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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 Aug 03. 2024

잠깐 같이 걸을래?

며칠 전 고독사한 청년의 뉴스를 읽었다.

오랜만에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한 뉴스다.

뜻을 가지고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왔으나 취업에 거듭 실패하고 고시원 작은 공간에서 혼자 죽었다는 이야기. 발견조차 한달 이상 지난 후에 되었다는 슬픈 이야기.


이십대 중반부터 결혼 전까지 작은 공간에서 혼자 살면서 늘 고독사에 대한 공포에 시달렸다.

연애를 하면서도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하겠지 하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또 겁과 걱정이 많은 성격이라 늘 이런 저런 극단적인 상황을 우려했다. 화장실에 폰 없이 혼자 갇히는 상황이라든가, 외로움과 우울의 끝에 달해서 행거에 목을 매는 상황이라든가, 식중독 때문에 데굴데굴 구르다가 병원까지 기어갈 힘도 없어 죽는다든가, 사랑니를 발치하고 밤새 수건에 피를 찍어내며 과다출혈로 죽는다든가 하는 수십가지 경우의 수들.

엄마도 그때 내 걱정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엄마는 밤마다 내게 전화를 걸었다.

뭐하니, 밥은 먹었니, 드라마 뭐 봤니, 반찬 보내줄까.

별 내용 없이

나의 생존을 확인하던 셀 수도 없는 통화기록.


고독사하고 죽은 나를 천장에서 내려다보는 꿈을 수도 없이 꿨다. 나는 방 한가운데 죽어 누워있는데 창 밖으로 사람들은 쉴새없이 걸어다니고 날은 어두워졌다 밝아졌다 세상은 잘만 굴러갔다.

살아있는 나를 챙기는 것도 엄마의 통화 뿐이었지만

꿈 속에서 죽은 나는 세상 그 누구도 들여다보지 않는...

소름돋게 고독한 꿈.


결혼을 하고 아이들도 낳고 이제 가족들과 함께 살지만

지금도 늘 생각한다.

멀티 유니버스가 있다면

이십대 후반 결혼의 문턱에서 돌아선 나는 아직도 그 고독한 공간에서 혼자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그러다 엄마도 아빠도 모두 돌아가시고

나를 찾는 전화조차 빚 독촉밖에 남지 않은 어느 날

죽은 지 몇 달이 지난 후에 발견되지 않을까 하는 상상.


나이를 먹으며 난독증에 걸려

책이든 뉴스든 예전만큼 집중해서 제대로 읽지를 못하는데 고독사 뉴스만 보면 자동으로 클릭이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차분한 마음으로 그 사람을 생각하며 읽는다.

다 읽으면 20초 정도 눈을 감고 두 손바닥을 맞대고

그 사람을 생각하며 되뇐다.


고생 많았어요.

나도 별거 없는 사람이지만 마음으로 안아줄게요.


다음엔 고독하지 않은 삶이 기다리고 있기를.



사랑하는 누군가와 손을 잡고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요즈음 나의 최대 관심사다.


간단해 보이지만

사실 그러기 위해 충족해야 할 조건들이 꽤 된다.


일단 사랑하는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이것부터 어렵다.

나의 경우 힘들었던 시절,

엄마아빠는 멀리 지방에서 살고 동생은 내게 별 관심이 없었다. 남매라 서로 속을 털어놓는 사이도 못 된다.

친구들은 대부분 연애 중이거나 공부 중이거나

만나서 밥 먹고 차를 마셔도 돈 자랑 애인자랑 직업자랑을 하기에 바빴다. 겉으로 아무리 서로 위하는 척해도 속내는 그렇지 못했다.

진정한 친구가 없어서 그랬겠지.

나는 평생 친구 사귀는 게 가장 어려운 사람이다.


소개팅을 해도 서로 마음에 들 확률은 굉장히 낮다.

내가 마음에 드는 사람은 나를 좋아하지 않고,

나를 괜찮게 봐주는 사람은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서로 마음에 들었던, 유일했던 소개팅.

그렇게 남편과 만나 결혼하고 출산하며 가정을 이뤘다.

이제 함께 걸을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다.


그러나 이게 전부가 아니다.

건강해야 하고 적당히 생활을 유지할 경제적 상황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서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만큼

사이가 좋아야 한다.

물론 시간도 있어야 하고......


사실 요즘 내가 하는 모든 노력들은 이걸 위해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건강하게 걷기 위해 꾸준히 요가를 하고,

경제적 상황을 위해 직장에 다닌다.

