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성 Aug 25. 2024

여름 나무, 드라마 그리고 빵

내가 일하는 공간에서는 창 밖으로 커다란 나무가 보인다.

무슨 나무인지는 모른다. 그냥 엄청 크고 잎이 무성하다.

잎사귀들이 여름 햇볕을 받아 반짝인다. 

그리고 까치 마리가 가지를 옮겨다니며 놀고 있다.


보기만 해도 싱그러운 풍경이다. 그런 풍경에 감사한다.

크게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아름다운 풍경을 내 눈으로 보고 감상하고 느낄 수 있는 이 아침이 행복하다.


10대 때는 밤에 공부하며 잠을 깨기 위해 마셨던 레쓰비 캔 커피와 초콜렛이 좋았다. 또 주말 저녁 8시면 엄마랑 같이 앉아 가족 드라마를 보던 순간들이 행복했다.

20대 때는 자취하던 원룸에서 육개장 사발면에 참치마요 삼각김밥을 먹으며 드라마를 보고 후식으로 바나나우유에 칸초를 먹는 게 좋았다. 

30대 때는 아이들을 재우고 남편과 소리 내지 않고 먹던 맥주와 마른 안주들이 좋았고 그와 조용히 나누던 대화에 미소지었다. 

그리고 이제 40대, 여름 나무의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이 여유가 좋다.

앞으로는 또 어떤 행복거리를 찾으며 사는 게 좋을까?



10대 때는 공부와 친구 관계가 지옥처럼 힘들었고, 20대 때는 직장도 연애도 불안했고, 30대 때는 출산과 육아 그로 인한 경력 단절로 우울증 약을 복용했다. 

하지만 모든 순간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아 즐기며 버텨올 수 있었다.

40대가 된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은 사춘기가 시작되려 하고 남편과는 늘 새로운 주제로 다툰다. 직장에서 마음 맞는 사람 찾기랑 하늘의 별 따기에 가깝고, 경쟁에 모함에 온갖 이기심에 인간 자체에 대한 혐오가 생기려 한다.

늘 간당간당하다. 우울감과 행복의 경계에서 위태롭게 줄을 타며 하루 하루가 지나간다.


그러니 행복하기 위해

부정적인 생각들을 떨쳐버리기 위해 확실한 행복거리가 필요하다.

대단한 건 힘들다. 돈이 많이 들거나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행복거리는 찾기 쉽지만 누리기 힘들다.

대확행 아닌 소확행을 찾는 게 일상이 되어버린 요즘,

나의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거리는 제목처럼 여름 나무와 드라마, 그리고 빵이다.



여름 나무가 어쩌면 나무 본연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단풍이 만개한 가을 나무는 화려하고, 눈이 소복하게 쌓인 겨울 나무는 고상하고,

잎이 돋아나기 시작하는 봄의 나무들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활기찬 느낌이 있다지만


여름 나무는 건강하게 쭉쭉 뻗은 가지마다 내음을 잔뜩 머금고 

여름의 따가운 볕을 받아 반짝거린다. 

누군가에게 나무를 그려보라 했을 때 가장 많이 그려질 법한 나무의 전형적인 모습.

마침 일하는 자리 바로 창 밖으로 그런 나무가 있어 요즘 나의 행복거리가 되어준다.

참 고맙다.


그리고 드라마,

또 하나의 요즘 내가 즐기는 행복거리.

공연처럼 비싼 돈을 내고 시간을 내고 옷을 차려입고 어디론가 가야 즐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영화처럼 폐쇄된 공간에 역시나 비교적 비싼 돈을 내고 가야만 즐길 수 있는 게 아니라서 나는 드라마가 좋다.

침대에 누워서 소파에 앉아서 TV든 OTT든 틀기만 하면 볼 수 있고,

영화보다 훨씬 긴 시간 즐길 수 있고 주제도 인물도 굉장히 다양하다. 유튜브 영상들에 비해 훨씬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잠시나마 현실 속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다.

4부작, 8부작, 16부작 모든 드라마를 사랑한다.

웰메이드 드라마 한 편을 감상하면 배우들은 물론 작가, 감독, 모든 스태프들에 대한 경외심이 몰려올 정도다.

갓 구운 빵과 따끈한 우유를 마시며 드라마를 보는 순간이면 모근심이 잠시나마 사라진다.


그렇게 힘을 얻는다.

다음 날 눈을 뜨고 세상에 나갔을 때 덜 상처받고 빌런들을 가볍게 웃으며 무시할 태세가 갖춰진다.

무례한 인간들이 똥 무더기를 건네도 받지 않을 자신이 생긴다.


여름 나무, 드라마 그리고 빵.


여기에 무얼 더 추가할 수 있을까?


얼음을 가득 담은 시원한 물.

사랑하는 사람들과 뺨을 맞대고 문지르거나 껴안기.

요가 음악 듣기, 요가하기 등.


좋아하는 것들을 늘려가는 게 행복을 향한 길이라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싫어하는 것들을 비난하고 공격하고 

싫어하는 사람과 박 터지게 싸우는 건 내게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행복하려면 싫어하는 것들을 줄여야 한다.

그런 대상들은 사실 싫어할 가치조차 없다. 아예 거기에 내 에너지를 쓰지 말아야 한다.


아직도 그게 어렵지만 오늘도 노력해본다.

일 처리가 답답한 후배도, 본인이 맞다 생각하는 재수 없는 직장 상사도 싫어하지 않으려 노력해본다.

싸운다고 미워한다고 그들은 달라지지 않는다. 또한 내겐 그들을 계도할 에너지도 시간도 없다. 

그들을 내버려두고 나의 행복을 찾는 게 옳다.


그러니 여름 나무를 보고 밤에 볼 드라마를 찾고 빵을 먹자.

부정적인 생각은 다이어트를 하고,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거리들에 대한 생각을 포동포동 찌우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