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의 추억, 젊은 사람이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여보! 저기 사람이 나무에 목매달았어!”
얼굴이 하얗게 질린 아내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소리야? 왜 그래?”
“저기, 어떤 사람이 목매달아 죽어있잖아!”
“뭐라고? 어디? 어느 쪽이야!”
아침마다 맨발 걷기 하는 숲속 길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
아내가 가리키는 곳으로 쫓아가 보니 과연 어두컴컴한 숲길 안쪽으로 시신 한 구가 대롱대롱 나무 위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아내가 보지 말았어야 할 것을 본 것입니다.
시신을 먼저 발견한 사람들이 저만큼 멀리 떨어진 곳에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습니다.
웬 사람이 이 숲속에서 목을 매었을까?
숲길 조금 안쪽의 나무 위에 매달려 있는 시신의 얼굴을 언뜻 올려다보니 젊은 남자였습니다.
아. 저 모습…
저 모습은 내가 오래전, 아주 오래전에 본 적 있는 모습인데…
***
초등학교 삼학년 때였으니 지금부터 약 육십여 년 전쯤의 일입니다.
그때 우리 집은 종로구 혜화동이었기 때문에 학교만 끝나면 친구들과 어울려 바로 옆 동네인 명륜동 성균관대학교 뒷산으로 올라가 놀았습니다.
성균관대학교 뒷산에서 좀 더 올라가면 옛 성터도 나오고 제법 깊은 산속으로까지 이어집니다. 거기서 방향을 바꿔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삼청동이 나오고 청와대 가는 길도 나옵니다.
어느 날은 평소 잘 가지 않던 깊은 숲속에서 같은 반 친구들과 술래잡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아이의 얼굴이 하얗게 변하면서 갑자기 비명을 지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아악! …얘, 얘들아. 저, 저기, …죽은 사람이 있다!”
“뭐라고?”
“뭐라고?”
다들 놀라 그 아이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습니다. 과연 높은 나뭇가지 위에 웬 사람 하나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습니다.
“주, 주, 죽은 사람이다!”
모두가 다 엄마야! 비명을 지르며 혼비백산 달아나버렸습니다. 나 하나만 덩그마니 그 자리에 남았습니다. 왜 같이 달아나지 않고 나 혼자 거기 남아있었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그놈의 호기심이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나는 그때까지 죽은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죽은 사람 얼굴은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했습니다.
나도 모르게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걸어가 나무에 매달린 사람 바로 앞까지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나무에 매달린 사람의 얼굴을 빤히 올려다보았습니다.
그것이 실수였습니다.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았습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시커먼 얼굴과 길게 늘어진 혀였습니다. 아! 사람의 혓바닥이 그 정도로 길 줄이야… 그 사람의 입에서 쏟아져나온 혀가 거의 가슴까지 늘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더 끔찍한 것을 보았습니다. …저, 저게 뭐야?
길게 늘어진 혓바닥에 파리 떼가 왱왱거리며 새카맣게 달라붙어 있었습니다.
그 끔찍한 모습을 보는 순간, 어마어마한 공포감이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윗니 아랫니가 딱딱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깊은 숲속은 한낮인데도 어두컴컴했습니다. 친구들은 이미 다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그 어두컴컴한 숲속엔 나무에 매달린 그 사람과 열 살 꼬맹이였던 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내 얼굴은 하얗게 질려있었을 것입니다.
그 사람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뒷걸음질 쳤습니다. 만약 그 사람에게 등을 돌리고 도망친다면, 그 사람이 당장 나무에서 뛰어 내려와 나를 붙잡아갈 것 같았습니다.
그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곳까지 뒷걸음질 치다가 마침내 그 사람의 모습이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자 그때부터 뒤돌아서 산을 뛰어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어찌나 혼비백산해서 뛰어 내려왔던지 바위 언덕에서 굴러 무릎이 다 까지고 엉덩이를 나뭇가지에 찔려 깊은 상처까지 났습니다. 그때의 흉터 자국이 지금까지 훈장(?)처럼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며칠 동안 악몽을 꾸었습니다. 나무에서 내려온 사람이 우리 집에도 찾아오고 학교에까지 찾아오는 것이었습니다. 엄마! 하고 꿈에선 깨어나면 온몸이 땀에 펑 젖어있었습니다.
***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신고를 받은 119구조대가 출동한 것입니다.
아내가 많이 놀랐습니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아내를 달래가며 급히 숲속을 빠져나왔습니다.
