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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이라니

나는 작가지망생이지만 그 작가님을 몰랐다.

평소 책을 많이 읽지 않는다. 학창시절에야 문학소녀랍시고 골고루 다양하게 책도 읽고 읽었던 책도 마음이 가면 두번이고 세번이고 또 읽고 그랬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 된 지금이야 그럴 시간적 여유도 심적 여유도 없다. 그래서 가끔 자투리 시간이 나면 내 이야기를 끄적대기 바쁘지 남들이 쓴 책을 읽을 여유는 잘 나지 않는다. 책을 쓰고 싶다면서 책을 많이 읽지 않는다는 게 꼭 남의 말은 듣지 않고 자기 말만 하는 사무실 꼰대 어르신을 떠올리게 하지만 집필 이라는 영역만 놓고 보자면 그래, 사실이 그렇다. 꼰대다. 내가 하고 싶은 말만 많고 얼른 잊어버리기 전에 입에서 뱉어야 한다는 조급증이 있고 남들이 하는 말은 다 틀린 것 같고 뭘 모르는 소리 같다. 꼰대 오브 꼰대. 상꼰대. 꼰대 그 자체.

상반기 인간관계에 환멸을 느끼며 배설하는 듯한 글들만 줄줄이 쓰다가 조금 상황이 풀리면서 또 글을 놓았다. 내게 있어 글은 요가랑 비슷하다. 마음이 힘들 때 으지하는 보루, 버팀목. 당장 때려칠 수 없는 직업이 따로 있는 상태에서 틈이 나면 조금씩 꺼내보는 취미활동. 한때는 열심히 쓰고 공모전 소식이 있을 때마다 출품하기도 했지만 아슬아슬하게 탈락하고 번번이 실패하면서 마음을 접었다. 아니, 마음이 접혔다. 그리고 가진 것에 만족하며 쓰고 싶을 때 쓸 수 있다는 것에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지내는데... 노벨 문학상이라니.

같은 여자라니.

나이도 학력도 머리 길이도 가족 구성도 모든 게 나랑 비슷한 아줌마라니.

부럽다. 그녀의 노력과 평생을 쏟았을 열정은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일단 너무 부럽다.

얼마나 많은 질시가 있었을까.

심지어 그쪽 분야에서 금수저인 듯하다.

아버지도 작가, 오빠도 작가, 남편도 작가라니.

그녀의 아버지가 자식들을 키울 때 썼다는 문장들을 읽으니 더더욱 열등감이 건드려진다.

자식들을 향한 존중과 사랑이 흘러 넘치는 14가지 문장들.

나의 아버지도 물론 착한 사람이다.

표현이 서툴러 가끔 폭력으로 가끔 폭언으로 자식들을 대했을 뿐, 그가 날 사랑한다는 건 안다.

하지만 기분이 착 가라앉는다. 비교되지 않을 수가 없다.

처음에는 나도 그런 집안에서였다면 그런 아버지 아래에서 자랐다면 그럴 수 있었다고 그러니까 작가가 되고 노벨문학상을 받을 수 있었을 거라는 웃긴 생각도 들었다. 이런 건 도대체 어떤 심리일까?

타인의 노력을 외면하고 결과만 부러워하며 환경을 탓하는, 게으르고 못난 마음.

그러다가 인스타그램에 뜨는 그녀의 문장들을 읽었다.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다니,

나무들이 두 팔로 땅를 받치고 있다니,

운명을 끌어안고 조용히 오래 있을 거라니,

새벽에 눈을 뜨기 전에 이미 당신의 얼굴이 내 눈꺼풀에 들어와있다니......

환경도 환경이지만 재능도 재능이었구나.

나도 저런 재능을 타고 났다면......으로 이제는 생각이 모나게 또 이어진다. 노력은 부러워하지 않고 끈기와 집념은 부러워하지 않고 오로지 환경과 재능만을 부러워한다. 마치 로또 1등을 바라듯이, 줍줍 무순위 청약 당첨을 바라듯이.

한동안 글을 더 못 쓸 것만 같다.

지금 글을 쓰면 대단한 아류작이 탄생할 듯하다.

서랍에 새벽을 넣는다든가 잡초도 여린 손바닥으로 무거운 흙을 밀어내고 있다든가, 저녁 무렵 밥 냄새가 나를 끌어안고 토닥였다든가 하는......

도서관에 가서 <채식주의자>를 빌리려고 하니 이미 예약 대기자가 초과해 예약조차 되지 않는다. <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 도 <희랍어 시간> 도 마찬가지다.

내일은 서점에 가보아야겠다.

못난 걸음으로,

열등감 가득 찬 표정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