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그라드는 꿈

by 윤성

한때 빵빵하게 부풀었던 꿈이

늙고 시들어

쪼그라드는 걸 바라본다


죽은 후 작품들이 인정받아

오랜 세월 사랑받는 화가의 이름이 떠오른다


살아서는 지옥을 걸었고

자신의 분신 같은 작품들이 죽은 후에야

그만치 사랑받으리란 걸

모른 채

떠난 사람


그게 의미가 없다 생각했다

행복하지 않았으므로

살아서

행복했어야 한다고 믿었다

아무 것도 모른 채 죽은 후

오랜 세월 사랑 받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허나

언제부턴가 나는 그거라도 꿈꾸게 되었다

그러고 싶었던 게 아니다

그저 그렇게 되었다

상황이 그리 흘러가버렸다


비루한 필력으로

비슷한 결의 문장들을 반복해 나열하고

특별한 색깔 없이

특별한 소재 없이

겉으로 잔잔한 일상 속에서

지진이 반복되는

아무도 모르는 내 머릿속의 전쟁들을

글로 남긴다


사람들은 나의 글을

읽지 않는다

아무도 공 들여 읽지 않는다

그들이 나의 글을 읽어야 할 의무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섭섭하다

마치 떼 쓰는 어린아이처럼


왜 내 마음을 몰라줘

도대체 왜


그렇게 마흔이 넘었다


무채색 사람이 되어

다채로운 꿈을 이룬 사람들을 바라본다

그들의 노력만이 빛을 발한다

무채색 사람의 노력은

기필코 미미하지 않았으나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노력하면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달콤한 거짓말에 당했다

너무 오래 그걸 믿었다

사기를 당했다

세상에는 거품처럼 사라지는 노력이

훨씬 거대하다는 걸

왜 아무도 입 밖에 내지 않았을까

노력 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왜 다들 쉬쉬했나


한때 빵빵하게 부풀었지만

이제 늙고 시들어버린 나의 꿈은

쪼그라들대로 쪼그라들어


자신이 그린 작품들의 가치를 끝내 모르고 떠난

화가를 동경하게 되었다

그거라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조차 아니다

오늘 밤 이토록 잔잔하게 가라앉은 나의 마음을

글로 남기고

보송한 이불 속에서 고요히 잠드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나의 꿈은 이제 그거라도 충분하다


그러니


한때 빵빵하게 부풀었던 꿈이

늙고 시들어

쪼그라드는 걸 바라보는 마음이 결단코

잿빛만은

아니다


오늘 밤에도

글을 쓰고 잠드는 나의 마음은 반짝인다

아무도

보지 않더라도


분명 어느 시선에서

반짝거리고 있다

쌀알처럼 쪼그라들었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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