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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 Aug 28. 2024

나의 손절이야기[7]

자주 꾸는 꿈 일기

또 지나간 인연들이 꿈에 나왔다.


어김없이 그들에 대한 나쁜 기억들은 세월에 흩어졌고,

좋은 기억들만 남아 아쉬움이 무거운 추처럼 마음을 짓누루는 아침이다.


- 언니야, 팥빙수 먹자.


걸어서 10분 거리에 살던 언니랑은 그런 사이였다.

언제든 연락하면 동네 카페에서 만나 팥빙수를 먹을 수 있던 사이.

만나서 나누던 이야기가 길어지면 언니네든 우리집이든 자리를 옮겨 또 밤새 이야기를 하던 사이.


연락이 끊긴지 10년이 넘었는데 어제 꿈에 언니가 또 나온거다.

10년 전 모습 그대로.

여전히 자그마하고 예쁜 언니에게 남편도 소개시키고 아이들도 보여줬다.


- 언니야, 애들 재우고 나갈게. 팥빙수 먹자.


언니는 10년 전 모습, 우리의 관계도 10년 전 그대로인 상태로 장소와 시간적 배경만 현재가 되어 있었다.

나는 언니가 참 좋았나보다.

아직도 보고 싶은가 보다. 내 생일이면 작은 선물을 사서 우리집 초인종을 누르던 초등학교 고학년의 언니가,

신승훈 노래를 부르며 나를 옆에 앉히고 피아노를 쳐주던 중학생 언니가,

또 음악 감상 카페와 영화관에 나를 처음으로 데려가줬던 고등학생 언니가 나는 참 좋았고

아직도 좋은가보다.


새벽에 잠시 잠에서 깼다가 조용한 침대에서 한참 멍하니 있었다.

더 이상 언니야, 팥빙수 먹자..... 연락할 수 없는 언니가 갑자기 너무 보고 싶었다.

언니는 새로운 인연들과 나는 모르는 모습으로 여전히 살아내고 있겠지.

분명 언니가 불편한 부분들도 있었는데 그런 건 다 잊혀지고

날 아껴주던 좋은 언니에게 버림 받았다는 생각만 들어 잠시 슬픈 새벽이었다.

그러다 다시 잠이 들었나보다.


이번엔 사람들이 바글거리고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오는 파티에 가는 길이었다.

현재 직장 동료들과 그 곳에 갔다. 구체적으로 기억나지 않지만 굉장히 기대되는 파티였던 것 같다.

입구에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입장하는 시스템이었는데

밖에서도 맛있는 음식들이 차려진 게 보였다.

초코 분수, 샴페인, 신선한 회도 보였고 직원들이 맛있게 굽는 스테이크도 환상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내 차례가 되어 들어가려던 찰나였다.


가까운 거리에 대학 동기 3명이 보였다. 나랑 가장 친하게 지냈던 3명의 친구들.

아, 나 빼고 셋이서 여길 왔구나.


기대에 부풀었던 마음이 왠지 모를 배신감과 또 나만 버려졌다는 비참한 심정으로 순식간에 바뀌었다.

싸늘하게 식어버리던 마음이 꿈인데도 실감이 났다. 아직도 생생하다.

세 사람은 깔깔 웃으며 맛있는 음식들과 함께 이야길 나누고 있었다, 나만 빼고.

걔네와 연락이 끊긴 것도 10년 정도 전이었는데 그 때 그 모습 그대로 즐거워보였다, 나만 빼고.

초코 분수에서 초코를 손으로 찍어 앞니에 색칠해 바보처럼 웃는 장난을 여전히 치고 있었다, 나만 빼고.


세 사람 모두 나와 눈이 마주쳤지만 아무도 내게 인사조차 건네지 않았다.

알아보지 못하는 건지, 알아봤지만 아는 체 하고 싶지 않았던 건지.


결국 기대했던 파티에 입장하지 않고 직장 동료들에게 대충 둘러대고 나는 그 자리를 떠났다.

화기애애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뒤로 한 채 씁쓸하게 돌아서며 잠에서 깼다.


그리고 또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적막한 집, 가족 모두가 자고 있는 밤.

혼자 과거의 인연들을 만나고 돌아온 내가 현실을 자각하는데에는 꽤 시간이 필요했다. 30분 정도 지났을까,

정신이 들어 아이들 방으로 가서 이불을 고쳐 덮어주고

남편 방으로 가서 남편의 코고는 소리도 체크하고 화장실에도 들렀다가 내 방으로 돌아왔다.

다시 잠을 청해보려 했지만 쉽게 잠이 오지 않고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왜 이런 꿈들을 주기적으로 꾸는 걸까?

분명 무슨 이유가 있어 저들과 멀어졌다. 일방적으로 손절 당했다고 볼 수도 없다. 그들과의 만남에 피곤한 부분이 분명히 있었고 참고 참다가 결국 나도 소극적으로 그들도 소극적으로 변하면서 자연스레 멀어졌다.

