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부모’도 ‘좋은 부모’다

3장 하나. 내가 맘에 안 들어도 끌어안기

by 스쿠피

“잠깐 쉬었다 하자. 네 문제가 아니라 엄마가 문제인 것 같아.”


아이 수학 문제를 봐 주다가 나도 모르게 나온 말이다. 아이가 이해 안 된다는 문제를 애써 설명해 주었는데 그래도 이해가 안 된다며 짜증을 부린다. 자신의 수준에 맞게 풀어서 설명해달라는 뜻이겠지. 아무리 내가 어른이고 엄마라지만, 내 아이가 어느 부분에서 갈증을 느끼고, 어떤 개념이 특히 흐린지, 정확히 무엇이 정답을 방해하고 있는지 순간적으로 파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엄마라면, 이런 것까지 순식간에 파악하고,

아이 기분에 맞추어 설명을 척척 해낼 줄 알아야 하는 거였나.


진짜 문제는 아이의 기분이었을 것이다. 숙제하기 싫다는 마음. 하는 척해 보지만, 틀린 문제를 주말 저녁에 차근차근 생각해 볼 마음의 여유 따위 생길 리가 없다. 이 기분, 어서 엄마가 냉큼 눈치 빠르게 파악해서 ‘할 만한 일’로 만들어 달라는 S.O.S. 숙제도 다 마음을 내어 공들여야 하는 일이라는 것. 수가 다 보이지만,

도저히 나를 못 견디게 하는 이유도 분명했다.


바로 ‘지금 내 감정, 이 상황은 내가 원하는 게 아니야!’라는 확신이었다.


『당신이 옳다』(정혜신 저)에 의하면, 좋은 감정이든 나쁜 감정이든 모든 감정은 옳다고 한다. 그 자체로 존중받을 필요가 있으니, 단순하게 보이는 모습만으로 좋은 감정, 나쁜 감정으로 가르지 말라는 뜻이다. 아이의 수학 문제를 봐 주면서 올라온 내 감정은 단순히 나쁜 감정이었을까. 그렇다면 왜 나는 그 상황을 나쁘다고 느끼고 판단해 버린 걸까. 아이가 조금씩 성장하고 명민해질수록 나아질 거라 믿었던 내 생각은 예상을 빗나간 지 오래다. 오히려 생전 처음 느껴 보는 복잡한 감정이 알 수 없는 순간에, 예상치 못한 형태로 불쑥 삐져나와 잠자고 있던 내 감정들을 깨우고, 건드렸다. 이건 짜증인가 자기혐오인가 불안인가 두려움인가.

머리로는 수천 번 각오했지만, 역시 내 마음은 못 견디겠다고 아우성이구나.


그녀는 이 불안 신호를 따라 ‘나’를 점검해 보라고 조언한다. 끈질기게 쫓아가 보면 근원이 나오고, 내 존재의 핵심에 다가가는 일, 내가 나에게 공감하는 일을 경험하게 된다고 했다. 그리고 그것부터 경험해야 타인을 공감할 자격이 생긴다고 했다.


학창 시절, 유일하게 괴로웠던 과목이 수학이었다. 그 이유는 내가 수학 머리가 없어서라기보다 뺄셈을 잘못했을 때 ‘큰일 났다’는 반응을 보인 어릴 적 엄마의 표정(엄마의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에 내가 더 당황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숙제를 제때 못 해 답지를 보고 풀이 과정을 베껴 내곤 했던 답답함, 고등학교 때 문제를 칠판에 풀어 놓고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맞았던 기억, 수학 시험만 쉬우면 등수가 치솟았다가 다시 수학 시험만 어려워지면 곤두박질치곤 했던 불안정한 입시 공부, 그런 엉킨 감정 때문이었다.


정확히 엄마가 내 수학 실력에 불신을 감지했던 나이에, 내 아이 역시 틀린 수학 문제가 많아지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수학 재능과는 상관없는 훈련의 문제였다. 아이 자존감의 문제였다. 서둘러 인근 학원을 등록했다. 아이는 처음에 어색해했지만, 곧잘 적응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나도 모르게 내 어린 시절을 투영한 조바심까지 숨기지는 못한 것 같다. 아이는 성실하게 학원에 다니면서도 문득 이 거시적인 입시 게임의 구조에 대해 철학적인 질문을 한 번씩 던지기도 했고, 나는 최대한 솔직히 말했다. 이 게임이 정당하지도 않은 것 같고, 재미도 없지만, 다른 게임을 알아보려니 확신이 서질 않는다고.


