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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샤 pacha Feb 23. 2022

코로나 시대의 신풍속도

    떨어져야 산다


 예수는 죽어 사흘째 되는 날 되살아난다. 정원사로 분장하고 막달라 마리아 앞에 나타난다. 꿈인가 생시인가 확인하려고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를 만지려 하자 예수는 완강하게 "내 몸에 손대지 마라."고 한다. 좀 황당한 상상력 같지만 혹 예수가 전염병을 옮길까 걱정되어 한 말이 아닐까? 코로나 시대에 떠올려 본 상상이다. 그림에서 대표적인 접촉 금지의 이미지이다. 예수는 막달라 마리아한테 사회적 거리두기를 요구한다.


 프랑스 사람들은 친한 사람끼리 만나면 으레 요란하게 비주를 주고받는다. 주로 여자끼리, 남녀끼리, 드물지만 남자끼리도 볼을 맞추고 입으로 쪽 소리를 낸다. 볼을 갖다 대고 뗄 때 박자를 잘 맞추어 쪽 소리를 내는 게 중요하다. 별로 친하지 않으면 한쪽 볼만 갖다 댄다. 친하면 양쪽으로 갖다 댄다. 이게 일반적인 비주 풍습이다. 더 요란하게 오른쪽 한 번 왼쪽 한 번을 더 보태기도 한다. 그러면 친한 사람 여덟 정도가 만나 인사를 마치려면 몇 분은 족히 걸린다. 그런데 코로나를 맞아 이 수선스런 비주가 사라질 위기를 맞았다. 비주뿐 아니라 세계 공통이다시피 된 악수까지 자취를 감출 판이다. 대신 뜨는 인사법은 서로 주먹 갖다 대기다. 코로나와 함께 인사법이 더욱 진화되어 팔꿈치 맞대기와 발 부딪히기까지 나왔다. 전철 광고판에 아예 팔 벌려 체조하듯 팔꿈치로 인사하는 두 여인의 이미지가 당당하게 등장하였다. 코로나 시대에 인사는 팔꿈치로!


 분명 접촉 금지의 시대를 맞아 새로 각광받는 신체부위는 팔꿈치다. 인사는 물론이고 문을 밀칠 때는 반드시 손이 아닌 팔꿈치가 나선다. 자주 쓰지 않는 물건들을 넣어두는 지하 창고가 있는 지하실에 내려갈 때면 열쇠로 출입문을 열고 팔꿈치로 문을 밀친 다음 열쇠고리로 타임스위치를 누른다. 쓰레기통을 두는 장소에 불 켤 때도 열쇠고리나 열쇠 때로는 팔꿈치로 건드려 켠다. 코로나가 아니라면 가증을 떤다고 해야겠지만 이런 위기에 살아남기 위한 적응이다.


 산책할 때 마주치는 사람끼리 서로 몰라도 호기심으로 시선을 주고받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코로나와 함께 먼발치에서부터 서로 비켜선다. 마주치는 타인은 경계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저 사람이 보균자 일지 어떻게 알아. 

 전철을 내리고 탈 때면 누가 출입문 버튼을 누를 것인가를 두고도 서로 묘한 신경전이 펼쳐진다.


 코로나로 남녀가 엉겨 붙어 키스하는 풍경도 참 낯설어졌다. 아니 보기 힘들다. 마스크를 끼고 있으니 예전처럼 키스를 마음대로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바이러스가 묻었을지도 모를 마스크를 서로 맞대기도 한다. 바이러스를 나눠가지자는 키스인가.


