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광주 무등경기장, 해가 저물어가는 응원석에 일곱살의 나와 다섯살의 사촌동생, 아빠와 작은아빠가 있다. 너무 신이 나 들썩들썩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는 사촌동생과 달리 나는 졸리기만 하다. 무거운 눈꺼풀, 꾸벅꾸벅 떨어지는 머리, 희미해져가는 의식 사이로 작은아빠의 목소리가 들린다. 작은아빠는 경기장 안까지 다 들리도록 큰 소리로 외친다. "순철아아악~~~~!"
나는 순철이라는 선수가 작은아빠의 친구인가보다 생각하며 깊은 잠에 빠져든다.
일곱살 갸린이의 시작이 되었던 그 날로부터 수십년이 지난 2025년, 나는 집에서 아들과 함께 야구를 보고 있다. 이순철 해설위원의 해설은 이상하게 늘 친근한 느낌이 들었는데 그 이유를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 이젠 안다. 이순철 해설위원이 작은아빠의 친구가 아니며, 둘이 스친적은 야구장 말고는 없을 거라는 걸. 라떼 야구의 응원이란 그런 거였다. 팬이라면 선수 이름을 친구처럼 부르기도 하고 경기가 안 풀릴땐 경기장을 향해 거친 몇마디도 날려주는 그런 거.
다시 2025년 우리 집 거실, 무등경기장 타이거즈 키즈에 우리 작은아빠의 조카인 나는 경기를 보며 쉽게 흥분한다. 아니, 이건 내 잘못이 아니다. 우리 팀이 화가 날만한 경기를 하는거다.
"야 저 평범한 공을 못잡냐!"
"어떻게 저 공에 배트가 나가냐!"
이것이 야구 팬의 도파민인 것이다. 욕하면서 경기 보는 것.(물론 쌍욕은 안한다. 아무리 경기가 안풀려도)
결혼하니 내 욕에 장단을 맞춰주는 남편이 있어서 더 신이 났다. 주거니 받거니 욕하면서 야구를 보는 것이 우리 부부의 저녁 일과였다. 그런데 이 도파민 넘치는 취미생활에 결코 작지 않은 걸림돌이 생겼다. 이제 이런 우리를 초롱초롱 맑은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 어린이가 있다는 것이다. 3구 만에 아웃당하는 타자를 신명나게 욕하고 있노라면 아이의 놀라운 시선이 내 가슴에 아프게 꽂힌다. 아, 나의 어두운 면을 아이에게 또 보여주고 말았네.
내 아이에게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도 학생들의 모범이 되어야 하는 나는, 체육시간에 '다른사람 탓하지 않기'를 가장 강조한다. '너땜에 졌잖아.' 류의 말이 나오는 즉시 경기를 중단하고 교육에 들어간다. 다른 친구들을 탓하는 건 스포츠에서, 우리 반에서 가장 나쁜 것이라고, 선생님 귀에 그런 말이 들리면 게임은 못하는 거라고. 이런 엄격한 규칙이 없으면 쉽게 다른 학생들을 비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또 깊게 상처받는 학생이 생기고 마니까. 아무리 운동능력이 떨어지는 친구들도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즐겁게 자신만의 경기를 할 수 있도록 남 탓은 절대 금지이다. 이걸 가장 신경쓰는 내가, 야구를 볼 때만큼은 마음껏 남을 탓하고 선수를 비난하고 만다. 아, 나의 이런 모습을 학생들에게 들키는 일이 없기를.
학생들에겐 숨길 수 있을지 모르나 내 아이에겐 나의 이런 면을 수없이 들켰음을 알게 되는 날이 있었다. 어느 밤에 잠자리 독서를 하며 아이와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이가 푹 빠져 있는 '만복이네 떡집'시리즈에 관한 이야기였다. 책에서는 곤경에 처한 아이들을 위한 떡집이 나타난다. 그 곳에 들어서면 아이들을 도와주는 맞춤 떡들이 진열되어 있다. 나는 아이의 독서 습관을 잡아주는 현명하고 다정한 엄마의 정체성을 띄고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아들아, 지금 너에겐 어떤 떡이 있으면 좋겠어?"
-"저는 축구를 잘하는 꿀떡이요. 그리고 어색한 친구들이랑 친해지는 찹쌀떡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우와, 그거 참 좋겠다. 우리 아들한테 꼭 필요한 떡이네! 음, 엄마한텐 어떤 떡이 필요할까?"
-"아! 엄마는 야구 보면서 나쁜말 안하게 하는 인절미를 먹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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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수가. 그 동안 야구를 보며 뱉었던 나의 과감한 언어들을 당연하게도 아이는 다 듣고 있었다. 너무 당황스럽고 머쓱했다. 애한테 "야, 원래 야구팬은 그런 거야."라고 할 수도 없지 않은가. 그리고 아이도 나의 이런 모습을 닮는다면? 아, 상상만 해도 너무 싫었다.
그리하여 그날 이후로 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아이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어주어야 한다는 엄마로서의 정체성과 야구를 보면서 클래식 공연을 보는 것마냥 얌전하고 고운 태도를 유지할 수는 없고 그렇게 야구를 보는 것은 야구를 진정 즐기는 일이 아니라 생각하는, 입으로는 욕하면서도 맘속으론 열렬히 응원하는 야구팬으로서의 정체성 사이에서. 그리하여 일단 아이와 함께 야구를 보는 횟수를 줄였다. 야구도 좋지만 교육이 더 중요하기에. 그리고 같이 경기를 보는 날엔 욕은 마음속으로 삼키는 연습을 해 보려고 한다. 꼭 말이 아니라 표정이나 눈빛으로도 욕을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렇게 해 봐야지. 그러다 아이가 웬만큼 크면 그땐 다시 야구팬으로서의 정체성을 활짝 피울 수 있기를, 아니 그보다 먼저 우리 팀이 욕 안할만한 경기를 해 주시면 정말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다시 말하지만 야구를 보면서 욕을 하는 건 내 탓이 아니라 우리 팀의 문제니까. 암, 그렇고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