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신청곡 : 나와 내 이웃에게
친절한 마음은 부족해졌고
약해진 눈동자 들키긴 싫어요
굳은 그 마음은 쉽게도 부러져요
알지만 모르는 사람 더 많아지겠죠
곡 허회경 작곡 작사 허회경
스케일링을 하러 갔다가 충치 치료를 하게 됐다. 후회했다. 무지성으로 치약의 맛만 대충 느끼다 서둘러 끝내버린 양치질들. 충치이슈로 지출 출혈이 컸다. 마음만큼 통장 잔고로 아팠다. 그래도 그냥 두면 썩은 부분이 점점 더 커져서 신경까지 침투한다 하니, 과감한 경질이 필요했다. 이미 못쓰게 된 부분을 갈아내고 그 자리를 메우기 위해 이 모양 본을 떴다. 어금니 일부가 사라지는데 1분도 걸리지 않았던 것 같다. 빈 공간을 대체할 재료를 내 이 모양에 맞춰 만드는데 일주일이 걸린대서 임시재료로 때웠다. 혀로 더듬더듬 쓸어보니 확실히 거칠거칠하다. 내 것이 아닌 존재의 촉감이었다.
일주일 뒤에 임시재료를 정식(?) 재료로 바꾸러 갔다. 임시재료가 붙어있을 때는 몰랐는데 떼어내니 그 부분이 소름 끼치게 시렸다. 신경이 있는 부위라 불편할 수 있다고 의사 선생님이 머리 위에서 말했다. 명색이 어른인데 아프다고 우는소리를 낼 수는 없다. 괜찮다고 우물댔다. 그랬는데, 괜찮지가 않았다. 너무... 너무너무너무 싫은 시린 느낌에 움찔대면서 알 수 없는 소리를 흘렸다. 의사 선생님이 아주 다정하고 친절하게, 아프면 손을 들라고 하셨지만 손을 들지는 않았다. 어차피 해야 하는데 손을 든다고 달라질 것도 없으니 오히려 움찔거리는 몸을 자제시키려고 애썼다. 아마도 몇 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겠지만 치열한 전투에 참전한 느낌이었다.
고통의 시간이 지나고 눕혔던 의자를 세운 후 치료가 어떻게 끝났는지 설명을 들었다. 막상 얼굴을 보니 의사 선생님의 표정은 덤덤과 무뚝뚝 사이였다. 흥미롭게도 입을 여시면 무척 부드럽고 다정하게 느껴지는데, 내가 묻는 질문을 들으실 때의 무표정은 약간 엄하게 느껴졌다. 치료가 끝났다는 후련함에 의사 선생님의 그 대비가 더해져서 괜한 것들을 더 물어보고 싶어졌다. 혹시, 아까 치료받을 때 아프다고 손 번쩍 들면 안 아플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 선생님이 입을 열자 다시 부드러운 표정이 나왔다. '아니죠. 신경이 거기 있으니 어차피 시려요. 그래도 해야죠.' 역시 전문가라도 뾰족한 수는 없겠지. 세균에게 침략당한 나 자신을 반성하는 시간이라고 여기며 참아야 한다.
근데 '많이 아픈가 보다' 생각하면 치료할 때 다른 각도로 해보고, 천천히도 해보고, 더 빨리도 해보고 그런 움직임만으로도 덜 아픈 것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으니 너무 시리면 꼭 손을 들라고 하셨다. '어른이라고 안 아픈 건 아니니까요. 물론 엄살의 정도가 각자 다르긴 하지만.' 말씀하시고 입을 다무시니 다시 조금은 엄해 보이고 세균을 무시무시한 소리로 무찌르시는 스나이퍼(실제로는 총이 아니라 치료 기계로 무찌르지만)의 모습이 되셨다. 다음번에 치과 갔을 때 이가 시리면 그냥 손을 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우는 소리 해봐야, 싫은 소리 해봐야, 아쉬운 소리 해봐야 달라질 것도 없는데 다른 사람에게 나의 아픔을, 약함을, 슬픔을, 서러움을 드러내는 게 무슨 소용일까, 어느 정도는 그런 마음으로 살게 된다. 어떤 상대에게는 그런 모습을 보이면 내 손해라는 생각도 든다. 약점을 드러내면 잡아 먹히는 정글에서는 그렇다. 우리는 각자의 정글에서도 사니까. 집으로 돌아와 웅크려야 편히 쉬는 것 같기도 하니까.
어떤 사람에게 가드를 풀고, 이가 시리면 시리다고 말해도 되는지, 말하지 않는 것보다 말하는 게 나은지, 말하는 게 더 좋은건지 판단할 줄 알아야 한다. 세상에세상에 너무 아팠다고 오버를 떨면서 엄살을 부려도 되는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있어야 한다. 근데 그걸 구분하는 것조차 피로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나의 아픔을 나보다 더 안타까워하는 누군가는 지키면서, 나의 아픔을 먹잇감으로 저장해두지 않을 누군가. 그래서 그냥 나 아닌 사람에게는 모두 어느 정도 가드를 올리고 살게 되는 게 어른인가 생각하다가, 그냥 내가 그런 어른인가 싶을 때도 있다. 적어도 이제 치과에서는 시리다고 말할 수 있는 어른이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