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둔다

이 영상들을 보지 않아도 되는 일상이 최대한 오래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by 이이구

요즘 들어 할머니와 함께 있는 가족의 사진이나 동영상을 많이 찍는다.

나는 여행지에 가거나 특별한 날에 사진 찍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눈으로 담아야 하는데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카메라를 구매하고 사진 찍는 걸 취미로 하다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나에게 사진이나 영상을 남긴다는 건 기억을 조금 더 길게 남긴다는 의미였다.

어딘가에 가서 계속해서 핸드폰으로 영상만 찍고 바라보는 것은 물론 지양하는 편이지만 어느 정도 기록을 남기는 건 좋은 거 같다고 생각을 했다.


할머니와의 순간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옛날에 군대를 전역하고 할머니 집에 방문했던 적이 있다.

혼자서 할머니 집에 가 할아버지 할머니와 맛있는 점심을 먹고 이야기를 조금 나누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할아버지의 건강이 많이 안 좋아지셨던 때라 집에 돌아가기 전에 할아버지를 한번 안아드렸는데 할아버지께서 눈물을 보이셨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집에서 나가려는데 할머니 할아버지도 산책을 하신다고 같이 나왔다.

역으로 천천히 걸어 서로 갈라지는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렸다.

그때 갑자기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이 사진이 찍고 싶었다.

그래서 간단하게 할머니 할아버지와 사진을 한 장 찍었는데 그게 할아버지와 찍은 마지막 사진이었다.

나와 할아버지 할머니가 찍힌 그 사진은 작은 액자에 프린팅 되어 할머니 집 tv옆에 장식돼있다.

할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이다.


그런 일 때문일까 나는 많은 것들에서 기록을 남기려고 하고 있다.

할머니와의 시간도 마찬가지였다.


한 번은 그런 날도 있었다.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할머니 집에 방문했다.

할머니 생신이라 케이크를 하나 구매해 초를 불었다.

그 순간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아버지에게 보내드렸다.

할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가 같이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는 그 동영상을 보고 있는 아버지의 눈시울이 붉어보였다.

아버지는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남기셨다.


이런 일들의 영향일까.

계속해서 나는 할머니와 만날 때마다 사진을 찍고 영상을 남겼다.

할머니의 생김새, 목소리, 분위기 그리고 할머니와 같이 있는 우리의 모습을 남기려고 노력했다.


이 영상들을 보지 않아도 되는 일상이 최대한 오래 지속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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