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이후를 바라보는 시선

5장 둘. 즐거운 상상

by 스쿠피


“어머니~, 00이가 오늘 학원 분실물 함에 있는 양산과 손수건을 보더니, 엄마 거랑 똑같은 것도 있네, 하더라고요. 이따가 애 편으로 소지품 챙겨 보내겠습니다. ㅎㅎ~!”


둘째 아이 학원에서 온 문자다. 아뿔싸. 어쩌나. 찾다 찾다 없어서, 하나씩 다시 공들여 산 게 엊그제인데. 그게 모두 거기 있었구나.


물건을 잘 잃어버리지 않는 편이다. 가끔 잃어버릴 때면 그러려니 하는 편인데, 그 양산과 손수건은 이상하게 꼭 찾고 싶은 마음이 컸다. 아이들 갓난아이 때부터 유용하게 쓰고 다녔던 기억 때문일까. 작년 여름, 경기도 여행 중에 마련한 6천 원짜리 가재 손수건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행 중 솟구치는 화를 달랠 길이 없어 두리번거리던 중, 잔잔한 꽃무늬 문양에 반해 사고서야 겨우 마음을 진정시켰었지. 추우면 무릎 덮개로, 아이들이 뭔가를 흘리면 후딱 훑어내는 용도로, 스카프로, 얼굴에 송골송골 맺히는 땀을 점잖게 찍어내기에도 그만이었는데.


아쉬움이 컸나 보다. 혹시 여느 때처럼 다시 발견되지 않을까 싶어 새로운 물건을 알아보는 데도 소극적이었다. 그런데 웬걸. 옛 물건을 다시 찾았다는 연락을 받고 보니, 당혹스럽고 난감했다. 반갑긴 했으나, ‘기념품’이 되어버린 느낌이랄까. 다시 예전처럼 쓰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짙게 들었다.

내가 가진 미련과 애착의 유효기간이 딱 거기까지였나. 다시 발견되기를 기다리다 조심스럽게 새 물건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나는 그 물건을 조용히 지웠다. 물건에 대한 의미 부여나 그 의미를 줄곧 간직하려 했던 내 마음은 마치 인간관계의 패턴을 대변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렇다. 한때 소중했으나, 다시 해묵은 모습을 하고 돌아온 옛 물건. 그것은 훗날, 아이들이 엄마가 그리워 찾아왔을 때의 내 모습을 연상케 했다. 아이들은 알아서 잘 성장하리라 믿는다. 사실, 그렇게 믿는 수밖에 없다. 그쯤 되면 나 역시 아이들 없이도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식을 체득하고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이겠지. 가까운 미래를, 이 분실물 습득 사건 하나로 내다보고 말았다.


그런 이유로, 돌아온 양산과 손수건은 여전히 내 곁에 있다.


떠나보낸 애정의 기념품으로, 미래의 애틋한 내 모습으로.


운전할 때마다 여비 용품으로 비치된 양산과 손수건을 본다. 지금 양산과 손수건이라는 실용적 목적을 달성하는 물건은 다른 것이지만, ‘옛 물건을 쓰던 나’를 ‘현재의 나’가 물끄러미 바라보는 느낌은 꽤 신선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밀란 쿤데라 저)에서 토마시의 행보는 흥미롭다. 진지한 연애 관계를 두려워한 나머지 ‘에로틱한 우정’이라 일컬으며 자신만의 연애 원칙을 줄곧 고수해 왔지만, 테레자라는 한 여인을 만나면서 누구보다 진지한 사랑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그녀가 어느 날 갑자기 그의 곁을 떠나자, 토마스는 일시적으로 날아갈 듯한 존재의 가벼움을 느낀다. 그러나, 고작 이틀간의 주말을 보내고 난 후, 생전 처음 엄청난 중압감을 느끼며 그녀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그래야만 한다’는 신중한 결정, 존재가 무거워지는 순간이며, 토마시의 과거가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 때이다.


토마시로서는 그녀가 떠난 후여야만 선명하게 느낄 수 있는 ‘과거’다. 그에게는 테레자가 더 이상 떠나기 전의 그녀가 아니었다. 작품 후반부 사비나도 마찬가지다. 테레자와 토마시는 그녀의 ‘과거’를 연결해 주던 인연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이 무겁게 끝났다는 걸 알고 자신을 진지하게 생각했던 프란츠를 떠올리며 잠시 후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결국 그녀는 끝까지 가벼워지기 위해 화장해달라는 유언을 남기지만, 두 친구의 흔적은 ‘현재’의 그녀에게 묵직한 여운을 남겼다.


