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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안 Oct 19. 2023

#39 재회

소설 연재


“재인아…”


카페에 준영과 재인이 마주 앉아 있다.


“응… ”

“시간 내줘서 고마워.”

“아니야, 그래도 한 번 만나서 이야기하는 게 나을 거 같아서… 오빠, 나는…”


준영이 재인의 말을 가로막고 말한다.


“재인아… 우리 다시 시작하면 안 될까?”

“오빠…”

“재인아… 지금 바로 답 안 해도 돼… 고민해봐 줘…”


재인은 작게 한숨을 쉰 후 대답한다.


“오빠, 우리는 이미 헤어졌어… 지금은 내 상황 때문에 오빠 마음이 순간 움직인 것뿐일 거야… 엄마 돌아가시고 장례식장에 계속 함께 있어준 거 진심으로 고마워… 그런데 나는 그냥 고마운 마음… 그게 다야… 다른 감정이 더 남은 것 같지는 않아…”

“재인아…”


준영은 계속 재인을 쳐다본다. 재인이 다시 입을 연다.


“설사 내가 모르는 어떤 감정이 나한테도 남아있다 하더라도 지금은 내가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서… 당장 어떤 결정하는 건 조심스러워… 미안해…”

“지금 바로 결정 안 해도 돼, 재인아…”


재인이는 창밖을 한 번 쳐다본 후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준영이는 그런 재인에게 시선을 떼지 못하고 다시 대화를 이어간다.


“재인아… 그때 네가 나한테 마지막으로 하려던 말… 내가 그거 안 들었던 거… 아직까지도 정말 많이 후회하고 있어… 헤어진 그날 내가 재인이 네가 하는 마지막 말을 들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아니… 오빠… 그렇지 않았을 거야…


준영은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할 뿐 다른 이야기를 더 할 수 없었다. 



***



아빠는 자정이 넘은 새벽에 혼자 식탁에서 조용히 소주를 마시는 날이 늘어났다. 재인은 잠들기 전 닫힌 방문 아래틈으로 주방 불빛이 새어 들어오는 걸 알지만 모른 척한다. 한동안은 아빠 앞에 앉아 있기도 하고 말리기도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재인은 마지막 여행에서 엄마가 한 말을 떠올린다. 늘 그래왔듯 엄마의 말을 믿어보기로 한다.


‘엄마 가고 나면… 아빠도 아마 많이 힘들어하실 거야… 그런데 재인이 네가 아빠의 슬픔까지 혼자 다 끌어안으려고는 너무 애쓰지 마… 그러면 오히려 서로 더 지칠 거야… 아빠는 또 아빠가 가진 힘이 있으니까 아빠 나름대로 천천히 잘 이겨내실 거야…’


다음날 아침 재인은 일찍 일어나 출근 준비를 끝낸다. 그리고 부엌으로 나와 인터넷으로 레시피를 검색한다. 국자로 중간중간 간을 보며 어설프게 북엇국을 끓인다. 재인은 식탁 위에 포스트잇 메모지를 남겨 놓고 조용히 현관문을 나선다.


조금 뒤 알람 소리에 깬 아빠가 일어나 거실로 나온다. 식탁 메모지의 글씨가 보인다.


‘아빠, 북엇국 끓여 놨어요. 처음이라 맛은 어떨지 모르겠어요. 요즘 많이 힘드시죠?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어서 마음이 아파요. 엄마가 없는 생활에 아빠도 저도 천천히 적응해 보기로 했으니까 저는 그냥 아빠 믿고 기다릴게요. 아침 식사 조금이라도 하시고 출근하세요. 사랑해요, 아빠.’


아빠의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



재인은 사무실 벽면에 붙은 화이트보드를 확인한다. 102호 빈소로 가서 유가족에게 오늘 입관 일정을 안내한 후 곧바로 장례용품 보관실로 이동한다. 바구니에 입관 때 사용할 물품들을 한가득 챙겨 입관실로 발길을 돌린다.


엄마와 비슷한 나이 또래의 50대 여성 고인이 테이블 위에 누워있다. 재인은 차가운 시신에 메이크업을 하기 시작한다. 마음 한 켠에는 아직도 엄마에 대한 미안함이 가득하다. 직접 마지막 모습을 꾸며드리지 못한 것이 아쉽다. 


살면서 수많은 결정을 하고 산다. 그중에는 쉬운 결정도 있고 어려운 결정도 있다. 특히 어려운 결정을 할 때면 아무리 깊게 그리고 오래 고민한다 하더라도 그 결과에 만족할 수는 없다. 상황을 받아들이고 책임지는 수밖에.


그때의 재인은 분명 어렵게 결정했다. 시간이 지나고 난 뒤 미영에게 엄마를 맡겼던 선택이 아쉽다 하더라도, 그때 그 순간에는 분명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걸로 됐다. 재인은 계속 마음을 가다듬으며 메이크업을 마무리한다.



***



재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검은색 패딩 지퍼를 목 끝까지 올린다. 가방을 메고 책상 밑 박스에서 답례품 한 개를 꺼내 들고 퇴근한다. 집 근처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누리봄 책방으로 방향을 돌린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동시에 진욱이 밝게 인사한다.


“어서 오세요.”


재인은 뚜벅뚜벅 주문대로 이동해서 진욱 앞에 선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죠?”

“네, 그럼요. 퇴근하시는 길이에요?”


재인은 답례품을 건네며 말한다.


“네, 이제 일 끝내고 집에 가는 길이에요. 그리고 이거… 큰 건 아닌데 감사 표시로… 엄마 장례식장에 와주셔서 감사했어요… 생각지도 못했는데 와주셔서…”

“뭘 이런 걸 다… 저는 그냥 인사만 간 것뿐인데요…”

“아니에요, 정말 감사했어요.”


진욱은 선물을 받아 들며 대화를 잇는다.


“괜찮으시면 제가 커피 한잔 대접해 드려도 될까요?”

“에이, 아니에요.”

“한 잔 드시고 가시죠…”

“다음에 올게요. 오늘은 아빠랑 같이 저녁 식사하기로 해서 들어가 봐야 해요.”


재인이 웃는다. 진욱은 주문대 아래 선반에서 예쁘게 포장된 네모난 물건을 재인에게 건넨다.


“이거…”

“이게 뭐예요?”

“재인씨한테 드리고 싶었는데… 방법이 없어서 오실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어요.”

“아… 제가 받아도 되는 건지…”


진욱이 멋쩍게 머리를 만지며 말한다.


“별거 아니에요. 그냥 책인데 재인씨 읽으시면 좋을 거 같아서 한 권 준비했어요. 시간 나실 때 읽어보세요.”

“감사해요.”


재인은 진욱과 짧은 대화를 조금 더 나눈 후 문을 나선다. 한쪽 손에 책을 들고 종종걸음으로 집으로 들어간다.


“다녀왔습니다, 아빠.”

“그래, 수고했다. 어서 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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