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 좀 그만해요
인스타그램을 통해 지켜보는 여자가 있다.
그녀는 내가 자신을 본다는 걸 모른다. 우린 아주 예전 이십대 어느 하루 스쳤던 인연인데 존재감 없는 나와 달리 그녀는 인상이 강렬했다.
전화번호를 교환했지만 한번도 서로 연락한 적은 없고 이후 카카오톡 친구 목록에 떠서 카카오스토리를 훔쳐보다가 페이스북을 훔쳐보다가 블로그를 보다가 요즘엔 인스타그램을 본다. 딱 한번 봤던 사이지만 거의 십년이 넘게 그녀를 지켜보고 있다. 나도 참 희안하다. 사실 그녀 뿐만 아니라 이렇게 염탐하는 대상이 대여섯은 된다. 워낙 SNS가 활성화되다 보니 마음만 먹으면 다른 누군가의 삶을 훔쳐보는 게 식은 죽 먹기다. 상대가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에 거부감이 없다면 더더욱.
그녀는 이십대에 나와 스쳤던 시절 가난했는데 굉장한 부자가 되었다. 투자를 통해 부자가 되었다며 그 과정도 소상히 블로그에 올려두었다. 내 월급의 세 배가 넘는 돈을 월세로 지불하며 산다며 집 자랑도 올려두었는데 나는 평생 벌어도 사지 못할 집이다. 물론 부럽다. 좋은 집이 부러운 건 당연하다.
그런데 한편 궁금하다. 굳이 자신의 부를 과시하는 게시물을 올리는 이유는 뭘까? 어느 날 일확천금을 하여 부자가 된다면 되려 은둔할 것 같은데 그녀는 당당하게 본인이 가진 물질적 풍요로움을 자랑한다. 고급 주택 생활, 비행기 퍼스트 클래스 탑승기, 하이 주얼리 등을 보여주는 사진을 하루가 멀다하게 올리며, “돈이란 참 좋은 거야” 라는 노골적 문구를 반복하며.
자랑 아닌 척, 은근히 자랑하는 사람들보다 솔직하니까 차라리 화통한 걸까? 카페 테이블에 샤넬 신상 가방을 올려두고, 커피잔을 메인으로 가방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을 올리는 사람들과는 또 다르다. 그녀는 가방을 그냥 찍어 올리는 스타일이다. 나는 가난에서 벗어났어, 경제적 자유를 마음껏 누릴 거야! 당당하게 외치는 스타일.
그래,
그 편이 차라리 덜 천박한 것 같기도.
인간은 왜 자랑을 하는 걸까,
끝도 없이 남과 비교하고 우위에 있고 싶어할까?
과시욕도 본능일까? 차라리 그게 인간의 본능이라면 명쾌하게 설명된다. 하지만 나는 인간인데 그렇지 않고 나같은 사람들도 많으므로 본능은 아닌 거 같다. 물론 자랑을 통해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고 그걸 밑천으로 광고를 하고 소득을 올리는, 소위 말하는 팔이피플이라면 이해가 간다. 그게 일이라면 자랑을 하든 일상을 공유하든 모두 목적이 있는 거니까 열심히 SNS 업로드를 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앞서 말한 내가 염탐하는 그녀는 직업도 없다. 딱히 뭘 팔지도 않는다. 정말 100% 순수하게 자랑을 한다. 그래서 더 이해가 가지 않는다. 게다가 그런 사람들이 꽤 많다. 목적이 없어 보이는데 자신의 일거수 일투족을 찍어 올리고 써서 올리는 사람들.
도대채 왜 그럴까? 싫은 건 둘째치고 궁금하다.
누군가 과시는 결핍의 상징이라던데 잘 모르겠다. 온라인이라 좋은 모습만 올리기도 하고 힘든 장면을 올려도 그 속엔 자랑이 내재되어 있다. 예컨대 남편이 비싼 선물을 너무 덜컥 사온다거나 물건 고르는 센스가 없어서 에르메스에서 이런 걸 사왔다거나 육아가 힘들다는 게시물을 통해 아기 정말 귀여워요 소리를 듣고 싶어한다든가 트레이너 욕을 하면서 자신의 날씬한 몸매가 드러나는 사진을 올린다든가 하는 거 말이다.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단순히 자신의 좋았던 일상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면 일기장에 써도 충분할텐데 굳이 불특정 다수가 보는 공간에 찰칵찰칵, 찬란한 순간^^ 을 업로드하는 심리가 궁금하다. 누가 자길 보며 부러워하길 바라는 걸까?
사실 인스타그램이 아닌 현실세계 동네에서도 직장에서도 그런 사람들을 꽤 본다. 대놓고 혹은 은근히 자랑하지 않고는 못 견디는 사람들. 내 결혼은 완벽해요, 내 남편 좀 봐요, 우리 애들 귀엽죠, 이거 새로 샀지롱요. 입만 열면 자랑하는 사람들. 자랑을 해야 행복이 완성되는 건지......
나는 그러지 않는 편인데 이유는 아래와 같다.
