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신청곡 : 심야영화
My days have gone for nothing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매일
그 시간 속에 나
그 시간 속에 나
그 시간 속에서 난
그 시간 속에서 난
곡 하현상 / 작곡 하현상, TEITO / 작사 하현상 Young K
잠이 안 온다. 쓰레기를 수거하는 청소차의 후진음을 뜬 눈으로 듣는다. 거대한 덩치에 비해 조용한 움직임. 누워서 창가를 올려다보면 푸른빛이 비스듬하게 들어온다. 새벽 어스름의 색깔이 초록빛에서 푸른빛으로 바뀌었다. 맞은편 24시간 코인빨래방이 간판 디자인을 바꾸면서 새벽의 색온도가 달라졌다. 코인빨래방의 강력한 세력권 안에 있는 내 방 새벽녘. 이대로 잠들면 깊은 바닷속을 유영하는 꿈을 꿀지도 모른다. 옆에 있는 물개인형도 꿈속에선 마음껏 헤엄치며 함께 바다를 노닐 거다. 잠이 들어야 수영을 할 수 있는데. 눈을 감고 조금 더 버텨본다. 잠이 안 올 때 양을 세는 이유가 양(Sheep)의 음가와 잠(Sleep)의 음가가 비슷해서라지. 평화롭게 초원에서 풀을 뜯는 하얗고 보글보글한 이미지를 머리 안에 가득 채우는 게 일종의 명상 효과가 있어서 잠이 오는 거라고 추측했는데 고전적인 수면유도 레시피에는 생각보다 단순한 이유가 붙어있다. 그럼 Sleep과 비슷한 발음이면 어떤 단어든 상관없는 것 아닌가. Ship도 Sheep과 발음이 아주 유사하니 나는 그럼 배를 세어봐야겠다. 배 한 척, 배 두 척, 배 세 척.... 아무래도 크기가 거대한 유람선이 떠오르는데 두 척 이상의 이미지를 한꺼번에 떠올리는 게 꽤 어렵다. 머릿속엔 공간제한이 없다지만 왠지 욱여넣어야 하는 느낌. 역시 괜히 양을 세는 게 아닌가 보다. 그 사이에 새벽배송을 하는 트럭이 골목 어딘가에서 잠시 멈춰있는 것 같다. 공회전 소리는 왠지 앓는 소리 같아 언제 듣든 힘겹지 않을까 걱정된다.
일부러 멀리 떼어놨던 핸드폰을, 결국 열어본다. 시간을 확인하면 가뜩이나 근처에 없던 잠이 더 멀리 떠난다. 아주 잠깐동안 하릴없이 별 거 아닌 생각을 하다 만 것뿐인데 한 시간도 넘게 지나 있다. 배가 안 고프니 점심은 건너뛰고 저녁에 든든하게 먹어야겠다 생각할 때는 가벼운 마음이 되는데, 잠이 안 오니 오늘은 건너뛰고 내일 든든히 자야겠다고 마음먹는 건 왜 잘 안 될까? 자는 걸 포기하고 다른 생산적인 활동을 하면 이게 바로 비자발적 미라클 모닝일 텐데 유감스럽게도 너무 피곤하다. 이를테면 책을 읽는다거나 내일 해야 할 일을 지금부터 한다거나. 일찍 일어난 새(비록 의지로 일찍 일어난 게 아니더라도)는 다음 날 여유로운 하루를 보내거나, 저녁이 있는 삶을 살 수 있겠지만 지금의 나는 일어난 새가 아니라 그냥 못 자고 있는 새다. 그래서 아마 내일도 분주하고도 저녁이 없는 하루를 보내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드니 더 초조해진다. 눈을 감고 있는데도 왜 눈이 뻐근할까? 하긴 피로한데도 잠은 안 오는 걸. 세상사 모든 걸 이해하려고, 알려고 하는 게 어리석은 짓이다. 모르는 게 많아도 또 막상 살아가는데 큰 지장은 없기도 하고.
이 시간이면 부지런한 누군가는 새벽수영에 갔다 출근하기 위해 집을 나서고 있을 것이다. 점심 도시락을 싸려고 일찍 일어난 사람, 벌써 집 앞 정류장에서 첫 차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도 있다. 나도 한 때는 새벽이라고 불리는 시간에 출근해 사무실 불을 켠 적도 있었지. 교대근무를 서고 아침에 퇴근하시는 수위 선생님과 바통 터치하듯이 회사 엘리베이터로 미끄러져 들어갔던 기억도 난다. 계절과 상관없이 내게 새벽공기는 시원하거나 상쾌하다기보다 스산했다. 아직 어둡기도 하고, 몸이 다 깨어나지 않은 채 둥지에서 튕겨져 나온 어린이인 것 같은 느낌이었달까.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내게 선택권이 있다면(선택권은 그때도 없었고 지금도 없긴 한데) 난 무조건 야행을 고르겠다. 그러니 새벽과 아침 사이에 이런 생각도 하고 있는 거겠지. 사실 새벽과 아침이 명확한 분리가 되는 게 아닌데, 해가 뜨면 그때부터는 그냥 아침인 건가? 해가 어떤 각도까지 올라오기 전엔 새벽이고 그 이후부터는 아침이고... 국내외 석학들이 모여서 충분히 논의하고 합의를 해야 하는 문제가 아닌가 이거 이거. 여름엔 아침이 길고 겨울엔 새벽이 길고, 뭐 그런 식으로. 그건 그렇고 언제나 아침잠이 없어서 하루를 일찍 시작하고 길게 쓰는 친구들이 부럽기는 하다. 나중에 왠지 더 재밌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있을 것 같다. 깨어있는 시간이 기니까 재밌고 황당한 에피소드도 많이 만들고 어린 사람에게 들려줄만한 지혜로운 이야기도 많이 보고 듣고 겪어서 알게 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
여기까지 했는데도 못 잤다면 가망이 없다. 불면과 사투를 벌이는 날엔 스르르 눈꺼풀이 감기는 느낌이 아니라 무대 조명이 블랙아웃 되듯 확 꺼지는 것처럼 잠들었다가 깨는데 그럴 기미가 안 보인다. 내일 자면 되지. 내일 자야지. 내일은 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