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이야기
거실 화장실, 컴퓨터방, 세탁실, 안방, 안방 화장실, 안방 베란다, 모든 곳을 수색 후 남은 곳은 단 한 곳이었다.
“아이들이 자고 있는 방”
그때 전와이프는 아이들이 자고 있는 방 앞에 못 들어가게 막고 있었다.
아이들이 잠에서 깬다고 못 들어가게 막았다.
실랑이 끝에 밀치고 방문을 열었다.
아이들 방안에는 “완강기룸”이 있었다.
완강기 룸은 내 물건을 적재하는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마지막 완강기 룸을 열 때 제발 아니었으면 한다고 속으로 눈물을 머그며 빌었다.
문이 열리자 나는 악마로 변했다. 상간남이 신발을 들고 숨어 있었다. 그때의 표정은 평생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한평생 격투종목 선수로 살아왔지만, 누군가에게 합법적이지 않은 자리에서 손을 대본적이 없었다. 완강기 룸은 피바다로 변했다. 사진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애린다.
그때 아이들은 잠에서 깨어났고, 절대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했다. 그 둘을 데리고 컴퓨터 방으로 이동했다. 전 와이프는 팔뚝을 잡으며, 설명한다고 했다. 나는 내 몸에 손을 대는 순간 더러워서 뺨을 때렸다.
칼을 들고 오지 않았던게 천만 다행이다. 둘다 무릎을 꿇었다.
잠시 손에서 흐르는 피를 보며 이제 어떻게 해야되나 생각했다. 일단 둘다 무릎꿇고 있는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찍었다.
흠,, 그 사진까지는 올리지 않겠다.
밤 약 10시 32분 즈음 장인, 장모, 우리 부모님까지 카톡방에 초대해 사진과 영상을 전송했다.
그리고 상간남 핸드폰을 꺼내라고 했다.
서로 주고 받은 카톡방을 보았다.
상상 이상으로 가관이였다. 상간남은 수영강사 20대 후반 싱글이였다. 전 와이프는 아이들 사진을 보내면서 등원한다, 하원한다, 등등 나랑 해야 할 말들을 상간남이랑 하고 있었다. 심지어 연인관계에서 해야 할 말들과 사진을 주고 받았다.
정말 많은 순간들이 스쳐지나갔다. 새벽부터 밤 아홉시까지 일하고 집에 오면 육아에 지친 전 와이프한테 내가 씻기고 재울테니 나가서 바람좀 쐬고 오라했다.
‘적어도 일주일에 3번이상은’
어느 날은 혼자, 어느 날은 누구언니를 만나러 간다고 했다.
그런데 복장이 바뀌었다. 연애하러 가는것처럼 이 옷 어때? 패션쇼를 하고 나가는것도 전부 상간남을 만나러 갔던 것이다. 내가 상간남에게 물었다.
혹시 6월24일에 1박2일 담양으로 같이 놀러갔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