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도움받은 사람들에게 보답하는 방식

2장 일곱. 구체적으로 어떻게 도울 것인가.

by 스쿠피

“1.내 조부 베루스에게서는 선량하다는 것과 온유하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


『명상록』(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저)의 시작은 놀라웠다. 내 조부한테 선량함과 온유함을 배울 수 있었다는 한 줄을 시작으로, 아버지한테 겸손함과 남자다움을, 어머니한테 경건한 삶과 베푸는 삶을, 나아가 자신의 개인 교사나 동료한테 이런 거 저런 거 다 배워서 내가 있을 수 있었다는 내용을 한 장(chapter)에 다 갈아넣은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요즘 말로 명상록 1장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감사합니다”로 끝낼 수 있겠지만, 직접 읽어보시라. 뻔하다면 뻔한 집안 가족을 한 명씩 일일이 언급하며, 품격 있게 배울 점을 묘사해 놓은 필력, 1,000년 넘은 아우라를 품은 글귀답다. 그는 1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자신의 인생을 조망하며 이 모든 것이 신의 은총이고, 자연의 섭리임을 일찌감치 깨달은 듯하다. 그래서인지 죽음을 크게 두려워하는 기색도 없고, 자신이 누릴 수 있었던 모든 걸 기억한다는 듯, 주변 인물들에게 그렇게 배울 것이 많았다고 긴 지면을 할애할 수 있었나 보다.

얼마나 고마운 마음이 깊어야 가능한 일일까. 내가 누군가에게 배울 점이 많다고 깊이 칭찬해본 적이 얼마나 자주 있었던가. 과연 내가 ‘사람들에게 도움 받고 있구나’하고 알아차리는 인식력이 정상적인 수준이긴 한 걸까. 중년 나이에 접어들면, 굳이 철학관이나 정신과 상담을 받으러 다니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내 아집의 수위와 기질의 장단점이다. 이를테면, 그렇게 고심 끝에 결정했건만, 결국 내 기질적 특징을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고(과감한 패션이나 화려한 화장법 연출은 여전히 내 기질과 안 맞다) , 많이 내려놓았다 하면서도 내 고집의 한계는 옅어지는 것이지 탈바꿈할 수 없다는 것(‘고집멸도’가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등이다. 어쩌면 그래서 내가 기억하는 도움은 화려한 것보다 조용한 것이 많을 수밖에 없었고, 다른 사람들에게 대놓고 ‘도와주세요’라는 말이 잘 나오지 않았던 배경이기도 하다. 흔히 인복이 있다느니, 귀인이니 하는 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겐 그저 공허한 단어일 뿐이었다.


착실하게만 사는 내가 답답했던지, 누군가는 내게 그랬다. 도와주면 언젠가 보답해야겠다는 마음도 훌륭하지만, 그저 도움주면 주는대로 좀 받아도 보라고. 그래야 그 선행도 순환하는 거 아니겠냐고, 도움도 제대로 받아 봐야 제대로 베풀 수 있는 거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덧붙이길, 내가 너무 사소한 것까지 진지하게 생각해서(과한 도움도 빚이 될 수 있다는 생각), 정작 보답할 수 있는 기회는 관계가 멀어진 후거나, 아예 놓치게 되는 것도 안타깝지 않겠냐 했다.


<Pay it forwrad>(미미 레더 감독/2001년 개봉)라는 영화가 있다.(개봉 당시,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상영되었다) 중학생 트래버는 첫 사회수업시간에 ‘엿 같은 세상을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드는 방법’에 대해 조사하는 숙제를 받았다.


일명 “Think of an idea to change our world – and put it into action.”

(세상을 바꿀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그것을 실천하라.)


덧붙이자면, 이 주제로 한 학기 내내 수업을 할 것이며, 실제 그 방법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숙제에 진심이었던 트래버는 고민 끝에, 등하교길에 만난 노숙자를 자기 집에 데려와 먹여주고, 재워준다. 엄마는 이 사실을 알고 어떻게 대응할까. 싱글맘에 워킹맘인 트래버 엄마는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었지만, 노숙자가 창고에서 고장난 차를 수리하는 것을 보고 마음을 고쳐 먹는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숙제 내 준 교사를 찾아가 언쟁을 벌이기도 하지만, 결국 아이가 품은 깊은 생각을 따르기로 결심한 것이다.

