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여섯. 저도 '좋은 어른' 되고 싶습니다
“선생님, 모레가 축제잖아요. 그런데 지금 리허설 준비도 안 되어 있고, 수행평가 기간인 데다 부원들 아무도 신경을 안 쓰고 있어요. 어떡해요? 애들한테 빨리 자료 좀 보내 달라고 부탁했는데도 말을 안 들어요.
너무 속상해요.”
야무진 성격의 그 아이는 다른 아이들의 눈을 피해 내게 달려와 하소연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닭똥 같은 눈물까지 뚝뚝 흘리며 흐느끼는 게 아닌가. 순간 당황했지만, 그 아이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 것 같았다. 나 역시 10대 후반에는 완벽주의 성향이었고, 까칠했으며,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 부들거리곤 했으므로.
돌이켜보면, 그랬던 내가 교사가 되어 아이들의 까칠한 마음, 욱하는 마음, 갑갑함 마음을 헤아리게 된 것도 다 빛바랜 경험과 시간이 현재와 만났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특히나 10대 후반에는 주변에 마음에 드는 어른이 없어서, ‘내가 어른이 된다면 기필코, 저러지는 않을 거야’ 했던 일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때나 지금이나 100여 년 전이나 권위에 취해 아이들을 짓누르려던 어른 버전 빌런은 늘 있기 마련이다.
문제는 그렇게 원하던 어른이 되고 나서도, 정작 뭐가 좋은 어른인지 모르겠다는 거다. 우선, 나부터 그리 좋은 어른 편에도 속하지 못할뿐더러, 그림처럼 예쁜 ‘어른 모델’이 있는 세상도 아니지 않은가. 다만, 같은 시공간에 살면서 참 진솔하고 귀하다 싶은 어른을 만날 때면, 마음 한편이 아늑해지면서 나 역시 저리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솟아오른다는 거다. 일본에서 공부하던 시절, 한국에서 퇴임 후 일본대학 명예 교환 교수로 오신 분과 식사할 때였다. 그분은 한참 어린 나에게 “자네 전공은 뭔가?” 하며 조심스레 물었고, 내가 ‘일어 교육’이라고 말하자 의미 깊은 표정을 지으셨다. 그리고는“음. 어려운 전공을 택했구먼. 한국인이 일어 교육을 하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거야.” 하셨다.
솔직히 그때는 교수님 말씀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헤아리지 못했다. 그러나 공부하면 할수록 당시 교수님의 말투와 눈빛, 사려 깊었던 태도는 지금까지 큰 힘이 되고 있다는 걸 안다. 상대가 내게 아무런 기대나 요구도 하지 않았는데, 절로 숙연해지며 차분해지는 편안함은 그랬다. 말을 유창하게 잘하시는 분이 아니어도 그분은 내가 느끼는 것, 내가 하는 말에 찬찬히 반응하며 존중해 주셨고, 자신만의 엄청난 경험치가 있어 보임에도 고요함을 유지하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유학 생활 잘 보내라는 격려의 말. 간단히 식사를 마무리하고 나서도, 그 편안함은 한동안 내게 깊은 여운을 남겼다. 마치 앞으로 내 유학 생활이 어떻게 펼쳐질지 무척 기대하면서도 대부분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는 눈빛. 지혜로운 어른의 따뜻한 말 한마디는 이 세상의 감사함까지 알게 하는 것이었고, 비록 그것이 좋은 어른의 단면이라 할지언정 내겐 조용한 충격이었다.
당신도 가끔‘나도 제법 어른스러워졌구나’ 싶을 때가 있지 않은가. 예전 같으면 못 견디고 한마디 했을 일에 가만히 웃고 말거나, 매사에 열심히 하려는 마음보다 이걸 지금 안 하면 두고두고 후회할 일인가를 먼저 생각할 때 말이다. 아이를 대하는 마음은 어떤가. 나를 괴롭히는 거추장스러운 존재라기보다 내 본모습을 직면하게 하는 쓰라림이 더 견디기 어려운 건 아닌가. 남편 역시 그렇다. 아무리 서로 좋아한다고 할지라도 사랑과 별개로 감당해야 하는 각자의 외로움은 고유한 것이며, 어쩌다 눈을 마주치면 익숙한 듯 미소 지을 수도 갑자기 슬퍼질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나는 그랬다. 시간이 지날수록 좋은 일을 그때그때 음미하기보다 좋지 않은 일을 예민하게 감지하는 능력이 발달했는데, 전후좌우로 그 수많은 불씨를 없애느라 끙끙거리던 시간이 결승선 없는 릴레이라는 걸 뼈저리게 알고 나서야 가만히 멈출 수 있었다. 어찌 보면 아프고 힘들었던 만큼 나는 나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으니, 그것도 성장의 중요한 전환점이라 여긴다. 이 세상에 ‘눈물겨운 성장’은 있어도‘아름다운 성장’은 없다. 그것부터 알고 있어야만 나보다 오래 살아갈 이들에게 어떻게 해 주어야 할지 감이 잡히는 거라고, 믿게 되었다.