아직 초등학생이라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 이야기는 하지 못했다. 헤세는 정말 이 책이 청소년 성장 소설 수준이라 생각할까. 내 학창 시절의 복잡한 심경의 근원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고 그 시간을 관통했다. 그래 놓고선, 내가 느낀 그 감정을 느끼게 하기 싫어서 정작 나는 눈 질끈 감고 수학 숙제를 봐주고 있었다. 그 쥐꼬리만큼의 시간도 예외 없이 까칠하고 예민해지는 까닭은 정확히 뭐였을까. 나랑 똑같은 경험은 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 너머 뭐가 있을까. 아이의 성적 욕심일까, 끝없는 육아의 굴레가 주는 짜증일까, 아니면 여전히 그 시절의 악몽이 한 가닥씩 되살아나 나를 시험하게 한다는 불쾌함일까.


아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음에도 아이에게 온전히 이해받지 못했을 때 느끼는 자책감, 한 번 더 아이의 마음에 발을 들여놓아야 한다는 피로감, 그 가장 끝자락에 수학 문제라니, 또 너야, 싶었다. 적어도 너덧 가지의 감정들이 뭉텅 그려져 악몽처럼 내게 말을 걸었다.


‘이거 뭔지, 네가 한번 맞춰 봐라, 메롱.’


아이보다 내가 문제였다. 내 감정이 방향을 잃고 두서없이 집안 공기를 배회하고 있었다. 아이와 나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너에게 설명하는 엄마의 말투나 목소리가 이상한 건 맞다, 엄마도 알고 있는데 잘 나아지지 않는 거다, 사실 저녁에 네 숙제를 봐줘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엄마가 낮에 무리한 일도 좀 했다, 그래서 지금 더 피곤한 지도 모르겠다, 너만 괜찮다면 엄마 밤 산책 삼아 커피 한 잔만 마시고 올 테니, 그때 다시 펼쳐 보는 게 어떻겠느냐. 아이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더니, 내게 물었다.


“엄마가 그렇게 예민해졌을 때는 어떻게 하면 나아지는 거야?”


순간 당황했다. 아이가 그렇게 정리해서 나를 바라보게 하는 말을 할 줄 안다는 게 신기했고, 그런 말을 듣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나도 내가 어색했다. 정혜신의 말대로라면, 아이는 내 존재의 핵심을 정확하게 겨냥한 것이다. 갑자기 올림픽 양궁판 10점 만점 지점에 박힌 카메라 렌즈가 부서지는 장면이 떠올랐다.

“어…뭐, 이럴 때도 있는 거지. 산책하면서 달콤한 커피 한 잔 마시면 좀 나아질 거야. 네가 어떤 날에는 이상하게 수학 문제가 잘 풀리고, 어떤 날에는 지독하게 안 풀리는 것처럼, 엄마도 왔다 갔다 하는 거야. 다들 이럴걸? 그럼, 엄마 나갔다가 올게~”


자연스럽게 수긍하는 아이의 표정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현관을 나섰다. 나의 오늘 이 행동이 훗날 아이에게 어떻게 기억될까. 매번 자잘하게 올라왔던 그 감정을 이렇게 제대로 대면하고 응대한 적은 처음이다. 내 감정에 내가 납득하고 공감하는 일, 이것부터 더 많이 연습해야겠다.

아이를 공감할 자격, 거저 주어지지 않는 거였구나.


여느 날처럼, 버럭버럭하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다.

뭔가 그런 날과는 다르게, 갈 곳 잃었던 내 마음 깊은 에너지가 제자리를 찾아 편안해하는 느낌이 들었다.


“타인을 공감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는 공감까지 가는 길 굽이굽이마다 자신을 만나야 하는 숙제들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그 길은 문제를 해결하며 한고비 한고비 넘는 스무고개 같은 길이다.”

-『당신이 옳다』 5장 공감의 허들넘기_진정한 치유를 가로막는 방해물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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