 코로나로 직장인들은 재택근무가 일반화되고 학생들은 비대면 수업이 낯설지 않게 되었다. 라디오나 텔레비전 방송에서는 스튜디오에 나오지 않고 집에서 원격 인터뷰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직접 만나 인터뷰할 때도 마이크는 긴 막대기에 매달아 내민다. 스튜디오에서 방송하는 경우는 멀찌감치 뚝뚝 떨어져 앉는다. 어쩔 수 없이 가까이 앉아 방송할 때는 플렉시글라스 칸막이를 친다. 이 칸막이는 약국이나 슈퍼마켓의 계산대, 버스나 택시의 운전석에도 설치되었다. 심지어 외출이나 산책할 때도 플렉시글라스로 만든 투명 투구로 얼굴을 방호한다. 코로나와 함께 변종 로마 병정이 등장한 것. 글쎄, 실제 효과는 얼마나 있을지… 



    새로운 형태의 공연과 스포츠 행사 


 코로나 상황에 적응하는 팬들이 없는 공연이나 전에 없던 새로운 형태의 공연이 생겨났다. 그중 하나가 가수는 무대에서 연주하고 팬들은 차를 탄 채 야외 공연장에 참가하는 드라브인(drive-in)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하면서 참가하는 희한한 공연이다. 또 감금 기간 중에 인터넷 신기술을 통한 갖가지 온라인 공연이 선보였다. 1차 감금 해제가 되고도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코로나가 계속 진행형이라 2020년 여름 현재 프랑스는 5천 명까지 모이는 것을 허용한다. 야외나 실내 공연장에서 의무적으로 마스크를 착용하거나 거리 유지를 위해 옆자리를 비워둔다. 

 문화 행사와 마찬가지로 굵직한 스포츠 행사들도 줄줄이 취소되거나 연기되었다. 대표적으로 막판까지 개최 여부를 두고 말 많던 올림픽은 다음 해로 연기되었다. 7월 초에 열리는 윔블던 테니스 대회는 취소되었다. 5월 중순에 열리는 칸 영화제도 마찬가지였다. 뒤이어 5월 말에 열리는 프랑스 오픈 롤랑가로스 테니스 대회는 9월 말로 연기되어 열렸다. 롤랑가로스는 천 명으로 제한하기는 했어도 관중이 참가한 경기였지만 8월 말에 개최된 미국 오픈 테니스 대회는 무관중 경기였다. 주로 5월 말에 결승전이 치러지는 지난 시즌 챔피언스 리그도 8강전부터 8월로 연기되어 무관중 경기로 진행되었다. 7월에 개최되는 아비뇽 연극 축제도 취소되었다. 같은 달에 열리는 투르 드 프랑스도 8월 말로 연기되어 개최되었다. 이제 경기장의 넓은 관중석은 무료 유령 관람객들로 가득 채워진다.


 상상력을 가지고 문화를 만들어낸 인간보다 상황에 더 잘 적응하는 동물은 없다. 서로 한 공간에서 만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각자 자신의 거처에서 따로따로 연주를 하는 모습도 낯설지 않다. 전 세계 곳곳에서 오케스트라를 이루어 비틀즈의 애비로드 앨범에 수록된 메들리 Golden Slumbers / Carry that weignt / The End를 연주하는 유튜브는 감동적이었다 (Abbey Road Cover by All Together, arragement, mixing, video edition and direction by Mathieu Barjolin, 29 avril 2020). 연주 자체가 훌륭해서가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따로 연주한 것을 모아 편집한 것이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함께 연주하는 즐거움을 나눈다는 게 감동적이었다. 70명이 넘는 젊은 아티스트들이 자신이 맡은 부분을 연주하고 이것을 끌어 모아 오케스트레이션 한 경우다. 코로나 감금 기간 중에 제작된 비디오다. 원거리 연주를 편집하여 한 순간 한 공간인 것처럼 모았지만 뭔지 모르게 한 구석이 허전함을 감출 수 없다. 멤버들이 얼굴을 맞대고 한 마음으로 팬들의 열기를 피부로 느끼면서 연주하는 감동은 없다. 



