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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은 푸르고 어린이는 살찌고

by Applepie

"엄마, 저 28.4키로예요."

가정의 달을 맞아 북적이는 할머니 댁, 많은 사람 사이에서 아이가 내게만 다가와 귓속말을 한다. 순간 표정관리가 안되어버렸다. '허억, 진짜?'

나의 엄청난 반응에 남편이 무슨 일인지 궁금해했고 결국 어린이의 몸무게를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알아버렸다. 나한테만 다가와 귓속말 한 이유가 있을 텐데, 조금 더 고요히 반응해줄것을. 가벼운 후회와 동시에 걱정이 몰려온다. 몸무게가 이렇게 빨리 늘어서 어쩌나. 키도 크고 있긴 하나 몸무게 느는 속도가 월등히 더 빠르다. 우리 아이는 점점 더 토실토실해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마르고 키가 큰 초딩이었다. 사춘기부터 키는 멈추고 살이 붙기 시작해 입시가 끝날때까지 차곡차곡 살이 붙어 통통한 소녀가 되었으나 대학 졸업하고 일을 시작하자 별 노력 없이도 어릴때의 체형을 되찾았다. 우리 아빠는 주변에서 걱정할 정도의 마른 몸을 갖고 계시는데 나도 나이들며 아빠를 닮아가는구나 싶었다. 물론 구석구석 뜯어보면 군살이야 많지만 과체중이나 비만은 살면서 걱정한 적이 없었는데 내 아이가 이토록 통통한 어린이가 되었다니, 어릴때 통통했다던 남편 탓도 괜히 해 본다.


담임으로서 나는 매년 학생들의 건강기록부에 신체발달을 기록해왔다. 그러면 나이스에서 키와 몸무게를 바탕으로 정상체중인지, 저체중인지, 과체중인지, 비만인지가 떴다. 심지어 비만도 경도, 중등도, 고도비만으로 세분화되어 나왔다. 이런 데이터를 다년간 봐온 나는 내 아이가 어디에 속할지 직감할 수 있다. 아, 우리 애는 최소 과체중이거나 비만이겠구나, 하는 슬픈 예감. 아니, 예감보다 더 정확한 무엇으로.


초등학생 자녀가 없던 작년까지의 나는 학생들의 비만도를 퍽 객관적이고 비판적으로 바라봤다. 마치 대학원생이 논문 데이터를 정리하듯이.

'음, 갈수록 아이들의 비만률이 높아지는구나. 이유가 뭘까? 편의점이 늘어나는 것과 관련이 있을까? 코로나 시국엔 확실히 비만이 늘었네. 정상체중이 나오려면 내 눈에 약간 마른 듯해 보여야 하는구나, 좀만 통통하면 과체중이네.' 이렇듯 건조하게 사회문제를 바라보듯이 나는 아이들의 비만도가 높아짐을 흥미로워했으며 거시적인 관점에서 원인을 찾고자 했다. 불과 몇 년이 지난 지금은 그때의 나에게 이런 말을 해 주고 싶다.

"얘야, 아이가 뚱뚱한 건 부모가 편의점 간식을 매일 먹여서도, 운동을 안 시켜서도 아니란다. 몇년 후에 곧 알게 될 것이니 너무 자신만만하게 비판하지 말거라." 라고.


과거 꼿꼿한 교사였던 나를 떠올리자 괜히 억울해져, 요즘 내가 하고 있는 노력을 떠올려본다. 분명히 우유도, 점심도 먹고 하교했을텐데 집에 오자마자 간식부터 찾는 아이를 위해 그나마 건강하고 살이 덜 찔것 같은 통밀 크래커를 사서 쟁여뒀으며 그 밖의 가공식품은 사지 않는다. 대신 과일은 늘 떨어지지 않게 채워 두었다. 그런데 통밀 크래커에 크림치즈를 가볍게 클리어하고 오렌지에 참외까지 먹는 아이는 별 수 없이 살이 쪄 가는걸 어쩌랴. 코끼리도 풀만 먹어도 그 덩치를 유지한다지 않나. 다 먹고 "엄마, 이제 오렌지 주세요." 하는데 어찌 안 줄수가 있겠나. 게다가 매일 밖에 나가 뛰어 노는 시간을 30분 이상씩 주고, 또 아이는 달리기나 야구 스윙 등 신체 활동을 꽤 좋아하는데도 몸무게 느는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기만 한다. 아이도 점점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보인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체중계에 올라가서 눈 앞에 뜬 수치를 큰 소리로 자백하고 우리의 반응에 따라 토라지기도 한다. 왜 아니겠나, 남편도 한번씩 학회에 다녀올 땐 "요즘은 비만을 질병으로 본대. 그러니까 치료해야 해."같은 얘기를 하니 눈치가 빤한 아이는 자기얘기인걸 다 알아챘겠지.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놀이터에서 함께 땀 흘리며 노는 친구들이 다들 통통하다는 거다. 유치원때는 분명 안 그랬던것 같은데 초등학교 급식이 맛있나 아니면 원래 이 나이가 토실토실해질 땐가. 맞다. 자고로 훈남인 초딩은 잘 없다. 통통하고 앞니가 빠지고 자기들끼리만 재밌는 이상한 유행어를 내뱉는 것이 내가 일터에서 익히 봐온 초딩 아니던가. 그러다가 목소리가 변하고 여드름이 나는 초딩 고학년이 곧 되겠지. 내 아이가 지금 그 스테이지에 진입했음을, 아기냄새가 날 날이 빠르게 끝나가고 있음을 받아들여야겠다.


그래도, 아이가 마의 구간을 지나고 있음을 받아들인다 해도, 나는 나의 노력을 해야지. 채소반찬을 늘리고 전이나 볶음 대신 덜 살찌는 조리법을 연구해야겠다. 그리고 놀이터에 나갈 땐 꼭 줄넘기를 챙겨야지. 우리 비만까지는 가지 말자 아가야. 아빠가 그건 질병이라지 않니. 그리고 나중에 빼려면 힘들단다. 엄마는 너의 외모 비수기도 변함없이 사랑하겠지만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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