“나 이제 거기서 맨발 걷기 못할 것 같아.”
아내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어두컴컴한 숲속에서 우연히 목매단 시신을 보게 되었을 때의 충격은 생각보다 훨씬 엄청납니다. 그 후유증도 상당 기간 오래 갑니다.
“…할 수 없지. 다른데 찾아봐야지.”
“아. 정말… 그 사람이 왜 나까지 불러서 그걸 보게 했는지 몰라.”
목매단 시신을 처음 발견한 사람이 하필 그때 맨발 걷기 하며 그 자리를 지나가던 아내를 불러세우고 저것 좀 보라고 외쳤던 모양입니다. 아내가 그걸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도 놀랐으니까 그랬겠지.”
“생각만 해도 너무 끔찍해.”
“괜찮아. 조금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게 될 거야. 우리 목회할 때도 비슷한 일 겪었잖아?”
“…언제?”
“이거 봐. 당신 벌써 다 잊어버렸네. 정 집사님 일 기억 안 나?”
“아! 맞다! 정 집사님.”
***
목회하던 시절의 일입니다. 한밤중에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자다가 깜짝 놀라 깨어 일어나 받아보니 우리 교회 다니는 최 집사님이었습니다. 전화기 속으로 통곡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목사님! 남편이 유서를 써놓고 집을 나갔어요.”
“…뭐라고요? 언제요?”
혼비백산해서 한걸음에 아내와 함께 최 집사님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집사님이 남편의 유서를 앞에 놓고 망연자실 앉아있었습니다.
유서를 읽는데 두 손이 덜덜 떨렸습니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더 늦기 전에 빨리 찾아내야 했습니다. 경찰서에 신고하고 핸드폰 위치추적을 위해 허둥지둥 소방서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핸드폰이 꺼져있어 위치추적이 불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눈앞이 아득했습니다. 밤새 가족들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그분이 갈만한 곳을 모조리 찾아다녔습니다.
최 집사님의 남편인 정 집사님은 우리나라 최고의 명문 공대를 졸업한 엘리트로 재벌기업에서 승승장구하며 수많은 해외 대형플랜트를 수주하던 분이었습니다. 나중엔 건설회사 회장까지 지냈습니다.
그렇게 잘 나가던 분이 인생 말년에 파산해버렸습니다. 회사가 부도나고 천문학적인 빚을 진 채 그야말로 참담한 노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거의 폐인처럼 된 모습으로 최 집사님 손에 이끌려 우리 교회에서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마지못해 함께 교회를 다니긴 했지만 부부 사이의 갈등이 무척 심각했습니다.
두 분이 계속 저렇게 살다간 무슨 일 일어나겠네? 아내와 늘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던 중 기어코 그날 밤 사달이 나고 만 것입니다.
그때는 의경이 있던 시절입니다. 날이 밝자 신고를 받고 의경 중대가 출동했습니다.
의경들이 동네 야산을 샅샅이 수색하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온 산을 이 잡듯 뒤지고 다녀도 행방이 묘연했습니다. 마침내 의경 중대장의 입에서 비관적인 말까지 나왔습니다.
“목사님. 이 정도면 제 경험상 그분이 지금까지 살아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봅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끝까지 최선을 다해 찾아봐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목사님. 수색 지역을 더 확대해보겠습니다.”
의경 중대장이 떠나자 아내가 내 곁으로 다가오더니 귓속말로 무서운 말을 하는 것입니다.
“여보. 설마 정 집사님이 교회에서 일을 저지르신 것은 아니겠지?”
“뭐라고? 교, 교회?”
아내의 말을 들으면서 온몸에 소름이 쪽 돋았습니다. 그분이 가끔 농담처럼 하던 말이 퍼뜩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당시 우리 교회는 서울 인근에 세워진 전원교회였습니다. 주일예배를 마치고 교회 식당에서 식사할 때면 혼자 외톨이로 우두커니 창밖을 내다보는 그분의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습니다.
“정 집사님. 뭘 그리 보고 계세요?”
어느 날 말을 거니까 뜬금없이 이런 농담을 던지는 것입니다.
“목사님. 저기 저 나무 좀 보세요.”
“예? 저 나무가 왜요?”
“저 나무가 십자가 종탑 바로 옆에 있잖아요.”
“…그런데요?”
