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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안 Oct 17. 2023

#38 일상

소설 연재


“아빠, 저 잠깐 민아 만나고 올게요.”

“그래, 잘 갔다 와.”


재인은 회색 기모 운동복에 검은색 패딩을 걸쳐 입고 현관문을 나선다. 집 근처 카페로 들어서서 민아가 앉아 있는 쪽으로 걸어간다.


“민아야.”

“재인아.”

“쉬는 날 뭘 또 이렇게 왔어. 너 피곤하게. 주문하러 가자. 맛있는 거 사줄게.”


둘은 카운터로 가서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카페라테 그리고 당근 치즈케이크를 주문한다. 앞에 서서 기다리다 메뉴를 바로 받아서 다시 자리로 이동한다.


“민아야, 와줘서 고마워. 나 엄마 장례 치르고 처음 보는 사람이 너야.”

“그냥 너 보고 싶어서 왔어. 너 이제 내일부터 다시 출근이지?”

“응, 이제 휴가 끝났으니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지…”


민아가 당근 케이크를 포크로 한 입 떠먹는다.


“그래, 근데 너무 마음 급하게 먹지 말고.”

“응, 나도 그러려고. 근데 나보다 아빠가 더 많이 힘드신 것 같아. 나도 안 힘든 건 아니지만…”

“그러실 거야… 재인이 너네 부모님 사이 좋으셨잖아… 많이 헛헛하실 것 같아…”

“응, 내가 채워드릴 수 없는 어떤 공허함이 있으신 거 같아…”


재인은 따뜻한 커피잔을 양손으로 잡고 한 모금 마신다. 그리고 민아가 다시 입을 연다.


“재인아, 근데 너 준영씨랑 다시 만나는 거야?”

“응?”

“준영씨 말이야.”


재인은 의아하다는 듯 쳐다본다.


“아니… 왜?”

“그래? 난 다시 만나는 줄 알았지… 장례식장에 3일 내내 계시길래…”

“오빠가?”

“응… 나는 일 때문에 계속 있지는 못했는데 내가 퇴근하고 갈 때마다 계시던데… ”

“아… 몰랐어… 나는 민아 네가 매일 오는 것만 알고 있었고… 준영 오빠는 첫날 말고는 못 봤는데…”


민아는 다시 한번 케이크를 입에 넣고 말한다.


“빈소 옆 식당 쪽이랑 복도에서 계속 마주쳤어…”

“그랬구나…”


재인은 생각에 잠긴다. 장례를 끝내고 집에 돌아온 날 저녁 준영에게 문자가 왔던 걸 떠올린다.


‘재인아… 잠깐 얼굴 볼 수 있을까?’


그녀는 그 문자를 읽고 아직까지 답을 하지 않고 있었다. 민아가 다시 대화를 잇는다.


“준영씨랑 따로 더 이야기한 건 없었어?”

“응… 아니… 사실 며칠 전에 문자가 한 통 오기는 했는데… 내가 답을 안 했어…”

“음… 재인이 너 마음은 어떤데?”

“뭐가?”

“너 마음은 어떠냐고… 너 준영씨 못 잊고 있던 거 아니었어?”


재인은 괜히 포크를 만지작 거리며 말한다.


“마음 정리는 거의 다 한 상태이기는 했는데… 지금 이런 상황에서 다시 만나는 것도 조금 부담스럽고…”

“그래도 한 번 만나서 이야기해 보는 건 어때? 너도 준영씨도 아직 서로 다 못 푼 이야기가 있는 것 같은데…”

“그런가… 난 잘 모르겠어…”


그리고도 한참 대화를 나누다 재인은 집으로 돌아온다.


“민아 잘 만나고 왔어?”

“네. 아빠 식사는요?”

“아빠도 챙겨 먹었지.”


재인은 현관문 안으로 들어와 패딩을 벗으면서 말한다.


“아참, 아빠 그리고 생각난 김에 답례품 주문할까요?”

“그래, 그래주면 고맙지.”

“네, 그럼 일단 아빠 회사랑 제 회사로 한 박스씩 보낼게요. 그런데 뭘로 하죠?”

“그러게…”


재인은 소파에 걸터앉아 계속 이야기한다.


“제가 찾아보니까 보통 떡이나 소금 아니면 수건 많이 하더라고요. 그리고 겨울이니까 국화차도 괜찮은 거 같고요.”

“음… 그럼 국화차로 할까?”

“네, 그럼 제가 방에 들어가서 바로 주문할게요.”



***



다음날 재인은 새벽 일찍 일어나 거실로 나오는데 아빠는 이미 부엌에서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일어났어?”

“네, 아빠 일찍 일어나셨네요.”

“응, 어서 씻고 나와.”


재인은 머리를 감고 방에 들어가 출근 준비를 끝내고 나온다. 따뜻한 김치찌개에 계란말이 그리고 따뜻한 밥이 식탁 위에 준비되어 있다. 재인은 아빠와 마주 앉아 식사를 한다.


“아빠, 언제 이렇게 다 준비하셨어요. 안 주무셨어요?”

“아니, 잤어. 오랜만에 출근이라 괜히 뻐근하지?”

“괜찮아요. 아빠도 마찬가지시잖아요.”


아빠가 살짝 미소를 띤다. 그리고 김치찌개 속 두부를 건져 먹으며 말한다.


“엄마 있을 때만큼은 못 차려주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해봤어. 맛은 괜찮아?”

“너무 맛있어요, 아빠.”


재인은 왠지 모르게 차가웠던 속을 아빠의 따뜻한 요리로 달랜다.


“잘 먹었습니다.”

“그래, 고맙다.”

“아빠도 아침에 출근하셔야 하는데 설거지는 놔두세요. 제가 다녀와서 할게요.”

“그래, 걱정 말고 잘 다녀와.”



***



사무실로 재인이 들어선다. 자리로 곧장 가서 배송된 택배 박스를 뜯는다. 포장을 뜯어 답례품 세 개를 손에 들고 회의실로 들어간다. 민석과 미영 그리고 태진이 앉아 있다.


재인이 반갑게 인사한다.

“저 오랜만에 출근해요. 다들 잘 지내셨죠?”


민석이 인사한다.

“재인씨, 어서 와.”


미영과 태진도 그녀를 보고 어색한 듯 웃는다. 재인은 손에 든 답례품을 하나씩 나눠준다.


“이거… 큰 건 아닌데… 감사 표시로… 모두 너무 감사했어요. 덕분에 장례 잘 치르고 왔어요. 진짜 감사해요.”


다들 재인이 건넨 조그만 박스를 받아 들고 인사를 한다. 민석과 미영 그리고 태진이 이어서 말한다.


“신경 쓸 일도 많았을 텐데 언제 또 이런 것까지 준비했어. 고마워.”

“재인씨 너무 고생 많았어.”

“고마워요.”


재인이 자리에 앉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침 회의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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