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by 솜)복숭아 철이다.
복숭아는 냄새를 맡아보고 고르면 실패할 확률이 현저히 낮아진다.
맛있는 복숭아는 아무리 비닐로 만든 단단한 곽에 넣어 놔도 단내를 숨기지 못하고 물씬 물씬 내뿜고 있어서다. 역으로 물렁한 복숭아건 딱딱한 복숭아건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는 복숭아는 맛이 없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동구 밖 과수원 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 하얀 꽃 이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네~'
박화목 선생님이 고향 황해도의 과수원 길의 눈송이처럼 흩날리던 아카시아 꽃을 눈앞에 그리듯이 쓴 노래 말이다.
내가 살던 시골도 비슷했다. 강변을 끼고 나 있는 아카시아 꽃길을 따라 가면 드넓은 복숭아 과수원이 펼쳐져 있었다. 아카시아 꽃이 흩날리는 봄 길을 걸으면 누구라도 한 번쯤은 발길을 멈추지 않을 수 없으리라.
하지만 나는 그 길을 따라 걸으며 전혀 다른 이유로 발길을 자주 멈추어야 했다.
뿐만 아니라 숨도 크게 쉴 수 없었다. 복숭아 같은 달콤한 낭만을 초토화 시킨 주인공이 있었으니, 밤낮 주야로 과수원을 지키던 개 두 마리 때문이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지만 그 시절에 과수원은 아무나 할 수 있는 농사가 아니었다. 기술이나 자본 등이 일천 했을 동네 분들은 논 농사 밭농사 외에 과수원 농사는 아예 관심 밖이었을 것이다.
과수원 집은 한 눈에도 우리가 사는 모습과는 퍽 거리가 있어 보였다. 우선 사는 집부터 달랐다. 동네의 웬만한 사람들은 초가집에 살았는데 과수원 집은 도시처럼 슬라브 집 인 데다 아래 채까지 모두 양철 지붕이었다.
게다가 그 집 안주인의 택호에는 대도시의 이름이 떡 하니 붙어 있었다.
-엄마, 00댁은 진짜 00에서 시집왔나?
-00에서 시집왔으니까 00댁 이겄지.
00댁의 딸은 인근 시내의 여상을 다녔는데 우리로서는 도달하기 어려운 겉모습을 하고 있었다.
잘 다림질 된 깔끔하고 세련된 교복에 책가방을 들고 사뿐사뿐 걸어가는 모습은 딴 세상에 사는 사람 같았다. 그녀의 뽀얀 피부도 땡볕에 그을려서 빨갛게 된 우리네 피부와 비교가 되었다.
우리가 여름에 강물에 멱을 감으러 갈라치면 그녀는 그늘에 돗자리를 펴고 그 위에 앉아서 하모니카를 불고 있었다.
겨울만 빼고 그 집 앞을 가끔 혹은 자주 지나다녔다. 아니 지나 다녀야만 했다. 우리가 농사 짓는 밭에 가려면 그곳을 지나야만 했기 때문이다. 봄이 오면 밭에 가서 누에가 먹을 뽕 잎도 따 와야 했고 여름이면 각종 푸성귀도 하루가 멀다 하고 마련 해와야 했다
과수원 집 입구에서 송아지 만한 커다란 개 두 마리가 납작해진 배를 늘어뜨리고 크르릉거리며 지키고 있었다. 누런 바탕에 군데군데 검은색 털이 나 있는 개였다. 사람이 지나가면 묶어둔 줄이 팽팽해질 정도로 날뛰면서 컹컹 짖어 댔다. 몸집이 크니 짖는 소리도 주변이 울릴 정도로 컸다.
볼 일이 있어 밭에 갈 때마다 제발 이지 줄이 끊기지 않고 무사히 지나가기를 바랐다
한번은 개 짖는 소리가 나지 않아 개를 팔았나?
하면서도 혹시나 하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걸어가는데 저 멀리 과수원 근처에서 개 두 마리가 땅에 코를 킁킁거리며 제멋대로 돌아 다니고 있었다. 순간 심장이 오그라 드는 것 같았다.
내 옆에 누가 있었다면 하얗게 질려버린 내 얼굴을 보고 덩달아 놀랐을 것이다.
개들이 언제 뛰쳐나올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나는 개들이 나의 존재를 알아채고 달려 나올까 봐 조마조마하면서 근처에 있는 커다란 굴밤나무 둥치 뒤에 가서 숨었다. 한참이 지나, 개들이 과수원 집 마당으로 들어가서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에야 거기서 나와 겨우 지나갈 수 있었다.
그 뒤에도 개가 묶여 있지 않아서 종종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나는 밭에 갔다 와서 엄마한테
-엄마 밭에 가는데 00댁이 개를 풀어놨어. 개가 집 안으로 들어 갈 때까지 굴밤 나무 뒤에서 한참 숨어 있었다니까. 식겁했다.
하면 엄마가 "뭣이라, 부산 댁인지 서울 댁인지 이것들이 남의 귀한 딸 잡을라고 환장을 했나? 내가 가서 요절을 내고 올 테니까 걱정 마라"
라고 말하는 대신에
-개가 설마 사람 잡아 묵을까? 했다.
내가 어른이 돼서 엄마한테
-엄마 내가 그 때 그 집 개들 땜에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지 몰라, 물어 뜯기지 않고 살아 남은 것이 용하다. 했더니
-저거 개는 겁만 주고 안 문다 카더라, 남의 말을 안 듣더구먼, 순 상놈들이더라. 했다.
개는 개고 복숭아는 복숭아다. 우리는 해마다 그 집 복숭아를 먹었다. 정확히 말하면 보리 수확이 끝나고 나서 보리를 갖다 주고 그 대가로 복숭아를 받아왔다.
보리와 복숭아의 물물 교환인 셈이었다.
물물 교환에 쓸 보리는 아이들이 직접 마련했다. 우리는 방과 후에 보리 타작을 끝낸 논에 가서 보리 이삭을 주웠다. 배알이고 뭐고 없었다. 상놈 집의 복숭아를 얻어먹기 위해 철 따라 열심히 보리 이삭을 주워 모았다.
몇 날 며칠 동안 모은 보리 이삭을 도리깨로 떨어 낱알을 만든 것을 엄마가 다라에 이고 가서 복숭아와 바꾸어 왔다. 보리 한 다라를 이고 가면 복숭아도 한 다라를 이고 왔다. 그런데 엄마가 저녁 먹고 이고 온 복숭아를 먹으려고 보면 하나도 성한 것이 없었다. 우리는 컴컴한 방안에서 벌레 먹은 부분을 일일이 파내고 먹어야 했다.
-벌레가 와 이리 많노?
-복숭아 벌레 먹으면 미인 된다
-가을에 밤 먹을 때도 그랬다 아이가?
-그렇다고 일부러 먹으라는 거는 아니고, 우짜다 잘못 먹는다 캐도 미인 되니까 손해 날 것은 없다.
-응?
-그러니까 복숭아는 밤에 먹어야 되는 기라.
사실 과수원 집은 겉만 번지르르 했을 뿐 크고 작은 풍파가 끊이지 않았다. 거기에 비하면 가난한 우리는 벌레 먹은 복숭아를 먹을지언정 배짱 하나는 편하게 살았다.
이제는 과수원도 없어지고 00댁도 오래 전에 죽었다.
보리 이삭을 줍던 친구들도 뿔뿔이 흩어지고 그 자리에 생태 공원이 들어 서서 휴일이면 외지인들이 와서 고기를 구워 먹는다.
많은 것이 변했지만 강물만이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한 방식으로 복작거리며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