왜 자꾸 버림 받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심란한지 모를 일이다.

설사 정말 내가 그들에게 버림 받은 게 맞더라도 이제 와서 어쩔 수 없는 일인데 말이다.


어쩌면 '나는 친구가 하나도 없는 사람이다.' 라는 열등감이 그들을 미화시키는 것 같다.


나는 친구가 없는,

사람들과 오래 잘 지내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버림 받았어.

이런 나를 버린 그들은 꽤 괜찮았던 사람들이었을 거야.

나는 그들을 놓친 거야, 내가 못나서.

그럼 지금이라도 연락해볼까? 나를 받아줄까? 아니, 받아주지 않을 거 같은데......


라고 까지 생각이 미치면 결국 또 나는 우울의 구렁텅이로 끝도 없이 추락한다. 너무 슬프다.

좋은 사람들이 자꾸 나를 버리고 그럼에도 나는 나를 고치지 못한다는 생각.

이 생각은 현재 나의 사회생활에도 영향이 닿아 사람들을 대할 때 주눅들고 가짜로 웃게 된다.

좋은 사람이고 싶어서, 더 이상 손절 당하고 싶지 않아서.

어지간한 건 참고 넘어간다.

하지만 그러다가 결국 터진다. 참다가 언성을 높이면 그 동안 나의 노력이 가식이라는 게 들통나고

또 손절 당한다. 악순환 하는 거다.


그러니 정말 모르겠다.

과거의 그들이 정말 좋은 사람들이었을까? 그들에 대한 불편했던 마음을 참고 그들에게 적당히 맞춰주며 지금까지 만났어야 할까?

나는 정말 별로인 사람일까? 불편한 걸 조금도 참지 못하는...?

하지만 나는 참고 싶지 않은데,

불편한 마음으로 누군가 만나고 싶지도 않고 그들과 밥 먹고 차 마시느라 돈을 쓰고 싶지도 않은데 말이지.

그런 게 아니라 사실 별로인 사람들만 만나왔던 건 아닐까? 나는 정말 괜찮은 사람인데 그냥 정말 괜찮은 친구들과는 가까워질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닐지?

인성이 별로라 친구가 없을 수도 있지만 친구가 많다고 인성이 무조건 좋은 사람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인성이 괜찮지만 다니는 길목이 괜찮은 사람들이 없었을 수도 있다, 라는 정신승리. 하다보면 생각은 끝없이 이어진다.

참 어렵다. 그들과 연락이 끊겨 후련한 마음도 분명히 있는데 왜 자꾸 그들과 즐거웠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꿈을 꾸는 건지 모를 일이다.


아쉬운 마음에 연락을 취했던 적도 있었다.

언니에게도, 세 명의 친구들에게도 거의 10년 만에 연락을 했었다.


- 언니야, 잘 지내지?

- 오랜만이야, 너네 잘 지내고 있어? 우리 ##에서 보고 한 번도 못 만났네.


그리고 하루인가 이틀이 지나고서야 답이 왔더랬다.


- 그래, 언제 한번 보자.

- 그러게, 오랜만이네. 언제 한번 보자.


끝.

더 이상 연락은 이어지지 않았다.


내가 그들을 어떤 식으로 대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섭섭한 마음만 커다랗게 머릿 속을 차지하고 나를 짓누른다. 이렇게나 이기적이라니......

어쩌면 진실은

나는 공감능력이 부족하고 이기적인 사람이며,

그들에게 손절 당해 마땅한 말과 행동들을 했고 자연스레 그들은 나를 떠났다 일지도 모르겠다.


뭐 그랬든 말든 반성은 이 정도로 하고 지금은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야지.

아이들을 깨우고 남편도 깨워 기분 좋게 아침을 맞이해야지.

출근해서는 현재의 인연인 직장 동료들에게 예의 바르고 친절하지만 단호하고 능력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지. 예의 바르고 친절하지만 단호하고 능력있는 사람이라, 읽기만 해도 어렵긴 하다.

가족 모두가 코로나로 격리 중인 아는 동생에게도 연락해보고,

어제 동창회에서 술 많이 마시고 들어왔다는 아빠 괜찮은지도 엄마에게 연락해봐야지.


이 정도로도 하루가 빠듯하다. 여유 시간이 생기면 책도 읽어야 하고 요가도 해야 하고 가족들과 여행도 다녀야 한다. 지나간 인연에 아쉬워하는 시간은 과거 조금은 부족했을 나의 모습에 대한 반성,

그 이상의 의미는 가지지 못한다.


어쩌면 현재 인연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싶은,

그래야만 한다는 나의 무의식이 과거의 인연들에 대한 꿈을 꾸게 하나보다.

더 이상은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주변을 둘러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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