문득 궁금해졌다. 당신이 추구하는 존재의 무게감은 어느 정도인지. 당신의 그 무게에 어떤 만남이나 경험이 자리하고 있다면, 여태껏 유효한지도.


아이들이 기억하게 될 내 과거는 어떤 무게일까. 무겁다는 걸 알면서도 애써 가벼운 척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 가끔 가벼워 보이기는 하지만 묵직함이 베이스여서 삶의 궤도 자체는 꿈쩍하지 않는 사람들, 가벼웠으나 묵직해진 사람도, 묵직했으나 가벼워진 사람도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래. 이 세상에 떠날 수 없는 관계란 없다고들 하지. 좋은 과거란, 지나 보지 않고서는 선명하게 알기 어려운 법이다. 그렇다면, 과거는 현재의 내가 어떤 상태인가에 따라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다는 뜻이구나. 현재가 만족스러우면 부끄러웠던 과거조차 미화할 여유가 생긴다. 반대로 만족스러웠던 과거가 있는데 현재가 불만족스럽다면 오히려 그 과거가 족쇄가 되어 헤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다시 말해 내 과거는, ‘새롭게 태어나는 현재’다.


그러고 보니, 테레자는 토마시를 진지하게 사랑하면서도 항상 못마땅해했고, 불안해했다. 토마시가 여러 여자와의 갈애를 느끼고 가벼운 존재로 살고자 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작품 후반부로 갈수록 토마시가 점점 테레자를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모든 것을 하나씩 내려놓는 모습을 보인다. 급기야 테레자는 토마시에게 말했다. 내가 유능한 외과 의사인 당신 인생을 밑바닥까지 끌어내린 악의 근원이라고. 토마시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전혀 그렇게 생각할 거 없다, 내가 선택했고, 외과 의사 안 해도 지금 얼마나 행복한지 알았다, 오히려 홀가분한데 무슨 소리냐.


‘토마시의 만족스러웠던 과거는 새롭게 태어난 현재로 인해 족쇄의 의미를 상실했구나.’


이 작품이 흔해 빠진 신데렐라 이야기였다면, 테레자는 토마시를 만나 고고한 의사 부인으로 생을 마감해야 했다. 그러나 토마시는 테레자를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았고, 가끔은 이웃 마을 호텔에 머무르며 함께 춤추고 노래했다. 이제 마지막이라는 건 슬프지만, 그 마지막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건 행복이다. ‘슬픔은 형식이었고, 행복이 내용이었다’라는 문장은 그렇게 탄생했다.


만혼(晩婚)에 4년간 육아휴직 하면서 내 과거를 자꾸만 되새김질하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의 양산과 손수건은 이제 내게 새로운 과거로 돌아왔다. 잊을 만하면 내 현재를 점검하게 하고, 앞으로도 지난 과거를 다시 재정의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내게 소중한 물건임을 기억해 주었다는 사실, 지나가듯이 했던 엄마의 옛날이야기를 허투루 듣지 않고 발견해 준 마음이 고마웠다. 견딜 만했던 과거이자 현재다. 이제 나머지를 어떻게 수놓을까.


중년 이후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상상력은 필수다. 족히 20년 뒤의 내 모습을, 망원경 줌렌즈로 당겨보자. 먼 미래에도 ‘내가 젊었을 때’를 운운하고 있는지, ‘만약’이나 ‘혹시’라는 부사를 입에 달고 사는 건 아닌지. 회한 그득한 모습이다. 지금은 쓸모없어졌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 렌즈가 마음에 안 든다면, 갈아 끼워보자. 이게 바로 상상력의 특혜다. 낡았지만 기품 있는 기념품 같은 시간을 채울 줄 아는 자들이 보인다. 도저히 쓸모없다고는 느껴지지 않는 충만함이 깃들었다. 부끄러운 과거였든, 화려했던 과거였든 상관없다. 이제 과거는 지나간 한때가 아니라, ‘새롭게 태어나는 현재’이므로.


당신의 시선을 존중한다. 즐거운 상상은 내 몫이다.


“잃어버린 것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른 모습으로 우리 안에 살아 있다.”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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