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셋. 깊은 생각은, 조용히 떠오른다
‘내가 살면서 무언가를 통찰하고 있다고 느낄 때는 언제였더라?’
직장 일이든, 가정일이든 어떻게 하면 좀 더 잘할 수 있을까 고심했던 적이 있다. 일종의 요령이나 방법론에 관한 리서치를 한 셈인데, 각 방면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은 의외였다. 바로 시간 관리 자체보다 일에 대한 마음가짐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찾거나 아니면 지금 하는 일을 좋아하게 만들거나’가 관건이다. 사실, 덕업일치는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실제 덕업일치를 이룬 사람들도 그랬다. 처음엔 워라벨이고 뭐고 엄청 열정적으로 일하면서도 행복했단다. 이 정도면 몰입 수준이다. 그러나 그들도 그 일이 ‘치열한 밥벌이’를 위한 노동의 일환임을 절실하게 인식하게 되면 상당히 괴롭다고들 했다. 박경리 작가도 토지 작품을 마무리하기 괴로워 ‘못떠나는 배’라는 시를 썼고, 헤르만 헤세도 사람들의 쏟아지는 찬사 뒤에 가려진 자신의 괴로움을 ‘알아주는 이 아무도 없었다’라고 씁쓸하게 되뇌었다지 않나. 한평생 예술혼을 불태운 자들의 고백이 그렇다. 웬만한 내공이 아니고서는 덕업일치의 삶도 강도 높은 노동으로 변질하기 쉽다. 뭔가 억울하지만, 그것이 욕망의 민낯이기도 하다. 상상해 보라. 자신의 자아실현이자 개성화라고 생각했던 일이 되레 철저한 사회화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면? 얼마나 충격적이고 슬픈 일인가.
그래서 모든 성공 신화를 다루는 자기 계발서에는 일상에서 발견을 즐기는 감각을 기르라고 한다. 대단한 것보다 사소한 것에서 마음 그릇을 넓히라고, 행복도 감각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생각이나 감각을 키운다는 게 어디 그리 만만한 일이던가. 우선, 뭣도 모를 때에는 와장창 깨져본 후에나 조심할 줄 알고, 그런 경험들에 속수무책으로 또 당하지 않기 위해서 조금씩 ‘생각’이라는 걸 하게 된다. 그리고 비로소 그 생각할 ‘시간’이 당장 출근해서 밥벌이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걸 알아차리는 시점이 있다. 생각은 시간이 필요하고, 그 시간에서 길어 올린 나만의 통찰은 다시 고스란히 나만의 ‘감각’이 된다. 그 감각이 내 일상을 지배한다.
살아오면서 내 인생의 명장면이라 할 수 있는 순간들이 떠오른다. 이 땅을 벗어나 보고 싶다는 열망, 결혼할 결심, 새로운 도전, 선례 없는 일들, 수많은 선택과 결정 앞에서 나는 얼마나 애썼던가. 스스로 외부 자극을 ‘봉인’하고, 진공 상태를 자처하며 고심했던 시간이 없었더라면 그나마 이런 모양의 인생도 나오지 않았겠지. 「딥 워크」(칼 뉴포트 저)에서는 깊이 있는 사고는 삶을 질적으로 바꾼다고 강조하며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깊은 일은 산만함을 제거하고 혼자 있는 시간을 확보할 때만 가능하다.”
빌 게이츠가 '생각 주간(think week)'동안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곳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의 핵심 전략을 구상한 것이나, 칼 융이 학계에서 외면당하면서까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 끝에 분석심리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정립한 것은 인류에게 있어 존경할 만한 성과 아닌가. (개인적으로 마야 안젤루나 조앤 k.롤링과 같은 작가들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호텔 방을 빌려 마지막 집필에 심혈을 기울였다는 사실은 진심으로 따라 해 보고 싶은, 내 안의 명장면이기도 하다)
‘딥 워크’라고 해서 열심히 일하는 방법만 그득 할 줄 알았다면 오산이다. 책에 의하면, 인공지능에 대한 신뢰가 급속도로 깊어지면서 현대인의 업무 중 네트워크 작업처리만 30%를 웃돈다고 한다. 이는 ‘딥워크’(가치 있는 목표에 몰입할 줄 아는 21세기 초능력!)를 방해하는 전형적인 피상적 업무이며, 이를 바쁘게 처리하면서 자신의 가치를 적당히 수습하고 보존하는 게 대부분 현대인의 모습이다. 따라서, 저자는 ‘딥 워크’의 희소 가치가 머지않아 빛을 발할 것이라 예견한다. 바야흐로 ‘딥 워크’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삶의 전면에 내세운 소수만이 성공하는 시대가 도래한다는 것이다.
