 수 있도록 따뜻한 마음으로 좋았던 추억과 행복했던 시간들을 이야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미영이 문을 연다. 아빠와 재인은 엄마 옆으로 천천히 다가간다. 외삼촌과 외숙모도 뒤따라 들어가 반대편에 마주 선다. 엄마는 마치 살아서 혈색이 도는 듯 단정한 모습으로 가지런히 누워있다. 아빠는 허리를 숙여 아내 얼굴을 매만진다. 재인은 한 손으로 아빠의 어깨를 감싸고 다른 한 손으로는 엄마 다리를 만진다. 부녀의 눈에서 끊임없이 눈물이 흘러내린다.
미영은 재인 부녀가 조금 차분해질 때까지 기다린 후 다시 입을 연다.
“자, 이제 고인을 직접 보면서 이야기하실 수 있는 마지막 시간입니다. 마음에 담아뒀던 이야기나 용서를 빌어야 하는 이야기 또 기뻤던 이야기와 사랑했던 이야기. 고인께서 마음 편히 가실 수 있도록 한분씩 목소리를 들려주시면서 고별인사 하시길 바랍니다.”
아빠는 눈물을 삼키며 입을 뗀다.
“여보… 뭐가 그렇게 급하다고 이렇게 일찍 가… 으으으윽… 으흐흑… 여보… 그동안 나랑 사느라 고생 많았고… 고마워… 재인이는 걱정하지 마… 내가 있으니까… 당신은 이제 마음 편히 쉬어… 많이… 정말 많이… 보고 싶을 거야…”
재인도 말을 잇는다.
“엄마… 엄마… 편히 쉬어요… 미안해요… 엄마… 고마워… 흐윽… 흐으윽… 엄마 딸로 살게 해 줘서 고마워… 사랑해 엄마… 나… 앞으로 아빠랑 같이 씩씩하게 잘 살 테니까… 하늘에서 꼭… 지켜봐 줘야 해… 엄마…”
외삼촌과 외숙모도 연달아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누나… 엄마가 그렇게 보고 싶었어? 이제 재인이도 다 컸고 매형이랑 같이 즐기고 살면 되는데… 왜… 왜… 누나… 엄마랑 아버지 옆에서 편히 쉬어… 누나…”
“형님… 편히… 쉬세요… 하늘에서 우리 모두 지켜봐 주세요… 그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미영도 조용히 눈물을 흘린다. 모든 입관 절차가 끝나고 가족들은 다리에 힘이 풀린 채 터벅터벅 빈소로 다시 돌아간다.
마지막 엄마의 모습을 보고 그 죽음을 받아들인 건지 넋을 놓아버린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재인과 아빠는 계속 조문 인사를 받고 있다. 시간이 흐르고 작은 아빠가 빈소로 들어선다. 조용히 향대에 불을 붙여 향로에 꽂고 영정을 향해 절한다. 그리고 아빠를 안는다.
“형…”
“성준아…”
“형… 어제 못 와서 미안해…”
“아니야… 와줘서 고맙다…”
“형… 어머니는 먼저 간 며느리 장례식장에는 도저히 못 가겠다고 하셔서… 나 혼자 왔어…”
재인은 아빠와 작은 아빠가 껴안고 눈물 흘리는 모습을 쳐다본다. 아빠와 작은 아빠는 그다지 사이가 좋지 못한 형제다. 재인은 지금껏 다정한 말 한마디 서로 건네는 모습을 보지 못한 두 사람이 끌어안고 우는 모습이 어색하다.
장례식장은 참 신기한 곳이다. 친하지 않고 그간 교류가 없던 사람도 선뜻 찾아올 수 있는 장소다. 안면만 있는 사람이 한 걸음에 달려와 인사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공간이다. 재인은 아빠와 작은 아빠 사이에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감정의 흐름을 느낀다. 그 뒤로도 아빠는 한참 손님을 받다 재인 쪽으로 고개를 돌려 말한다.
“재인아, 잠깐 안에 들어가서 눈 좀 붙이고 나와…”
“아빠 먼저 눈 좀 붙이세요…”
“아니야… 아빠 말 듣고 재인이 너부터 좀 누워있다 나와… 그래야 버틸 수 있어… 그러고 나면 아빠도 들어갈게…”
재인은 빈소 옆에 딸린 작은 방으로 들어간다. 옷장에서 목침과 이불을 꺼내 옆으로 눕는다. 억지로 감은 재인의 두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린다.
한참 뒤 방에서 나온 재인은 아빠 옆으로 간다. 이어서 아빠가 방으로 들어간다. 조문 행렬이 잠깐 뜸한 사이 재인은 혼자 빈소에 앉아 있다. 그때 입구 쪽에서 민석과 책방 사장 진욱이 함께 들어선다. 재인은 놀라 자리에서 일어난다. 민석과 진욱은 예를 갖춰 제단 앞에서 인사를 한 후 재인과도 맞절을 한다. 민석이 먼저 재인의 한쪽 팔을 쓰다듬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