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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내기 철의 추억

by 분홍소금


앵두가 익기 시작하고 토끼풀이 소에게 먹히기 좋게 지천으로 깔려 있을 때 시골에서는 모내기가 한창이었다.


외할머니 댁의 앵두나무 이야기나 모내기할 때 먹었던 새참, 논가에서 먹었던 모내기 점심메뉴가 생각이 나서 언니와 통화를 했다. 언니만큼 어렸을 적 이야기를 생생하게 재현해 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언니는 언제나처럼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타임머신처럼 나를 그 때 그 곳으로 데려가 주었다. 거기에서 내가 바라던 모내기음식의 추억뿐만 아니라, 엄마들이 힘든 중에도 얼마나 잘 살아내고 있었는 지를 알수 있었다. 파친코의 김민진 작가가 말한 endurance(살아냄 이라고 나름대로 의역)를 만날 수 있었다.


김민진 작가는 파친코의 주인공을 말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She endured,They endured( 그녀가 견뎌내었고 그들이 견뎌내었다.)를 언급했는데 그말은 우리들의 엄마들에게도 잘 들어맞는다고 생각되었다. 그녀들은 모내기 할 때도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한 방식으로 꿋꿋하게 살아내고 있었다.



나 : 언냐, 모내기철이다. 요새는 안 그렇지만 그 때 농촌에서는 부지깽이라도 일어나서 거들어야 할 만큼 바쁠 때였잖아.



언니 : 모내기 하면 뭐니뭐니해도 모내기음식이다, 새참으로 먹던 국수랑 아지매집에서 해주던 특식, 들깨탕이 대표적인 거라고 할 수 있을거다, 최고였지. 아지매 들깨탕 솜씨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


멸치 육수에다가 감자, 토란대, 토란, 고사리, 호박오가리를 넣고, 마지막에 들깨를 듬뿍 넣어서 만들었었어. 들깨는 쌀 불린것과 섞어서 맷돌에 갈았던 걸꺼야. 그렇게 진하고 고소한 들깨탕은 어디 가서도 못 먹지 싶다.



나 : 게다가 아지매는 들깨 탕을 박 바가지에다 퍼 주었어. 어린 마음에도 박 바가지가 실제로 그런 용도로 쓰이는 게 굉장히 신기했었어. 박 바가지에 담긴 밥은 먹어 봤어도 탕을 먹는 건 그 아지매 집에서 처음 봤거든. 박 바가지에 퍼 주니까 한 맛 더 있었어. 들깨 탕 옆에 쌓아 놓았던 박 바가지가 눈에 선해.


모내기를 할 때 마다 꼭 들깨 탕을 끓여서 일꾼들을 배불리 먹이던 아지매가 평소에 보던 모습이랑 참 다르다고 생각했어.



언니 : 엄마가 하는 말을 들었는데, 그렇게 먹여주고는 해가 져서 어두워질 때까지 부려먹는다고 하더라. 논의 평수에 맞추어서 일꾼을 써야 되는데 아지매는 필요한 일꾼 숫자보다 꼭 한 명을 덜 쓴다 하더라고 웃기제?



나 : 음, 뭐 그래도 대접도 안 해주고 부려먹는 것 보다 낫네.



언니 : 모내기 할 때 진짜 고생 많이 했다. 호야는 영이를 등에 업고 다니고, 나는 규야를 업고 다녔다. 우리 규야는 배꾸리가 작아서 많이 먹지를 못하니까 금방 배가 고파서 계속 울어 재꼈어. 새참 때가 돼야 엄마가 나와서 젖을 먹이는데 애가 자꾸 우니까 새참때가 아닌데도 할 수없이 엄마한테 찾아간다 아이가.


규야를 데꼬가면 엄마도 난처하지. 다른 사람들은 다 일하는데 나오는게 엄마 성격에 얼마나 미안했겠노. 그래도 애가 우니까 나오긴 나왔어. 근데 논두렁으로 나와서는 앉지도 못하고 선채로 젖을 빨리고는 이내 모내기하러 다시 들어갔지.


엄마는 원래 몸도 약하고 먹는 것도 부실하니까 젖도 잘 안나왔어. 규야가 젖을 배부르게 먹지 못했어.

그러니까 돌아서면 또 울어. 배가 고프니까 얘가 내 팔뚝을 빨더라구, 규야가 하도 빨아서 팔뚝 부분이 뽀옜어.



나 : 언니 이야기 들어니까 몽실언니 생각난다.



언니 : 몽실언니에 대겠나마는 내이야기는 논픽션이다. 실화 그 자체지. 계산해 보니까 나는 그 때 8살이고 규야는 여섯 달 쯤 됐어, 규야 본다고 툭하면 결석하고 오후공부는 아예 못 했다.



나 : 언니 계산대로 라면 나는 그때 5살인데 어디 있었을까?




언니 : 니 또래들하고 놀았겠지. 그 때는 동네에 꼬맹이들도 많았으니까



: 어른은 어른들대로 애들은 애들대로 고생바가지였구만




언니 : 특히 우리 엄마는 몸이 약해서 진짜 고생 많이 했다. 모내기 하는 기 얼마나 힘든지 몰라. 나도 많이 해봐서 안다. 허리가 끊어지는 것 같다. 뒷다리도 땡기고 어깨도 아프고. 모내기 하고 나서 그 다음날은 못 일어나겠더라.


그래도 엄마들은 새벽같이 일어나서 밥해 놓고 논에 갔다아이가. 동네 모내기 다 끝내려면 20일에서 한 달 정도 걸리는데 그 동안 하루도 못 쉬고 모를 심었어. 엄마가 저녁에 자면서 끙끙대던 기억이 나.




나 : 젊어서 그렇게 몸이 혹사를 했으니 늙어서 안 플수가 있겠나. 참 엄마도 그렇고 동네 아지매들도 농사일에 골병이 들었지머, 그게 나이가 들어서 몸으로 나타나니까. 허리는 꼬부라지고, 관절도 안 좋고, 잘 걷지고 못하잖아.




언니 : 맞아. 엄마한테, 살아내느라고 정말 수고하셨다, 키워줘서 고맙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도 모자랄 판에, 엄마건강을 위한답시고 제발 운동하시라, 노인정에 가시라, 장에 가서 맛있는 것 사 잡숴라, 카면서 엄마가 못하는 것만 골라서 그걸 왜 안 하시냐고 잔소리만 했다아이가.




: 엄마는 평생 자기를 위해 살아본 적이 없어서 그런걸 못하시는 건데, 그걸 잘 몰랐어. 그걸 빨리 눈치채고 알아서 잘 해드렸어야 했는데 타박만 했다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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