“작은 나쁜 일들이 일어나도록 내버려두는 습관을 들여라. 그렇지 않으면 인생을 바꾸는 큰 일들을 위한 시간을 절대 찾지 못할 것이다.”
모든 일에 공들일 시간이 없다. 내게 직장에서의 업무 처리 능력은 내 일상의 감각 수준과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 퇴근 후 각종 집안의 대소사도 ‘딥 워크’의 의미로 잘 이해하고 기획한다면 견딜 만하다. 특히, 작은 나쁜 일들은 일어나도록 내버려둔다는 구절이 마음에 든다. 그동안 작은 나쁜 일들부터 막아야 더 큰 실수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했다. 조바심 냈다. 무리수도 감행했다. 이제는 마음가짐을 고쳐먹는다. 하마터면 실수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인정은 받고 싶어 하는 애처로운 캐릭터가 될 뻔했다.
최근 한 기사에 의하면, 업무 중 챗GPT를 활용한다고 답한 회사원들이 67%에 육박한다고 한다. 상사의 스타일에 따라 ‘최대한 활용하라’ 말하는 사람도 있고, ‘그게 인공지능 실력이지 네 실력이냐’라고 면박 주는 사람도 있는 모양인데, 아무렴 어떤가. ‘딥 워크’는 가치 있는 목표를 추구하려는 이에게 고마운 도구(tool)일 테고, 자기만족이나 여유 시간이 고픈 이들에게는 위기를 모면하게 해 주는 예쁜 포장지로 쓰이겠지. 문제는 누가 가치를 알아보는 능력 있는 사람들이 되느냐인데, 당신이나 나나 귀한 시간을 어디에 쓸 것인가부터가 급선무이겠다.
내 통찰력은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칼 융의 발끝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잔잔한 내 인생에서 그 많은 세월 동안 혼자 시간 내어 원대한 목표를 세울 엄두도 내지 못했다는 게 더 신기할 지경이다. 그래도 괜찮다. 많이 아파 봤고, 인간관계로 상처도 많이 받아보니 저절로 그들이 말하는 ‘혼자만의 시간’을 찾게 되더라. 애써 확보한 혼자만의 시간임에도 삐질삐질 새어 나오는 외부 잡음을 견디기가 어색하다. 통찰력은 그냥 생기는 게 아니었고, 일상에 대한 감각도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는 게 아니었구나. 그래도 남은 내 시간에 대해 차분하게 생각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중년에 조망해 보는 시간 개념은 하루 루틴 잘 보내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먼 미래까지 가늠할 수 있어야만 한 발짝 성큼 움직이게 되는, 묘한 까다로움이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혼자만의 시간은, 깊은 생각을 만나, 내 마음에 바람을 일으킬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으로부터 나의 모든 시간이 자유로이 재배치되어 사뿐히, 지금 현재에 내려앉을 것이다. 그러면 내 일상을 보내는 시간, 휴식 시간, 자투리 시간은 새로이 단장하고, 묵묵히 제 시간을 누릴 것이다. 아름다운지 모르고 흘려보내는 시간이 아니다. 그저 견뎌야 하는 시기인 줄 알고 버티는 시간이 아니다. 제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인 성숙한 시간이다. 그러니 시간 앞에서 떨지 말자. 두려워 말자. 잘 받아들이자.
“나이가 들수록 시간은 더 빨리 흐른다.
그러나 그 속에서 우리는 더 깊이 살아간다.”
-파울로 코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