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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 쭈뻣 서던 밤과 맞장뜨던 여인들

by 분홍소금


그렇게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아주 가깝지는 않은 옛날, 시골에서 밤 중에 삵괭이가 닭을 사냥 하고 동네 청년들이 닭 서리를 해도 경찰에 신고할 생각을 하지 않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그저그런 농촌의 가난한 농가 오두막에 한 아주머니가 살았습니다. 제가 지금 하려는 이야기의 주인공이죠. 그 아주머니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하면 감정이 북받쳐 올라 한참 동안 가슴을 진정 시켜야 합니다. 벌써 눈치채셨겠지만 주인공 아주머니는 바로 나의 어머니입니다.


돈이 귀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먹고 죽을라 해도 없다 처럼 무지막지한 말이 현실일 때가 많았죠. 엄마에겐 천지에 의지의 대상 하나 없었습니다. 동네 여기저기 친척들이 있었지만 가까운 친척일수록 도움이 되기 보다는 갑질하고 업신여기고 호시탐탐 부려 먹으려고 했습니다. 동네 사람들 보다 하나도 나을 것 없는 남편은 가끔은 없느니만 못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죽을 수도 살 수도 없는 날이 많았지만 올망졸망 커 가는 아이들을 보며 망연자실 하거나 우울할 틈이 없었습니다.


엄마는 닭을 키우고 닭이 낳은 달걀을 내다 팔았습니다. 달걀이 귀한 대접을 받았던 때였습니다. 달걀 반찬은 부잣집 혹은 학교 선생님들의 도시락 반찬에나 볼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들이 가정 방문을 오시면 선물로 드리긴 해도 우리 집 암탉이 낳은 달걀을 우리는 먹을 수 없었습니다. 달걀은 먹는 것이 아니라 내다 파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고 우리가 먹을 수 없는 것에 대해 불만 내지는 그 비슷한 감정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암탉을 대량으로 키울 수는 없었습니다. 사료가 있긴 했지만 사람 먹을 것도 못 사던 시절에 닭이 먹을 사료를 살 수는 없었습니다. 아무리 마당이 있는 시골이었지만 마냥 내 놓고 키울 수도 없었지요. 내놓으면 알아서 땅을 파헤쳐서 벌레도 잡아먹고 지렁이도 잡아 먹었지만 인근 밭으로 가서 곡식이나 푸성귀를 뜯어먹으니 관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대개는 아침에 닭장 문을 열어주고 저녁이면 다시 닭장에 가두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많았습니다.


암탉이 낳은 알을 잘 보관했다가 인근 도시에 장이 서면 내다 팔았습니다. 달걀을 팔러 가는 날, 엄마는 꼭두새벽에 일어나서 양동이에 알을 담았습니다. 그 때는 요즘처럼 댤걀을 넣는 케이스가 따로 없었습니다.


돌발 퀴즈입니다. 달걀이 깨지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희한한 방법이 등장합니다. 힌트입니다. 엄마는 달걀이 서로 부딪히지 않게 달걀 사이사이에 무언가를 채웠습니다. 무엇일까요? 네 맞습니다. 보리쌀입니다.


엄마는 대개는 큰어머니와 친척 아지매와 함께 갔습니다. 달걀을 제 값을 받고 팔려면 사람이 많이 몰리는 이른 시간에 도착해야 해서 새벽에 출발했습니다.


도시로 가는 버스를 타려면 재를 하나 넘어야 했습니다. 날이 채 새지 않은 희붐한 새벽에 세 여인은 양동이를 이고 산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저수지를 돌아 바위 사이에 난 길을 따라 한참을 더 올라가서 산 꼭대기에 올라, 산 정상에서 다시 한참을 내려온 다음 드디어 눈 앞에 보이는 신작로에 가서 버스를 잡아 탔습니다.


달걀을 제 때에 팔지 못하면 가끔은 밤 중에 재를 넘어 와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세 여인이 산길 앞에 섰을 때는 벌써 밤이 이슥해지고 사방이 칠흑같이 어두워졌습니다. 이 세상 모든 무시무시한 것들이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서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낮에 다정했던 나무와 풀들마저 어둠의 편이 되어 등을 돌린 시간에 사람의 기척만 들려도 내빼던 토끼와 노루들도 눈에 불을 켜고 여인들을 침입자인 양 살폈습니다.