    코로나 시대의 여행


 2020년 봄 프랑스는 코로나로 보건 비상사태가 선포되어 모든 게 통제되었다. 상상을 초월하게도 전 국민 감금 조치가 내려졌다. 이런 비상시국에서는 개인의 자유가 제한되는데 대표적인 것이 이동의 자유이다. 감금 기간 동안 충분한 사유가 있어 이동할 때는 이동 증명서를 가지고 다녀야 했다. 나는 슈퍼 장 보러 동네 안에서만 이동했기 때문에 검문을 당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래도 외출할 때 이동 증명서를 가지고 나갔다. 이동 증명서만 들고 다녀서는 안 된다. 그와 함께 신분증이 필요하다. 이동 증명서에는 외출 목적, 날짜는 기본이고 집에서 출발하는 시간을 적고 자필 사인이 들어가야 한다. 규칙을 어기면 135유로 벌금이 기다린다. 벌금을 매기는 것은 돈을 거두어들이는 목적 말고도 사람들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하려는 숨은 뜻이 있다. 경찰력을 동원하여 물리적으로 통제하는 행위 그 뒷면에 심리적으로 압박감을 주는 또 다른 억압이 뒤따른다.


 코로나 위기로 이동의 자유가 많이 줄어들었다. 전염병이 이동과 접촉으로 퍼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역사적으로 보면 대규모 전염병은 늘 기근이나 전쟁과 함께였다. 대규모 군사적인 이동은 쉽게 전염병을 빠른 속도로 퍼뜨리는 역할을 하였다. 중세 때 페스트는 몽고군의 이동을 따라 유럽으로 전파되었고, 백년전쟁을 통해 페스트가 주민수가 적은 한적한 시골까지 넓게 퍼져나갔다. 소수의 에스파냐 정복자가 아메리카 원주민을 총으로 제압한 게 아니라 천연두의 전파로 면역성이 없던 원주민들이 거의 몰살되었다. 한편 흔히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탐험 때 신대륙에서 옮아왔다고 여기는 매독도 프랑스 왕 샤를 8세가 나폴리 점령할 때 참가한 유럽 각 지역의 용병들을 통해 전 유럽으로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실패는 혹독한 기후만이 아니었다. 발진티푸스 발병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패배의 주요인이 되었다. 나폴레옹 군대가 퇴각할 때 베레지나 강물에 버려진 병사들보다 병실에 버려진 병사들이 훨씬 더 많았다. 1차 세계대전 때는 에스파냐 독감이 전쟁과 함께 번져나갔다. 이동, 그놈의 이동이 없다면 전염병도 맥을 추지 못할 것인가?


 이동이 제한되면서 여행이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이동이 자유롭지 않으니까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게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다. 여기는 또 가보고 싶고 저기는 꼭 가보아야 하는데… 사실 계획대로라면 2020 연말쯤 오랜만에 한국에 다녀올 생각이었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전 세계적 전염병이 터져 그러지 못했다. 코로나가 2년째 접어드는 2021년에는 한국에 다녀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2020년 한 해 동안 파리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일리에콩브레를 다녀온 게 여행의 전부이다. 파리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반쯤 걸리는 곳인데 미루고 미루어 온 여행지였다. 일리에콩브레는 프루스트의 [스완네 집쪽으로]에 등장하는 농촌 도시로 작품에 나오는 지명이 덧붙여진 흔하지 않은 곳이다. 일리에보다 콩브레가 지명으로 더 강한 이미지를 지니게 된 여기를 다녀온 이틀 뒤 2차 감금 조치가 시작되어서 막차를 탄 기분이었다.


 현장 여행이 불가능해지면서 대안으로 등장한 게 신기술을 이용한 가상여행이다. 랜선 투어라고 한다. 미술관과 시내 투어를 이렇게 진행한다.

 실제 여행을 떠나지 않고 상상으로 여행할 수도 있다. 여행기를 읽으면 간접 여행을 한다. 교통이 발전되지 않고 보통사람들의 여행이 일반화되기 전 여행기는 간접 여행의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여행 문학의 전성기 19세기 중반 이국적인 풍습을 소개하는 글이며 그림이나 사진을 통해 독자들은 가보지 않은 곳에 대한 정보도 얻고 환상도 품게 되었다. 