“십자가 바로 옆에 있으니까 얼마나 좋아요. 진짜 목매달기 딱 좋은 나무 같아요. 하하하.”
“아이고. 집사님. 농담이라도 그런 말씀 하시면 안 됩니다!”
퍼뜩, 그때 일이 떠오르면서 심장이 터질 듯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습니다.
“여보! 빨리 교회로 가보자!”
미친 듯이 차를 몰고 아내와 함께 교회로 달려갔습니다. 운전대를 잡고 계속 기도했습니다.
“오. 하나님. 정 집사님을 지켜주소서. 오. 하나님. 제발 그분의 생명을 살려 주소서.”
교회 주차장에 차를 세울 때 아내가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당신은 여기 있어. 나만 갔다 올게.”
아내를 차 안에 두고 나 혼자 십자가 종탑을 향해 뛰어갔습니다. 십자가 종탑 바로 뒤에 아름드리나무가 서 있습니다. 그 큰 나무 아래는 한낮에도 그늘이 져 어두컴컴합니다.
바람이 불어 나무 잎사귀들이 우수수 흔들렸습니다. 무성하게 사방으로 이리저리 벋어있는 나무 그림자를 보는 순간 가슴이 섬뜩했습니다. 꼭 나뭇가지 위에 덩치 커다란 사람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
그러나 환영이었습니다. 다행히 나무 위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무너지듯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습니다. 그리고 무릎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눈물 콧물에 온몸을 땀으로 흥건히 적셔가며 얼마 동안이나 그렇게 간절히 기도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던 어느 순간이었습니다.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소스라치게 놀라며 전화를 받았습니다. 담당 경찰관이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두려움에 가슴 한복판이 얼음장처럼 싸늘해졌습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그분의 시신을 찾은 모양이로구나.
그런데 뜻밖의 말이 전화기 속에서 흘러나왔습니다.
“목사님. 다행입니다. 방금 핸드폰이 켜진 걸 확인했습니다. 이제는 위치추적이 가능해졌습니다.”
이게 무슨 소린가? 꺼졌던 핸드폰이 다시 켜졌다면 그분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이 아닌가? 위치추적이 가능하다면 곧 찾을 수도 있다는 것 아닌가?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온몸의 긴장이 풀리면서 바닥에 드러누워 그냥 쭉 뻗어버렸습니다. 저 멀리서 여보. 여보. 나를 부르는 아내의 목소리가 꿈결처럼 아른아른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정 집사님은 죽음 일보 직전에서 기적처럼 다시 살아나 교회로 무사 귀환하셨습니다.
숲길을 다 내려오면 바로 공원이 나옵니다. 공원 앞 광장을 가로질러가는데 아내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습니다.
“젊은 사람이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겠어. 젊은 나이에 그렇게 자기 스스로 인생을 끝내려고 결심한 사람의 마음을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헤아릴 수 있겠어. 우리만이라도 그 사람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말자.”
잠시 가던 걸음을 멈추고 그분의 영혼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아무도 없는 캄캄한 숲속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나무 위로 올라가는 한 젊은이의 모습이 환영처럼 눈앞에 떠올랐습니다. 그 절망감이 느껴지면서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또 한 사람의 영혼이 구세주 예수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만약 그 젊은이가 하나님을 만났더라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나무에 달려 몸 찢고 피 흘려 죽어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달았더라면, 아무리 힘들어도 결코 그런 선택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보. 우리도 힘들 때 많았지?”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힘들 때 많았지. 지금도 당신 몸이 아프니까 힘들잖아.”
“언제였던가 우리가 정말 살기 힘들 때 당신이 자면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어.”
“…무슨 말?”
“우리 이대로 잠들어서 영원히 아침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영원히 깨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때가 언젠지 기억해?”
“…기억하지. 우리 그때 너무 힘들었잖아. 정말 더 살고 싶지 않았어.”
“그날 밤 당신 잘 때 내가 밤새도록 당신 옆에서 눈물 흘리며 기도했던 것 모르지?”
“그건 몰라. 그때 나도 엄청 울다 잠들었으니까…”
“그날 밤 꿈꾼 이야기 해준 건 생각나?”
“…생각나.”
“그날 밤 꿈에 예수님을 만났어.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셨어. 그런데 당신 이거 알아? 예수님이 기도하시면서 우리보다 훨씬 더 눈물 많이 흘리시더라고.”
“…………”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요한일서 4장 9절 10절)
***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