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이라는 나이의 딜레마
2022년 1월 1일
아들 : 엄마 이제 몇 살이야? 49살이야?
나 : 그렇지, 작년에 48살이었으니까.
2023년 1월 1일
아들 : 엄마 이제 몇 살이야? 50살이야?
나 : 아냐, 올해부터 나이가 바뀌잖아. 엄마는 올해도 49살이야.
2324년 1월 1일
아들 : 엄마 이제 몇 살이야? 50살이지?
나 : 시윤아, 이제부터 엄마는 그냥 49살이야. 올해도 49살이고, 내년에도 49살이야.
아들 : 왜 엄마는 나이 안 먹어?
나 : 엄마는 시윤이랑 지안이가 20살 될 때까지 그냥 49살 하려고 결심했어. 그러니까 엄마는 49살이라고 생각해. 알았지?
아들 :...
나는 3년째 49살로 살고 있다.
나의 40대는 내가 생각했던 모습과 너무 달랐다. 40대는 안정적이고, 편안하고, 우아한 모습일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치열하고 불안정한 40대를 보냈다.
남편과 피 터지게 싸우며 달콤해야 할 신혼을 진흙탕 속에서 보냈다.
두 아이를 낳고 육아전쟁을 치르느라 피비린내 나는 전투력은 더 상승했다.
그 와중에 작가가 되겠다며 새로운 도전을 했고
치열한 고투 끝에 두 권의 책을 냈지만 이 넓은 세상에서 내 흔적은 한낱 스치는 바람 같았다.
49살의 마지막 날까지
우아하지도, 편안하지도, 안정적이지도 않았다.
새해를 맞이하고 네이버 프로필 나이를 확인했다.
50이라는 숫자가 매몰차게 박혀 있었다.
빼박 50살이 되었다.
50대를 시작하기에는
내 아이들은 여전히 어리고,
내가 세운 사회적인 목표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슬프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 나이를 49살이라고 우기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명쾌하게 해결이 된 듯했다.
나는 49살로 계속 살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지 않았냐며 아무에게라도 따지듯 객기를 부렸다.
아쉽게도, 그렇게 명쾌하게 끝나지 않았다.
문득문득 50이라는 글자가 다가올 때가 있다.
그 숫자는 혼자 오지 않는다.
인생에 대한 회의, 좌절... 그리고 후회까지 함께 온다.
내던지고, 밀어내고, 아니라고 손사래 쳐봐도 막무가내다.
나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들에 대해 깊이 쫓고 있는 요즘,
50이라는 나이도 크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똬리를 틀고 있다.
치열하고 전투적이었지만 40대의 내 나이 앞에서는 늘 당당했다.
누군가에게는 희망을 주고,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기도 했다.
왜 50살이라는 나이 앞에서 이렇게 작아져야만 하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무기력해서, 무기력이 주는 부정적인 에너지 때문에
나이마저도 더 무겁게 느끼는 건지
아니면 진짜 50살이라는 나이가 무게감이 있어서인지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
미국에 잠시 머물다 오셨던 아버지의 말씀이 떠오른다.
"내가 10년만 젊었어도, 미국에서 새로운 도전을 해 볼 텐데... 정말 기회가 많은 나라야. 너무 늦게 알아서 정말 아쉬워."
그때 아버지의 나이는 60이 조금 넘었었다.
그때의 아버지에게 50이라는 나이는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좋은' 나이였다.
어쩌면 나는 고작 그 나이를 시작하는 것뿐이다.
29살, 39살을 지날 때는 어땠었는지 기억을 더듬어 본다.
어린, 젊은 나이를 보내는 것이 서운했지만 슬프거나 아프지는 않았다.
49살이라고 우기며 50이라는 나이를 살아가는 지금은...
조금 슬프고 많이 아프다.
50대를 어떻게 더 잘살아야 할까.
고민이 쉽게 지워지지 않는 요즘이다.
[오늘의 필사 중에서]
인정받고 싶어 하고 거절을 두려워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누구나 그렇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받아들이지 않는 한 누구도 당신을 거절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누군가가 당신을 거절한다면 그것은 당신에 대한 그들의 믿음 탓이다. 그러한 믿음은 그들의 마은 속에 있는 것이지 당신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그들의 믿음을 받아들이는 순간, 당신은 타인이 당신을 거절하도록 만드는 셈이다.
- 마리사 피어 <나는 오늘도 나는 나를 응원한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