 아니면 자신이 한 지난 여행의 추억을 곱씹으며 다음 여행을 꿈꿀 수도 있겠다. 그 무엇보다도 지난 여행을 떠올려 보는 것이 여행 기분을 되살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지난 여행의 사진이나 여행지에서 사 온 수브니르를 들추어보는 것도 괜찮다. 또 지난 여행의 노트를 열어 추억을 되살릴 수도 있다. 여유가 있다면 마음먹고 여행기를 써보면 어떨까. 때때로 지난 일을 정리하는 것은 정신 건강에도 도움이 되니까 시험 삼아 한번 시도해보자. 여행기를 쓰다 보면 시간 차이로 말미암아 현장에서 느낀 감정이 지금과 달라지고 여행 다녀와서 자신이 그 전과 바뀐 면도 확인할 수 있다. 


 20세기 들어와 비행기나 고속철도를 통한 빠른 이동으로 거리감이 줄어들고 세계화의 영향으로 지역성이 거의 사라졌다. 여행과 함께 발전한 여행 문학은 항해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15세기부터 유행하여 기차가 등장한 1830-1840년대에 황금기를 구가하다가 19세기 말부터 쇠퇴하기 시작하여 20세기 들어오면서 서서히 빠른 이동 수단과 대중 여행의 일반화로 사라져 가는 장르가 되었다. 타지와 타자가 중시되는 여행 문학에서 전 세계가 획일화된 문화로 바뀌면서 더 이상 탐험해야 할 미지의 땅도 나와 전혀 다른 남들도 사라졌다. 어디에 가도 청바지 차림의 사람들과 만나고 맥도널드를 찾아 코카콜라에 햄버거를 먹을 수 있다. 낯선 곳과 낯선 사람이 사라지고 1초 만에 새소식이 전 세계로 퍼지는 21세기에도 여행문학이 가능할까?

 

 2020년 봄 1차 감금 기간 중 영국 여행을 같이 했던 친구와 메일을 주고받으며 다시 한번 리버풀에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친구는 흔쾌히 그러자고 했지만 실현 가능성은 그렇게 높지 않다. 그렇다고 불가능한 일도 아니지만 여전히 코로나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시점에서는 불확실하다. 이동하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여행 계획마저도 숨통을 튼다. 언제쯤 우리는 다시 예전처럼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을까?  



    재외동포는 바이러스다 


 코로나가 얼마나 무서우면 한국에 사는 사람은 멀리 파리에서 2주간 격리를 감수하면서까지 고국에 온 친구와 만나기를 꺼려한다. 한국보다 코로나가 훨씬 많이 번진 프랑스에서 온 사람은 음성 판정을 받아도 잠재적 보균자로 분류되어서이다. 친구가 아니고 코로나 보균자로 낙인이 찍힌다. 이런저런 이유를 둘러대며 친구를 만나주지 않은 경우를 여러 차례 들었다. 부친상을 당해 장례를 치르러 간 상주한테 친척이 파리에서 왔다고 5미터 이상 멀찍이 대놓고 떨어지더라고 아는 사람이 말했다. 가까운 이웃은 음성 판정 증명서를 지참하고 마스크를 끼고 병원의 장례식장으로 부리나케 달려갔는데 프랑스에서 왔다고 장례업체가 반대하여 입관을 지켜보지 못했다고 한다. 재외 동포는 외국에서는 아시아계라고 차별당하고 본국에서는 코로나 위험 국가에서 왔다고 왕따 당한다. 



    코로나에서 살아남기


 페스트가 잦던 시절 병의 원인을 몰라 전염병에 대처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도피나 칩거였다. 코로나 비상시국에도 두 방법은 여전히 유효하다. 재빨리! 멀리! 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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