『나의 적에게』(키다리 아저씨의 후속편/ 진 웹스터 저)라는 소설은 좋은 고아원 원장이 되고자 노력하는 어른 샐리가 주인공이다. 어른의 속내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편지글 형식은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잠깐 소개하자면 이렇다. 악마의 씨앗을 품고 나온 듯, 반항아 기질이 다분한 아이 펀치가 결국 원장실까지 고래고래 고함지르며 끌려왔을 때, 그녀는 이렇게 생각했다고 주디에게 고백한다.
“그 전부터 나는 버림받은 이 아이가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으리라고 생각되는 새로운 훈련 방법을 시도해 보려던 참이었어. 칭찬과 격려와 사랑이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 보기로 했지. 그래서 화분을 깨뜨렸다고 야단치는 대신 그것은 단지 사고일 뿐이었다고 말해줬어. 그리고 아이한테 입을 맞추고서 미안해할 것 없다고, 나는 괜찮다고 말해줬어. 그런 내 반응에 놀랐는지 아이는 조용해졌어. 조용히 숨만 내쉬면서 자신의 눈을 닦아주고 쏟아진 잉크를 닦는 나를 빤히 보기만 했어.”
중학교에 있는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해 준 적이 있다. 전교생 누구도, 교직원 어른 중 누구도(교장샘조차도) 감당하기 힘들어하는 아이가 있었는데, 이 아이가 괴물처럼 상담실에서 난동을 부릴 때, 친구는 아이의 얼굴을 감싸안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아, 샘 보여? 샘이야. 샘. 알아볼 수 있겠어? 그래그래. 이제 괜찮아. 이제 정신 돌아온다.
아이고, 됐다.”
같은 교실에 있었던 그 많은 경찰들과 생활지도부 선생님들 앞에서 아이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차츰 정신을 가다듬었다. 사실, 어른들은 누구에게나 상처가 있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저들처럼 행동하지는 못한다. 감히 그 상처를 깊이 헤아리지 못하기 때문이며, 시간이 주어져도 이를 헤아릴 만한 심적 여유는 없다. 무엇보다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경험치가 없으며, 좋은 어른의 유의 깊은 행동이 얼마나 한 사람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도 간과하며 살아왔을 가능성이 크다. 당신에게 펀치나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에서의 제제처럼 날뛰던 때가 있었다면 묻고 싶다. 누가 그걸 멈추게 했는지. 그는 어떤 어른이었으며, 지금은 어떤 관계로 남아 있는지.
펀치나 제제가 장난이 좀 심하긴 하다. 그러나 작품 속에서 펀치가 좋은 양육자를 만나 고아원을 떠나고, 제제도 더 이상 라임오렌지 나무에서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장면을 보면, ‘좋은 어른’의 기억이 얼마나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남아 인생의 가치를 전승하는지를 알 수 있다.
중요한 건 샐리에게나 내 친구에게나 유의 깊게 아이에게 관심 두고 사유했던 시간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행동이 아이에게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음을 준비했고, 마음을 기울였다. 나는 어른이 될 준비를 하지 못했다. 마냥 어린아이처럼 더 가지지 못한 것에, 더 해보지 못한 것에 굶주려 있었고, 타인의 시선을 늘 염두에 두며 도태되지 않으려고 달려만 왔다. 내 말투나 행동, 표정은 시간이 알아서 만들어내는 흔적에 지나지 않았으며, 그런 사소한 것들이 나보다 어린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안 해 봤다. 늘 아이들에게 그럴듯한 모습만 보여주려 했다. 그러니 나는,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상상’만 주야장천 하면서 살았던 거다.
웃으면서 상냥하게 아이들을 대하는 엄마를 아이들이 싫어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큰 소리 한 번 치지 않았는데도 그 어른이 무섭다고 피하는 아이들과, 큰소리치고 똑같은 말을 했는데도 아이들이 씨익 웃거나 나중에 슬며시 찾아와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려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이 어른이라면 ‘괜찮겠다, 이야기해도 되겠다’는 자신만의 레이더와 데이터. 그 믿음 하나만으로 힘껏 배팅하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이 상황을 이해하는 당신이라면, 정중하게 대답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축제가 바로 코앞인데, 마음이 쪼들리지? 근데 말이야, 너무 걱정하지 마. 학종 준비 안 하는 애들한테는 수행평가가 더 중요하니까. 걔네한테 학예제 준비 빨리하자고 보채 봐야 급선무는 아니거든. 샘이 알아보니 수행평가 내일까지라더라. 그러면 남은 하루 동안이라도 다 같이 남아 기획해 둔 거 인쇄하고 세팅할 수 있어. 네가 혼자 준비한다면 벌써 다 했을 테지만, 학교 일정과 아이들 교과 시간표가 다 다르니 어쩌겠어. 기다리면서 네가 할 수 있는 걸 찾을 수밖에. 너는 대신 축제 준비 일정을 새로 공유하고, 당일 행사 진행에 착오 없도록 도우면 돼, 샘도 도울게. 알았지?”
눈물이 쏙 들어간 그 아이는 그제야 진정이 좀 되었는지, 한결 나아진 표정으로 교무실을 나섰다.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어른이 된 기분이다.
“아이들은 어른의 말이 아니라 어른의 행동을 따라 배운다.”
– 제임스 볼드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