하지만 여인들은 재를 넘지 않고는 집으로 갈 수 가 없었습니다. 여인들은 호랑이처럼 버티고 선 시커먼 산 앞에서 잠시 움찔했지만 물러설 수 없었습니다. 여인들은 입을 꾹 다물었습니다. 무섭다고 말을 하는 순간 진짜 무서움이 걷잡을 수 없이 덮쳐온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세 사람이 나란히 서서 손을 잡고 갈 수 있으면 좀 나으련만 좁은 산길은 두 사람이 설 만큼의 넓이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여인들은 한 줄로 서서 진행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두 번째 퀴즈입니다. 세 사람이 한 줄로 서면 누가 제일 안 무서울까요? 네 맞습니다. 그나마 가운데 선 사람이 조금 덜 무서운가 봐요.

맨 앞에 선 사람은 제일 먼저 당할까 봐 무섭고, 마지막 사람은 뒤에서 땡길까 봐 무섭다고 합니다.


큰 어머니가 맨 앞에 서서 담배를 피워 물었습니다. 산 짐승들도 느닷없이 맞닥뜨리면 놀라서 공격을 하지만 짐승 편에서 먼저 사람을 인식하면 도망을 가기 마련입니다. 큰어머니의 담뱃불을 의지하고 세 여인은 간신히 재를 넘어 올 수 있었습니다.

한번은 재를 넘지도 않았는데 마지막 한 개비 남은 담뱃불이 꺼졌습니다.담배 불이 꺼지자. 거의 정신을 잃을 정도로 오싹했습니다. 짐승들이 사방에서 눈에 불을 켜고 보고 있었지요. 오금이 저리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습니다. 여인들은 자기들도 모르게 입에서 나오는대로 떠들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무서워서 서로 무슨말을 하는지도 모른채 산에서 내려올 때까지 횡설수설 아무말 대잔치로 위기를 넘겼더랬지요.


-일어나라 수루미(말린 오징어)사왔다.

잠결에 벌떡 일어나 껍데기가 붙어 있는 수루미를 먹었습니다.


-엄마 진짜 갈가리가 흙 던졌어?

-갈가리가 눈에 불을 켜고 흙을 던짔는데, 큰 어매가 담뱃불로 후찼다.(쫓았다.)

-짐승들이 도망가더나

-가는 것도 있고 안 가는 것도 있있지. 갈가리는 우리를 따라 오면서 계속 흙을 파서 던졌어.

-갈가리가 뭐꼬?

-호랑이 사촌. 호랑이 보다 조금 작은 갑데.

-호랑이 사촌? 호랑이는 고양이 과 동물이니까 삵괭이 구만, 삵괭이가 흙을 파서 던지나?

-말도 마라 갈가리도 갈가리지만 뒤에서 뭣이 땡기는 것 같더라

-00이가 자기 엄마는 밤에 와도 겁 안 난다 캤다 하데. 엄마는 겁이 많노?

-그 양반은 간이 덮석만 하다아이가. 그 양반 가죽 밑에는 간밖에 없잉께 무서운 게 없을끼구마.


이튿날 엄마는 달걀을 판 돈으로 사온 아구를 손질했습니다. 아구는 당시엔 사람은 잘 먹지 않는 생선이어서 가격이 쌌습니다. 엄마는 마당에 솥을 걸고는 아구를 푹 고아서 국물에 딩기를 개서 닭들에게 주었습니다. 닭들이 꼭꼬꼬 꼬꼬고고 행복에 겨운 소리를 내며 얼마나 맛나게 먹던지요. 때때로 고둥 껍데기를 찧어서 먹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암탉은 부리까지 반들 반들 윤이 났고 노란 깃털은 황금 빛이 돌면서 기름기가 자르르 흘렀습니다. 암탉이 낳은 달걀은 굵고 껍데기도 단단했습니다. 달걀의 품질이 어땠을지 누구나 짐작이 갈 것입니다.


아구의 배를 가르면 아구가 죽기 전에 먹었던 생선이 나올 때가 있었습니다. 득템이었지요. 아구의 배에서 나온 생선으로 찌개를 해 먹었습니다. 암탉만 잔치를 한 게 아니었습니다. 사람도 잘 먹었습니다.



어른이 되면 겁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어렸을 적에 겁이 많아서 무서움을 많이 탔던 나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어른이라도 짐승들이 눈에 불을 켜고 흙이 날라올 정도로 뒷발을 차며 따라 온다면 그 자리에서 얼어 붙어 버릴 것 같습니다.


암탉이 고양이나 힘센 짐승들로부터 병아리를 지키던 것처럼 우리의 엄마들은 아이들을 위해 못할 것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엄마가 어깨에 졌던 짐을 벗어버리지 않고 감당했기에 오늘 내가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우리가 자식들을 위해서 어떤 희생을 치룬다 해도 생색낼 것이 없습니다. 칠흑 같은 밤을 맞짱 뜬 여인들을 생각하면 입이 저절로 다물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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