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일기,효과있다!

3장 둘. 너도 나도 잘 커야지.

by 스쿠피

‘극도로 흥분한 상태였다. 눈동자에 초점을 잃고 부들거리고 있을 무렵, 큰 애가 다가와 나를 안아 주었다. ...언제 이렇게 컸단 말인가.’


‘아이가 각별한 관심으로 빌려달라는 책이 생겼다.

학급 도난사건, 소셜 네트워크 , 성(性) 이야기 등이다.

시간 내어 봐야겠다.’


내 육아일기의 일부분이다. 감사일기는 익숙하지만, 육아일기는 지금도 조심스럽다. 그도 그럴 것이 감사일기는 복기하듯 하루를 되짚으며 마음을 정돈시키는 면이 많은 반면, 육아 일기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내게 육아일기는 아이와 나의 관계일지이기도 하고, 아이에게 조심스럽게 펼쳐지는 로드맵과도 같다. 아이가 처음으로 뒤집기를 하거나 옹알이를 하는 것에 감사하고 놀라워했던 일기와는 질적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육아일기를 제대로 쓰기 시작한 것은 최근이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잦은 의견 충돌과 그로 인한 내 잔소리가 진화했다. 간혹 엄마의 촉으로는 뭔가가 있는데 굳이 말하지 않으려는 미묘한 아이의 분위기, 아이가 말하지 않으면 전혀 알 수 없는 학급 분위기, 학원 분위기, 친구들 간의 분위기가 궁금했다. 다 알 필요도 없고, 다 알 수도 없겠지만, 알아두지 못해서 후회하기는 싫었다.(이런 느낌 많이 겪을수록 힘들어지는 거 아니까.)조금 번거롭더라도 궁금한 것은 시간을 두고 관찰하자 싶었다. 또래 엄마들의 커뮤니티에서 듣는 내 아이 소식이 아닌, 무심코 내 아이에게 던진 어르신들의 섣부른 평가가 아닌, 어디까지나 내가 관찰한 아이의 모습, 표정, 행동, 대화에서 시작하는 기록.


쓰다 보니, 흥미로웠다. 사소한 것이지만 아이들은 기억력이 대단했고, 인상 깊었던 경험은 자신들 특유의 감각으로 열중하고 탐구하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걸 그동안 내가 일한답시고 ‘다 귀찮다, 귀찮다’ 했구나. 큰 아이는 자신이 겪었던 일상의 경험담을 만화로 풀어내어 창작하는 활동을 하더니, ppt 몇백 장으로 만들어 학급 아이들과 공유하곤 했다. 다음 시즌은 언제 나오냐며 기다리는 아이들도 있다고 했다. 자기는 메인 작가라나 뭐라나. 둘째는 인형을 사 모으는 걸 좋아했는데, 어느 시점부터 바늘과 실을 사서 동영상을 보고 인형을 자체 제작하기 시작했다. 단 한 번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바느질, 바느질 같이할 시간이 어디 있느냐고 외면했던 수많은 순간. 육아일기를 적기 시작하면서 내가 놓친 순간들을 마주했다. 조금만 들여다보고 관심 기울여주면 되는 것이었다. 그 ‘조금만’이 끝내 안 될까 봐 두려워한다는 것을, 일기를 통해 보았다. 그 순간들을 다 놓치면서 뭘 해왔던 거지?


둘째를 위해 원데이 클래스를 알아보았지만, 아이가 원하는 수업을 찾기는 어려웠다. 아이는 틈틈이 하교 후, 인형 만드는 동영상을 반복하며 따라 만들었다. 같이 해보기엔 상당히 공이 많이 드는 작업이라 엄두가 나질 않았다. 내 선에서 어디까지 해 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주말에 원단 도매시장에 가서 인형 만들기 재료를 구경하며 용돈으로 사 보게 했다. 둘째만의 전용 인형 박스를 만들어 이런저런 부재료 할 만한 것들(택배에 딸려 오는 포장지나 스펀지 등)을 챙겨 주었다. 변덕스러운 기질의 아이는 존중받은 느낌이 들었는지 지금도 그 원단 상자를 보물 상자처럼 책상 밑에 두고 틈틈이 작업한다.


이 세상 수많은 경험 중에 네가 관심 있어 하는 것, 그 길을 따라 조금만 귀를 열어두고 함께 느끼는 일. 그게 내게는 그렇게 힘들었나 보다.


육아일기는 바쁜 워킹맘에게 ‘기능적 엄마’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방법이었다. 육아일기를 쓰는 순간, 아이에 대한 내 태도가 입체적으로 보였다. 내가 별 생각 없이 했던 말이나 행동이 이런 식으로 표현되는구나 싶은 순간이 끝도 없이 펼쳐졌다.


“(학원 가는 길에 도로 인형뽑기 가게를 보며) 엄마, 저 인형을 세 번 만에 3천 원 들여 뽑았다고 쳐.

그럼, 그건 도박인 거야 투자인 거야?”


“엄마, 챗 GPT는 뭐든 다 알고 있잖아?

그럼 내가 랜덤박스 인형을 사기 전에 안에 어떤 인형이 들었는지도 알까?”


“(아침 라디오에서 내수경제 이야기가 나오자)

엄마, 그러면 할머니가 우리한테 용돈으로 주는 돈도 내수경제에 도움 되는 거야?”


학원 픽업을 하면서 나누었던 자투리 대화들이었다. 아침 라디오 방송을 들으면서 주고받았던 질문들이었다. 아이들이 말해 주는 학교나 학원에서의 갖가지 에피소드를 역할극으로, 성대모사로 재현했더니, 금방 까르르거렸다. 아이들의 컨디션은 말보다는 표정이나 반응으로 파악하기가 훨씬 수월했다. 재미난 이야기들을 기록해 둘수록 자료는 쌓였고, 아이와의 대화에도 자연스럽게 리듬이 생겼다.

‘너 저번에 000 관심이 있다고 했잖아. 엄마도 생각해 봤는데, 이번 주말 어때?’

‘전에 우리끼리 했던 이야기 기억 나? 그 뒤에 우리 어떻게 하기로 했더라? ’


늘 진두지휘하느라고 정신없던 내가 육아일기를 쓰면서 아이 의견을 물어보는 일이 많아졌다. 아이 둘 다 기질이 확연히 달라서 이견 조율하는 데 꽤 애를 먹지만, 그럴수록 서로에 대해 알게 되는 게 많다. 이왕이면 가족끼리 다 같이 움직이자는 논리도 버릴 것을 권한다. 큰 아이와 나, 둘째와 나, 신랑과 나, 신랑과 아이들, 나와 아이들. 다양한 배합으로 일정을 누렸을 때, 의외로 가족이라는 이름이 굴레로 작용하는 부분이 컸다는 것을 알게 된다. 둘째는 나와 단둘이 있을 때 한없이 순해졌고, 첫째는 매우 조숙해서 나를 놀라게 했다. 신랑 역시 단둘이 있을 때면, 그 밉상이 모범생이 된 듯 머쓱해한다.


아끼는 색깔 펜 두세 개면 준비 완료다. 아이를 연상케 하는 색깔 펜을 쥐고 조심스럽게 써 보자. 누군가가 육아일기 쓰고 있는 당신을 내려다보는 느낌이 든다면, 그는 바로 성장한 당신일 것이다.


“내가 너를 낳아 기르는 와중에 나도 조용히 자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 거리감을 잃고 싶지 않단다.

부디 내 가장 손쉬운 노력이라고 비웃지 말고,

상큼한 미소로 편한 발걸음 이어갔으면 해.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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