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좀 별로라고

by 윤성

그냥 인정하기로 마음 먹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유난히 지쳤던 목요일

늦은 오후

체감 200톤 몸뚱이를 꾸역꾸역 끌고

퇴근하다가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

나는 좀 별로라고

인정하기로


인정해버리기로

너무 애쓰지 않기로


노력으로 되지 않을 일을 기어코 해내려

몸과 마음을 갈아넣지 않을 거다

열심히 살지 않는 사람

열심히 살아내지 않는 사람

나를 그렇게 인정하기로 했다

그래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일은 죽도록 노력해도 되지 않았고

어떤 일은 크게 노력하지 않았는데 이루었다

그러니 더 이상 끼니를 거르고 잠을 줄여가며

애쓰지 않을 거다

나는 이 정도거든

좀 별로거든


모두에게 예의 바른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버렸다

가끔 피해의식과 열등감이 가득 찬 사람에겐

나의 예의가

비아냥으로 조롱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그냥 좀 별로로 남겠다

그들의 생각을 바꾸려

그런 이들의 마음까지 얻으려

더 이상 나를 낮추고 썩어가는 내 마음까지 외면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냥 누군가의 기억에는 무례한 사람으로 남겠다

나는 딱 이 정도거든

좀 별로거든


업무를 완벽히 처리하기 위해

잠까지 설치며 아둥바둥하지 않겠다

열심히 했다고 생각한 일에 몇 개의 틈이 발견되어도

괜찮다 나는 좀 별로니까

빈틈없이 유능한 사람이 아니니까

조직에 민폐가 되지 않을 만큼만 딱 그 정도만

열심히 일하고

그럼에도 발견되는 틈 따위는 과감하게

외면하겠다

나는 인정했으니까

내가 별로라고


나는 친구라고 부를 이가 없다

이제 인정한다

나랑 맞는 사람을 만나지 못한 게 아니다

사람 만날 기회가 없어서도

좋은 사람을 만날 인복이 없어서도 아니다

그냥 내가 좀 별로라서 그렇다

재미 없는 이야기에 억지로 웃기 싫고

관심 없는 누군가의 사정을 듣기도 싫고

애써 누군가를 배려하고

누군가에 힘이 되어주고 응원하고 싶지도 않다

내 친구는 내가 되어주면 된다

나를 제일 잘 알고 생각하는 건 나 자신이니까

누군가의 시선에서 나는

얼마나 별로일까?

인정한다

성격이 그리도 별로니까 친구 하나 없다고 할 테지


하지만


좀 별로라도 인생은 굴러간다

잘 굴러간다

별로라고 별로라고 나는 좀 별로니까

대충 살아도 괜찮다고 주문을 외면서도 나는

매 순간 최선을 다 하고 있다

본능적으로 그런다

사실 과하게

최선을 다 하고 있다


최선을 다 해서 이 정도인 인생이다


보잘 것 없어 보여도

월급이 적어도 친구가 없어도

때로 무례하게 보여도

나는 매 순간 죽을 만큼 애써 살았다

때때로 이유도 없이 엄습하는 불안과

불쑥불쑥 찾아오는 강박

비합리적 신념

끊임없는 망상과 걱정들이 뒤엉켜

거미줄처럼 얽히고 설켜

머리를 꽉 채워도

내색하지 않고 내 몫을 해내려 나는 최선을 다했다

아무도 몰라도

나는 안다

아무도 몰라줘도 내가 안다

별로가 되지 않기 위해 내가 얼마나 발버둥 쳤는지

그렇게 발버둥 쳤어도

어느 시선에서 나는 좀 별로인 사람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그러니 그냥

더 자주 인정해야겠다

나는 좀 별로라고

유난히 지쳤던 목요일

늦은 오후

체감 200톤 몸뚱이를 꾸역꾸역 끌고

퇴근하다가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

나는 좀 별로라고

인정하기로


그래 나는 좀 별로다

나는

이 정도인 사람이다

죽을만큼 애써 살아내서 이 정도인데

이게 별로라면

그래 그냥 인정할게

나는 좀 별로라고


머리로 가슴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혹은 사람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서

공감할 수 없어서 미치고 팔짝 뛸 지경에 이르면

그래

나는 그냥 이해력이 좀 떨어지는 사람이라고

인정할게

그냥 내가 그 정도 밖에 안 된다고

별로라고 인정할게


인정하고 또 살아갈게


살아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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