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로 반갑지는 않지만 무기력을 다시 만난 이야기
2박 3일 동안 최소한의 집안일과 아이들 돌보는 일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넷플릭스를 봤다.
얼마나 갈망했던 자유의 시간이었는데 그토록 지루하고 재미없을 줄이야.
2박 3일을 꼬박 채우지도 못한 채 넷플릭스는 끄고 멍 때리기를 했다.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그 멍한 상태로 한 달을 보내고 새로운 달 4월을 맞았다.
그 사이,
우리 집 작은 수족관에는 열대어 새끼 10마리가 더 생겼다.
꼬물거리며 그 작은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남편이 작은 화분에 옮겨 심어 놓은 금전수 잎은 뿌리를
내렸는지 새싹이 돋았다.
몇 개월을 오매불망 기다린 남편은 뿌듯함에 목이 멜 지경이다.
아이들 등굣길에는 벚꽃과 목련꽃도 피었다.
벚꽃잎이 깔린 길을 걷는 둘째의 얼굴에는 벚꽃보다 더 예쁜 웃음꽃이 피어 난다.
그렇게 모든 것이 변화하고 시간은 흘러가고 있다.
나의 시간도 흘러갔다.
단지, 나의 정체성만 3월의 그 멍 때리던 그 순간에 멈춰있다.
정신은 멍한 상태,
몸은 무중력 상태,
에너지는 무기력 상태.
그렇게 멈춰 있다.
나는 여전히 아이들을 보며 웃고,
드라마를 보며 울고,
남편과 수다를 떨고,
주어지는 일도 하고.
다 하고 있는 듯 하지만
어디선가 멈춘 상태이다.
매우 낯익다.
12년 전, 사업을 쫄딱 말아먹고 빈털터리가 되었을 때,
세상에 내 것이라고는 옷가지 몇 벌과 노트북 하나뿐이었던 바로 그때의 나.
별로 반갑지 않지만 어쩔 도리는 없고,
벗어나려고 발버둥 칠 힘도 없어서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래서 시작했다.
필사를.
필사에 어떤 의미를 담아서도 아니고, 어떤 기대를 해서도 아니었다.
그냥 문득 떠올랐다.
나도 필사를 해 보자고.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겠지만 흐르는 대로 흘러가 보려고 한다.
언제나 강한 의지로, 최대치의 노력을 끌어올리며 살아왔던 나에게는 또 다른 도전이다.
무기력하지만 오늘 하루도 잘 살았다.
나의 하루에게 미소를 보내며 내일은 또 어떤 글을 필사할지 작은 호기심을 던져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