트래버 식 ‘엿 같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방법’은 이렇다. 우선, 자생력을 잃은 사람 세 명에게 큰 도움을 준다. 기브 앤 테이크 식이 아닌, 조건 없는 선행이다. 일단, 출발은 이렇게 해야 한다. 선행(善行)도 선행(先行)해야 한다. 그런 다음, 도움받은 사람은 전혀 다른 사람 세 명에게 선행을 베푼다. 그러면 그 세 명은 각각 또 다른 사람을 도와서 수를 불려 나가고, 어떤 도움이라도 계속 이런 선행이 반복된다면 온 세상이 좋아질 것이라는 논리다. 언뜻 다단계 생각이 나긴 하지만, 영화 속 트래버의 표정과 프로젝트를 몸소 실천하려는 순수한 의지와 신념은 존경스러운 면이 있다. 영화는 점점 아이의 프로젝트가 입소문을 타게 되자 교실에서 트래버의 방송 인터뷰 녹화까지 하게 되고, 정작 TV방송이 나가는 날에는 트래버 없이 모든 이가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생각 깊은 아이가 만들어 낸 선행 프로젝트. 이 영화가 이렇게 깊은 감동을 주는 이유는, 그 기획력보다 실천력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저기서 주고도 손해 보지 않는 진정한 기버(Giver)되기에 얼마나 혈안인가. 영화에서 트래버가 아이지만 교사 유진의 자기 인식 수준을 뛰어넘는 인생조언을 해 주고, 아이 역시 유진의 “네가 생각한 대로 해 봤으면 좋겠다”라는 말에 힘입어 존재감을 회복하는 과정은,‘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싶은 현실 장면 같아서 자꾸만 눈물이 났다.

왜 나는 타인의 도움을 편히 받지 못했을까. 트래버의 신념을 따르자면, 선행은 무보수고 꼭 갚지 않아도 된다. 그냥 바이러스처럼 다른 이들에게 퍼뜨리는 것이고, 그 연쇄 작용(chain reacion)을 믿으면 된다. 이제야 감이 온다. 나는 트래버처럼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고, 어쩌면 좋은 일이 연쇄 작용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생각, 그 생각을 행동으로 실천할 만한 믿음이 없었다. 트래버는 생의 마지막 장면에서 억울한 표정이라기보다는 “이럴 수도 있구나”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조금이라도 다칠까 봐, 먼저 상처입을까 봐 늘 도움주기를 주저했던 게 아닐까.


영화의 엔딩 장면은 매우 상징적이다.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엿 같은 세상은 한편으로 사실이고, 또 한편으로 더 나아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강하게 어필하기 때문이다. 세상이 찌들어 말라간다 해도 살아 있는 동안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뭔가 실천해 보겠다는 고민은 필요하다. 당신이나 나나 중년의 나이가 되어서도 다른 이들에게 마음껏 친절을 베풀지 못하는 이유는, 소심한 어른의 방어 기제이기도 하겠고, 이 세상은 아직 충분히 온전치 않다는 불신감이 짙게 깔린 탓 아니겠는가. 트래버처럼 두려워말고, 용기있게 조건없이 먼저 선행을 베푸려는 행동, 영화는 그것이 연륜이나 지혜와 전혀 상관없는 것임을 증명해 주었다.

누군가 내게 진심으로 도움을 주려 한다면 받을 줄도 알아야겠다. 기꺼이 받아서 다른 이들에게 선행을 퍼트리는 것으로 조금 더 나은 세상에 일조하겠다. 내게 도움 준 만큼 가져가겠다는 부류, 호의적인 태도만으로 실속은 챙기겠다는 부류, 상대가 불편해하는데도 집요하게 도움받겠다는 부류는 자격박탈이다. 트래버가 말하는 선행은 기브 앤 테이크가 아니었다. 자생력을 잃은 자들에게 진심을 담아 삶의 방향까지 바꿀 수 있는 깊고 실질적인 도움이었다.(in a really big way) 그러려면 사람들을 주의 깊게 보고, 그들이 말하지 않는 걸 들을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sort of pay attention to the things they don’t say.)

어떤가. 당신에게 떠오르는 바로 그 아이디어, 나와 함께 실천해 볼 생각 없는가.

“What did you ever do to change the world?”

(선생님은 세상을 바꾸기 위해 지금까지 뭘 해봤어요?)

-영화 초반부, 트레버가 유진 선생님께 던진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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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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