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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제 Apr 24. 2024

이 호수를 보면 빠져버리고 싶은 그런 매력이 있어

당신의 마지막을 느끼다 死ぬのがいいわ(죽는 게 나아)-藤井風(후지이 카제

여름에 1박 2일로 여행을 하고 싶어서 찾아보다가 문득 하코네가 생각났다.

옛날부터 가보려고 생각했던 곳이었지만 거리가 꽤나 있었기에 마음을 먹지 않으면 좀처럼 시도하기 힘든 곳이었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여름이었기 때문일까.

하코네에 가야지라고 마음을 먹고 실제로 여행을 떠나는 건 금방이 이루어져 버렸다.


로망스카를 타고 도착한 하코네는 푸름에 물들어있었다.

거대한 마을이 푸른빛으로 물들어 있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연상케 했다.

녹음이 우거지는 계절이었다.

버스를 타고 산을 올라 산속에 있는 거대한 하코네 호수를 방문했다.

숙소가 바로 근처라 짐을 숙소에 두고 산책을 시작했다.

구름이 산에 걸려서 호수에 비쳤다.

산과 호수와 구름.

자연만큼 아름다운 건 없었다.


하코네


하코네 신사의 토리이를 보러 이동했다.

거대한 토리이는 호수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특별한 구도 때문일까 수많은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토리이를 눈으로만 간단하게 담은 뒤 신사를 천천히 구경했다.

나뭇잎이 무성해진 신사는 초록 내음이 나고 있었다.

여름의 초록에서 느껴지는 향이 좋았다.


삼나무산책길


신사를 구경하고 천천히 호수 주변을 걷기 시작했다.

주변에 있던 삼나무 산책길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방금 전 하코네 신사의 토리이에 많은 사람들이 있던 것에 반해 이곳에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다.

덕분에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하코네 호수와 삼나무를 구경할 수 있었다.


하코네


물에 빠진 나이프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재미있게 본건 아니었지만 인상 깊었던 장면들이 있던 영화였다.

시골의 초록색, 주인공들의 흰색 옷 그리고 호수.

그 장면들이 지금 내 눈에 겹쳐졌다.

영화처럼 나도 이 하코네 호수에 빠지고 싶었다.

이 호수에 빠져서 아래로 가라앉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하코네 호수는 아름다우면서도 우울한 분위기가 있었던 거 같다.

고도가 높아 구름이 가까이 있기 때문이었을까.

조금은 안개가 낀 날씨 때문이었을까.


불꽃놀이


저녁에 하는 불꽃놀이는 안개와 겹쳐져 잘 보이지 않았다.

안갯속에서 터지는 불꽃이 오묘하게 아름다우면서 슬프고 음산했다.

그 오묘한 불빛이 하코네의 호수에 비칠 때 한번 더 이 호수에 빠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 마음이 분명히 있었다.


이 호수에 빠져서 가라앉으면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요즘 소설을 많이 본 탓일까 그런 스토리의 이야기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하코네 호수에 빠진 소년과 소녀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풍경이었다.

애잔하면서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후지이 카제의 죽는 게 나아라는 노래가 어울렸다.

아름다우면서도 우울한 그런 오묘한 감정이 느껴지는 노래가 이 풍경에 어울렸다.




わたしの最後はあなたがいい

네가 내 마지막 사랑이었으면 좋겠어

あなたとこのままお サラバ するより

너와 이대로 이별해야 한다면

死ぬのがいいわ

죽는 편이 나아

死ぬのがいいわ(죽는 게 나아)-藤井風(후지이 카제) 中


나는 왜 이곳에 가라앉고 싶었던 걸까.

호수에 빠져버리는 게 아름다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건 어째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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