첫째, 자랑할 게 없다. 이건 뭐 설명도 필요 없다. 뭐가 있어야 자랑을 하든 말든 하지. 누구나 하나쯤 있다는 명품가방도 없고 해외여행도 한번 안 가본 사람이 나다. 우리 부부는 신혼여행도 제주도로 다녀왔다. 딱히 비싼 음식을 사 먹지도 않고 그저 집에서 맛있는 걸 만들어 먹거나 동네 맛집을 다니는 평범한 가족. 딱히 사진으로 찍어 올릴만한 과시의 건덕지 자체가 없달까.
둘째, 사생활을 드러내는 게 조심스럽다. 첫번째 이유에도 불구하고 굳이 자랑을 하자면 메마른 갯벌에서 조개 캐내듯 꾸역꾸역 할 수는 있다. 당장 떠오르는 건 맛있게 만들어 먹은 오늘 저녁, 오손도손 이야기 나누며 걸었던 가족들과의 밤 산책 정도랄까? 이것도 각을 잡아 사진을 찍고 밤 산책 중에 사진 몇 장을 남겨 인스타그램에 그럴 듯하게 업로드할 수는 있다. 하지만 조심스럽다. 누가 나를 비롯한 가족들의 얼굴을 아는 게 두렵고 내가 인스타그램을 통해 돈 많다는 그녀를 염탐하듯 전 남친이라든가 전 직장동료라든가 과거에 나를 알고 지내던 누군가가 나를 염탐할까봐 걱정이 된다.
셋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사실 이 이유가 가장 크다. 나는 내가 행복하면 그만이다. 굳이 그걸 자랑하는 게 귀찮다. 일하고 가족들 챙기면 하루가 금방 지나가는데 가끔 좋은 시간을 보낸다고 한들 하나하나 사진을 찍어 기록으로 남길 여력이 없다. 내가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말이 여행에서 남는 건 사진 뿐이라는 거다. 그럴 듯한 사진을 찍기 위해 수 차례 셔터를 누를 시간에 나는 직접 눈으로 기억에 그 순간을 담는다. 1초만 지나도 과거가 되어버리는 현재 이 순간을 소중히, 그게 나의 신조다. 그러니 사진을 찍고 게시글을 정리하는 시간이 있다면 현재에 충실한 게 옳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러면서 다른 사람 인스타그램을 염탐하며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게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뭐 신조는 그렇다는 거다.
쓰다가 보니 과시가 아니라 염탐이 인간의 본능인지 물어야 할 것 같다. 질문이 잘못되었다. 비교를 하고 자랑하는 인간들을 싫어하면서 왜 굳이 찾아가서 인스타그램 모든 피드들을 훑어보고 비교하고 자랑한다고 싫어하고 있는지, 나야말로 참 이상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간도 참 많다. 비교할 시간도 과시할 시간도 아까워하면서 다른 사람 어떻게 사나 구경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니 이보다 더 모순이 어디 있을까?
이러나저러나 그래서 결론은 하나다. 인스타그램을 끊는 것. 나아가 카톡도 삭제하는 것. 필요한 사람들과는 통화하거나 문자 메시지를 주고 받으면 될 일이니 그 외 모든 소셜네트워크는 시간 낭비라고 볼 수 있다. 현실에서 만날 일도 없는 나랑 관계 없는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물건이나 사고 염병천병 또 자랑하고 앉았네 욕할 시간에 나부터 돌아보자. 그 시간에 가족들과 뭘 먹을지 주말에 뭐할지 고민하는 게 훨씬 더 생산적이다.
자, 이렇게 머리로 정리했다.
인스타그램부터 삭제하는 거다.
그런데 당장은 힘들다. 쟁여놓고 먹는 전복죽 공구가 금요일부터라고 했다. 딱 그거까지만. 전복죽만 사고 인스타그램은 탈퇴할거다. 그리고 어플 자체를 삭제해버릴 거다.
대신 그 시간을 브런치로 채우겠다. 진작 그 시간에 글을 썼으면 이렇게 몇 년을 무명 작가로 지내며, 나의 글들이 소리소문없이 고독사하는 걸 보진 않았을텐데.....
흑.
과연 내가 이번 주 금요일에 전복죽만 사고 인스타그램을 삭제할 수 있을까? 이 글을 쓰느라 보낸 한 시간 정도 사이 또 어떤 피드가 업로드 되어 있을지 벌써 궁금해서 엉덩이가 들썩들썩한다. 이 글을 발행하고 곧바로 인스타그램으로 전력 질주하는 내 모습이 눈 앞에 훤히 그려진다. 과시하는 것보더 이게 더 고질병이다. 이 글의 소제목은 자랑 좀 그만해요 가 아니라 그만 좀 훔쳐봐요 가 되었어야 옳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게 너무 재미있다. 이 정도면 요가와 같은 수준으로 주된 취미생활이라 본다. 길이나 카페에서 관찰하는 건 한계가 있다. 인스타그램만큼 타인의 일상을 세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건 없다. 그럼에도 그걸 꼭 지워야할까? 글의 소재가 될 수도 있는데? 그래, 어플 삭제는 금요일까지 좀더 고민해볼 일이다. 전복죽 사고 다시 생각해보자.
이렇게 또 정신승리로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