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부쿠로에 살면 100종류가 넘는 라멘을 먹을 수 있다
라멘.
우리가 생각하는 일본의 라멘.
보통이라면 이치란의 돈코츠 라멘을 가장 많이 떠올릴 거 같다.
뽀얀 국물과 면 그 그리고 위에 올라간 차슈, 김, 반숙계란.
이 정도가 한국에서 익숙한 일본 라멘의 비주얼일 거 같다.
하지만 내가 이케부쿠로에서 만난 라멘들.
소유라멘, 시오라멘, 츠케멘부터 프렌치요리와 합친 라멘, 베트남요리와 합친 라멘, 엄청 진한 돈코츠라멘 그리고 별의별 육수에 올라가 있는 라멘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인 이케부쿠로에는 100개가 넘는 라멘집이 있었다.
100개의 라멘집이 있다는 건 100종류의 라멘이 있다는 것이었다.
일본에서도 라멘의 격전지로 유명한 이케부쿠로였다.
모든 라멘집들을 다 가보지는 못했지만 이번에는 그중에서 인상적이었던 라멘들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먼저 이전에 글로 적은 적 있는 이치란과 무테키야.
가장 한국인에게 익숙한 맛인 이치란과 웨이팅을 해서 먹은 진한 국물의 무테키야.
그 둘에 대한 이야기는 했으니 이번엔는 멘야 무사시와 멘도코로 하나다 그리고 키칸보 라멘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처음으로 멘야 무사시.
도쿄에 10개 정도 있는 체인점으로 나는 이케부쿠로 지점에서 먹어볼 수 있었다.
쓰케멘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서 그냥 한번 경험해 보자는 생각으로 먹어본 멘야무사시.
근데 생각보다 내 취향이었다.
자극적인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쓰케멘의 육수는 자극 그 자체였다.
평범한 라멘보다 육수의 양이 적은 만큼 맛이 굉장히 농축되어 있었다.
육수에 면뿐만 아니라 튀김을 찍어먹어보기도 하고 면을 찍어먹어보기도 했는데 정말 농후하게 맛있었다.
우동에서 느낄 수 있는 면의 탱글탱글함을 라멘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도 장점이었던 거 같다.
물론 먹으면 먹을수록 육수가 줄어들고 면의 물기가 들어가기 때문에 처음 먹을 때의 농축된 맛은 점점 희미해져 간다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었다.
하지만 그 단점정도는 간단하게 상쇄시키는 자극적인 맛.
그것만으로 먹을 가치가 충분한 라멘이었다.
두 번째는 멘도코로 하나다.
이 집은 정말이지 농후함의 끝판왕이었다.
미소라멘을 판매하는 가게인데 그 국물이 굉장히 진하다 못해 걸쭉했다.
두꺼운 면을 사용하는 라멘을 선호하지 않는 나였기에 이곳은 기대를 하지 않고 방문했었다.
하지만 육수가 굉장히 진하다 보니 면이 두꺼워도 밀가루 맛이 강하지 않고 육수와의 조화가 아주 좋았다.
덕분에 두꺼운 면도 식감이 특이한 맛있는 면으로 다가왔다.
지금까지 돈코츠라멘이 나랑 제일 잘 맞는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미소라멘이 진짜 나와 잘 맞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앉은 카운터 바로 앞에 주방이 있어서 그럴까 몸에서 열이 올라왔다.
9월이 끝나가는 날, 반팔을 입고 있었는데 땀이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것도 느끼지 못하고 농후한 라멘을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순식간에 바닥을 비운 그릇이 보였다.
밥을 한번 말아먹어보고 싶은 그런 중후한 육수, 꾸덕꾸덕이라는 표현이 참 잘 어울리는 라멘이었다.
마지막으로는 키칸보.
매운 음식을 먹지 못하는 날들이 많았기 때문에 매운 음식을 찾아보다가 우연히 알게 된 가게.
매운 라멘을 팔고 있다고 해서 방문해 보았다.
과연 얼마나 매운맛일까 기대가 되면서 어차피 이곳도 적당히 맵겠지 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그도 그럴게 일본에서 맵다고 해서 먹은 음식 중에 혀가 아리고 땀이 날 정도로 매운 음식은 없었기 때문이다.
가게에 도착해 식권을 구매하고 잠시 기다렸다.
마침 문 앞에 있던 매운맛 단계.
매운맛은 두 종류의 후추를 얼마나 첨가하는 지로 정할 수 있었다.
후추를 넣지 않는 것부터 조금, 보통, 많이 그리고 귀신레벨이 있었다.
귀신레벨로 할까 하다 추가요금이 있어서 나는 두 후추를 모두 많이 넣는 걸로 부탁했다.
그렇게 내 라멘의 맵기를 정하고 자리에 앉자 금방 라멘을 받을 수 있었다.
두꺼운 차슈와 숙주, 계란 그리고 특이하게 베이비콘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올라오는 매운 향, 엄청나게 붉은 국물이 기대감을 가지게 만들었다.
국물을 한입 떠먹어보았다.
꽤나 매운맛.
틈새라면보다는 살짝 약하지만 신라면보다는 매운 누군가에게는 충분히 맵다고 느껴질 만한 육수였다.
두껍고 기름진 차슈와 매운 육수가 굉장히 잘 어울리는 라멘이었다.
일본에서 먹어본 음식 중에 제일 매운 음식이었지만 조금 아쉬웠던 것은 맛이었다.
맛은 분명 있었지만 이 후추를 많이 부탁해서 매워진 라멘인지라 맛있게 매운 느낌이 별로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고춧가루의 매움이 아닌 후추의 매움이라고 설명해야 할까…
후추를 보통으로 해서 먹는 게 덜 맵기는 했겠지만 이 가게의 라멘의 맛을 느끼기는 더 좋았을 거 같았다.
내가 먹었던 라멘은 맵게 만들기 위해 후추를 과하게 넣어 맛의 밸런스가 좋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오랜만에 먹은 매운 라멘은 충분히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라멘의 격전지 이케부쿠로.
그곳에서 살고 있는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