내가 하는 일은 안정감을 주지만 크게 성취감이 있는 일은 아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가지는 것에 실패했다.

오로지 월급 때문에 일을 한다는 소리.

굳이 한가지 이유를 더 찾자면 규칙적인 생활을 위해 일을 하기도 한다. 직장이 없다면 나는 하루종일 누워 넷플릭스를 볼 거다.

그러니 똥 같은 사람들도 적당히 피해가며 적당히 묻혀가며 힘들어도 직장을 그만두지 않는다.

또 아이들을 키우며 소리지를 일이 많지만

저녁에 바람 쏘이며 함께 걷기 위해 소리 지르는 것보다 부드럽고 효율적인 대화 요령도 찾아가고 있다.

일단 소리를 지르면 그날 밤 산책은 나가리니까,

나의 목적은 달성하고 싶으니까.


늘 산책을 염두에 두고 생활하다보니

마음이 안정되는 느낌이다.

남과의 비교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덜하다.

누가 아무리 좋은 걸 보고 좋은 걸 먹고 좋은 곳에 가든

나는 나의 일상이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평생 평화로운 ‘일상’ 이란 걸 만들기 위하여 노력했는지도 모르겠다.

돈이 많다면 좋겠지만 내 집이 있고 좋은 물건들을 많이 가진다면 좋겠지만 어릴 때부터 내가 꿈꿔온 건

사실 그런 게 아니었다.


별일 없이 흘러가는 하루,


사랑하는 사람들과 건강하게 행복하게 보내는

하루 하루 그리고 또 하루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잔잔한 일상.


마음이 풍요롭다는 건 그런 ‘일상’에서 시작된다.

그렇다면 나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의 삶을 잘 이끌고 있다.


성실했던 학창시절에 비해 잘 풀리지 않은 취업,

온갖 수모를 겪었던 직장생활,

하루가 멀게 고독사하는 꿈을 꾸던 자취시절,

친구라 믿었던 이들의 비아냥,

서툴렀던 연애와 수치스러웠던 이별까지.


모든 경험들과 그 속에서 내가 느낀 모든 생각들이

일상을 만들고 그 일상에 감사할 줄 아는 나를

만들었구나, 비로소 깨닫는다.


생활비가 조금 모자라도 대출이 조금 있어도,

애들이 공부를 좀 못해도,

내 월급 남편 연봉 마음에 들지 않아도......

 좌절하거나 조바심 낼 필요 없다.


이혼 코 앞까지 갈 만큼 싸우지 않고,

부모 자식 간에 언어 혹은 신체적 폭력이 오가지 않고, 밥 굶지 않고, 비오는 날 비 맞지 않고,

추운 날 오들오들 떨지 않으면 된다.


거기에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밤산책,

그거면 차고 넘친다.


충분하다.


더 이상 바라지 않는다.



잠깐 같이 걸을래?

마음이 힘든 사람이 있다면 가장 건네고 싶은 말.


밥 한끼 할래? 랑 같은 맥락이겠지.

진심이 담김 산책 제안은 굉장한 힘을 가진다.

누군가의 마음을 녹이고,

막다른 길 앞에서 그 사람의 걸음을 돌릴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프로포즈를 따로 하지 않았던 남편과

결혼을 결심한 것도 그런 순간이었다.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함께 걷다가 결혼해도 좋겠다,

계속 같이 걸어도 좋겠다 생각했던 거 같다.


그걸 잊고 호캉스가자고,

베트남 다낭가서 마사지 받게 해달라고,

애들 여름방학인데 데리고 해외여행 한번 못 가냐고

애 친구들은 다 놀러갔다고 들들 볶아댔네.


그래, 그만 볶아야지.

이러다 탄다, 타.

오늘 밤 산책도 분위기 좋게 오손도손 이야기 나누려면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프랑스 센느강이 아니어도 캐나다 단풍길이 아니어도

좋다. 번거롭게 차 타고 멀리 떠날 필요도 없다.

그런 건 귀찮다.

귀찮고 성가시면 일상이 될 수 없다.

그래, 동네 골목길이면 충분하다.

익숙함이 주는 안정감이 있고, 풍경보다 대화에 목소리에 사랑하는 이들의 표정에 집중하게 해준다.

여름 밤, 산책하고 먹는 팥빙수 한 그릇은 꿀맛이다.

이 또한 신상 카페보다 동네 단골카페 팥빙수가 좋다.


모든 것이

오랜 시간동안 일궈놓은 소중한 나의 일상이다.



오늘도 그 시간을 위해 지지고 볶으며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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