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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봄 Mar 29. 2024

44화: 며느리, 상담사 선생님도 만나다.

대략 3년 전 일이다.


정신의학 병원에 다니면서 상담치료도 병행하면 효과가 더 좋다는 말을 들어서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하고 싶은 마음에 심리 상담 센터도 알아보기 시작했다.


지인 중 한 사람이 시댁 문제로 심리 상담을 받아본 적 있다는 말을 몇 년 전에 들은 기억이 있어서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우리 동네에도 제법 많은 상담센터가 있었다. 그중에  곳을 선택해서  상담 경력이  제일 긴 선생님을 지정해 예약을 했다. 상담 비용경력 순인 것 같았다. 난 대략 4회 정도 받고 결과지를 받으면 되니 경력이 있는 선생님과  상담을 하고 마무리하면 될 듯싶었다. 당시 내 생각은 30대 선생님들  고부갈등 경험 전무하거나 짧을 인데 어찌 내 인생을 이해할까 싶어 무조건 10년 이상의 상담 경력을 가진 선생님을  선택하게 되었다.


1차 상담 전 여러 검사가 진행되었다. 아마도 나의 성향을 미리 파악한 후 상담치료를 진행하려는 듯싶었다. 사실 이 센터에 오기 전, 난 선입견이 팽배한 인간이었다. 보통 이런 공간은  한가하고 돈 많은 사람들이 넋두리하러 오는 곳으로 치부했었는데 방문해서 상담을 받아보니 내 선입견은 선입견일 뿐이었다.


첫 상담일.


상담 선생님과 처음 만나는 날이다. 한 번도 이런 상담을 해 본 적이 없어서 긴장이 되었지만 상담의 이유가 명확했기에 최선을 다해 임하고 싶었다.


난 10년간의 고부 관계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했다. 나의 시어머니가  얼마나 이상하고  이중적인 사람인지  시부와 남편은 얼마나 비겁한 사람인지 낱낱이 파헤치듯이 알려 주었고 내가 그 속에서 얼마나 정신적인 고통을 받았는지도 말해 주었다.


"네, 잘 었습니다. 그럼 이제 이경란 님의 유년기로 가볼까요? 아버지는 어떤 분이셨어요? 어머니는요?"


"아니, 시어머니가요..."


"네, 그런데 이경란 님의  어린 시 이야기도 궁금하네요.."


"... 저기요. 갑자기 제 어린 시절은  ? 제가 시어머니 이야기를 더해야 하는데요... 시어머니가... 시어머니를..."


고부갈등 때문에 내가 죽을 것 같다는데, 심장이 마구 뛴다는데  왜 나의 어린 시절을 묻는 건가? 나의 어린 시절과 결혼 후 갑자기 만난 이상한 시어머니가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시어머니가 어떤 종류의 악마인지 나에게  설명해 주고 그 관계 속에서 생존한 나를 위로해 주고 인정해 주면 되는데  인간의 마음 전문가는  내 시모가 어떤 사람인지 쉽게 알 수 있는 것 아닌가? 왜 자꾸 기억도 안나는 나의 유년 절을 묻는지... 매 회 상담 시간이 1시간으로 정해져 있어 돈이 아까워서라도 그 안에 뚜렷한 결과를 얻어야 하는데  왜 상담 선생님은 머나먼 과거의 일을 들추려 하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네, 잘 알았어요. 시어머니와의 관계를 이해하려면 우선 제가 이경란 님에 대해서 알아야 하잖아요?"



" 저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주에 시행한 검사 결과에 다 나와 있잖아요? 선생님께서 이미 다 보셨잖아요?"



"네... 그건 기본 성향 검사를 한 것이고요... 제가 이경란 님에 대해 추가로 더 알아야 이번 상담에서..."



" 제 생각엔 악마 같은 시어머니로부터 제가 어떻게 당했는지 그걸 선생님이 더 아셔야 저에 대해서 더 잘 이해가 되는 거 아닌가요? 제가 얼마나 고통받았는데요.  시어머니 때문에 저까지 완전히 미쳤다고요. 정말 이상한 시모 때문에 모든 일이 망가지고 무너졌어요. 시어머니가 제 인생을 전부 다 망쳤다고요! 제 건강이 무너지고 제 커리어가 박살이 났어요!"



"네... 네..."


상담 선생님은 50대 초반 정도로 머리를 단정하게 묶었고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왠지 낯이 익기도 하다. 아까 대기실 벽면에  방송 출연을 많이 했다고 홍보 사진이 많이 붙어 있었다. 가족 상담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언젠가 본 것 같기도 한데 확실하지는 않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도 만만치 않을 텐데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경청하는 걸 보면 베테랑 선생님이 확실해 보인다. 이 여자가 자꾸 나에 대해서 묻는다.



"차라리 못된 시어머니를 만났더라면 일찌감치 우린 헤어졌을  거예요.  막말하고 못돼 먹은 사람들은 금방 알 수가  있잖아요. 그런데 제 시모가 이상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어요. 겉으론 약한 척 아픈 척하니까 그냥 몸이 너무 아프니까 저런가 보다 했죠. 근데 제 시모는 정말 이상해요.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척, 아픈 척, 버림받은 척하면서 뒤에서는 사람들을 조종하고 계략을 꾸민단 말에요. 이상하죠? 난 성격이 강하다는 이유로 공공의 적이 되고 있어요. 이를 어째요. 시어머니가 제 인생을 완전히 망쳐서 제가 이런 신세가 되어 버렸어요. 거지 같은 신세요."


"네, 경란 씨 말을 들어보면  시어머니가 분명히 정신적인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이경란 씨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아야 시어머니와의 관계에 대해 더 잘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 그래요..."


"저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고요?"



난 여전히 널 사랑한다. 며늘아... 나는  10년간 그내 몸이 아파서  아프다고 말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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