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세 고시' 막자 '3세 준비생'만 받겠다는 영유
우연히 아침 신문을 읽다 머릿속에 머문 생각들을 글로 옮겨 보았다. 논쟁적일 수 있는 글이라 지웠다, 썼다 꽤 오래 노트북을 붙들고 있었다. 먼저 이실직고하자면 나는 꽤 쫄보이다.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5091428621
요즘 듣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4세고시', '7세고시'라는 말이 매체에 많이 등장한다. 등장하는 기사, 사설, 영상들을 살펴보면 내용은 거의 같다. 사교육 시장의 탐욕과 부모들의 비뚤어진 열망, 불안 등이 결합해 아직 학교 입학도 하지 않은, 심지어는 기저귀마저 떼지 않은 아이들을 과도한 학습과 경쟁에 내몬다는 것이다. 이건 아동학대가 분명하며 그걸 시행하는 사교육 기관과 학부모들을 향한 규탄이 뒤따른다. 읽다 보니 정말 무시무시한 유치원과 불안에 휘둘려 뭐가 자기 아이를 위하는지도 모르는 학부모가 문제인 것 같다. 기사 댓글도 역시 '부모들이 정신병' ,'미쳤다'는 반응이다. 나도 잘 몰랐다면 댓글처럼 부모들을 욕하며 흥분했을 것 같다.
이 시리즈 연재를 위해 매주 교육서를 읽어가며, 또 교육 인플루언서들의 유튜브 영상들을 보며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 점이 있다. 그것은 초등학교에서 공부를 잘했다고 해서 대입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고작 3년 후, 고등학생이 된 아이들은 냉혹한 현실에 마주한다. 그것은 첫 시험부터 엄격한 '상대평가'가 기다리고 있다는 현실이다. 첫 시험부터 자신의 등급이 찍힌 성적표를 받는 순간, 전체 학생 중 77%는 4등급 이하인 성적과 마주한다. 그러므로 초등학생들도 단원평가에서 만점 맞을정도로만 공부해서는 안 되고 고등학교를 염두하여 심화 공부를 따로 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특히 사교육 종사자)들의 솔루션이다. 나는 이 솔루션을 듣고 초등학교에 다니는 내 아이를 생각하며 불안과 위기감을 느꼈다. 그리고 이내 무력감이 뒤따랐다. 내가 학교에서 아무리 독서나 현행 복습을 강조해도 이것만 해선 고등학교에서까지 공부를 잘 할 수 없겠구나 하는.
그렇다면 4세 고시, 7세 고시는 원인이 아니라 드러나는 현상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나는 많은 사람들이 짚은 것처럼 학부모의 불안, 사교육 기관의 탐욕 등이 이런 영유아 고시의 근본 원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신 상급학교 입시와 동떨어진 공교육의(특히 초등학교) 교육과정, 그리고 우리 나라의 치열한 '지위 경쟁'에 그 근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 교사로서의 일을 시작한 이후로 두번의 교과서 개정이 있었으니 나는 총 세 가지 버전의 교과서를 경험해 본 셈인데, 명백한 것은 초등 교육과정은 갈수록 쉬워진다는 것이다. 매번 학습자의 부담을 덜어주는 쪽으로 개정이 이뤄졌다. 코로나 이후 저하된 학생들의 기초학력을 생각하면 일견 바람직한 개정이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개정된 교과서를 지나치게 쉽게 느끼는 학생들도 여전히 존재하며, 그로 인해 학부모들이 공교육만으론 안된다는 불신을 갖고 학원 문을 두드리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수능에서 1,2등급 학생들만 맞을 수 있는 문제를 낼 거라면 거꾸로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그런 문제가 수록되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래야 학원을 가지 않고도 고등학교에서 1,2등급을 맞을 준비를 초등에서부터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이게 가장 현실적인 해답이라 생각한다.
앞서 우리나라의 '지위경쟁'을 또 하나의 원인으로 들었다. 그런데 나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어떤 정부라도 이걸 바꿀 수는 없으며 이건 인간의 본성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물론 우리 사회가 경쟁이 과열된 면이 분명 있긴 하지만 그건 우리나라의 빽빽한 인구밀도, 기술집약적 산업이 더 큰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게 된 시대의 흐름 탓이라 생각한다. 좋은 대학을 나오면 고소득을 올리기 쉬운 현실속에서 내 자식이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해주려는 부모의 마음은 어쩔 수 없는 것 아닐까. 들어가려는 사람은 많고 자리는 적은 취업 경쟁처럼 입시 경쟁도 당연한 것이다. 그것의 시기가 빨라져 4세, 7세고시가 되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뛰어 놀아야 하니 다 같이 공부하지 말자는 것을 법으로 만든다면 문제가 해결되나? 그렇게 되면 오히려 지위 경쟁은 보통 사람들이 접근 불가능한 곳으로 가버리지 않을까? 해외 유학이나 개인 고액 과외처럼. 이런 강제적인 법안이 사람들의 지위 경쟁 본능을 억누르기엔 역부족일 것 같다는 생각이다.
물론 아이를 경쟁의 렌즈로 보거나 아이에게 자신을 투영하여 불안을 과하게 느끼며 그 나잇대에 필요한 신체적, 정서적 발달을 돕는 대신 좋은 학원만을 찾는 부모나 부모들의 이런 불안을 귀신같이 알아채고 자극하는 사교육 기관들에게도 분명 문제가 있다. 실제로 그런 부모나 학원들이 소아정신과를 흥하게 만든 직접 원인제공자임도 인정한다. 그러나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부러뜨린들 달이 지겠는가.
처음으로 책이 아닌 기사를 글감으로 쓴 글이다. 기사를 보고 떠오른 여러 불편한 감정들이 이번주에 읽은 교육서를 덮게 만들었다. 4세고시, 7세고시라는 자극적인 네이밍, '정신나간' 부모들과 탐욕스런 사교육 기관이 이 현상의 주범이 되어 버린 것, 그들을 향한 규제의 움직임들이 나는 불편했다. 다시 말해, '문제는 다른 곳에 있는데?' 라는 생각을 조금 길게 써 보았다.
소위 학군지로 이사온 지 벌써 두 달째, 거리의 풍경에서 매 순간 치열한 지위 경쟁을 느낄 수 있다. 건물을 빽빽하게 채운 학원들, 건물과 건물 사이를 가방을 메고 바쁘게 오가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의 뒤에 있는 헌신적인 부모와 조부모들... 빠르게 익숙해져 가는 모습들이다. 나 역시 아이가 학교에 간 시간에는 이런 글을 쓰고 아이가 하교한 후에는 헌신적인 엄마의 역할을 하며 매일매일 지위 경쟁에 동참할 테다. 어떻게 하면 아이가 행복해 하면서도 동시에 경쟁에 필요한 실력을 쌓을 수 있을지 늘 고민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