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있음)루이자 메이 올컷의 소설 '작은 아씨들'을 영화화한 여러 버전이 있지만 2019년도 그레타 거윅 감독의 영화는 조 마치(시얼샤 로넌)의 글쓰기에 대한 부분이 많아서 더욱 흥미진진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화려한 캐스팅과, 눈과 마음을 홀리는 여러 장면들, 조와 에이미의 자기 실현과 로맨스, 얘기 거리가 많지만 조 마치의 글쓰기를 중심으로 글쓰기의 동기와 무슨 내용을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 를 생각해 보았다.
마치씨 가족은 애정 어린 부모와 착한 네 자매로 이루어진 화목하기 이를 데 없는 가족이다. 책에서는 마치 부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강인하고 인자한 부인, 그녀에게선 언제든지 무언가 흔쾌히 도와주고 싶어하는 분위기가 흘러 넘쳤다. 강인하고 인자할 뿐만 아니라 이타적이기까지 한 흠잡을 데 없는 엄마임에 틀림없다. 하물며 아버지인 마치씨는 전쟁 중에도 다음과 같은 편지를 쓰는 자상한 남편이자, 딸들을 끔찍이 생각하는 아버지이다.
사랑과 입맞춤을 애들에게 전해주오. 낮에는 그 애들을 생각하고 밤에는 그 애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늘 딸들의 사랑 속에서 크나큰 위안을 얻고 있다고 말해주오.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기라도 하듯이 딸들은 착한 딸이 되고자 자신의 책임을 충실히 다하고 아름답게 자신을 가꾸며 살고 있다.
하지만 완벽한 가정에도 고난이 찾아온다.아버지가 북군에 지원하여 전쟁터에 갔기 때문이다. 책임감이 강한 조 마치는 아버지 대신 궁핍해진 집안을 돌보려고 애쓴다. 얼마 되지 않는 원고료지만 살림에 보태기 위해 글을 써서 출판사에 투고를 하는 속 깊은 딸이다.
영화에서 조가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이 자주 나온다. 부상 당한 아버지에게 가는 엄마를 위해 머리를 잘라서 판 돈으로 기차표 비용을 마련하기도 하고 (예쁜 거라 곤 머리 뿐인데 라고 말하는 에이미에게 조의 대답은 이런다고 나라 안 망해 슬퍼할 거 없어)헴멜씨네 아이들을 돌보다가 성홍열이 전염되어 위독한 동생 베스를 지극 정성으로 돌보기도 한다.
이전에 로리(티모시 샬라메)의 프로포즈를 거절한 것을 후회하며 마침내 로리와 결혼을 결심했을 때, 이미 결혼을 전제로 약혼한 로리가 에이미와 함께 집으로 왔을 때에도 둘을 원망하기는 커녕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조는 런던으로 가서 아이들의 가정교사를 하며 좋은 글을 쓰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런데 베스가 위독하다는 편지를 받고 집으로 돌아갈 결심을 하고, 떠나기 전에 베허교수에게 자신의 글에 대한 평가를 부탁한다. 솔직하게 말해 달라는 조의 말에 베허교수는 소설에 대해 악평을 하게 되고 기분이 상한 조는 글 쓰는 것을 포기하고 만다.
베스에게 달려간 조는 어린 시절 다함께 행복하게 시간을 보냈던 해변(빼어난 해변의 풍경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임) 으로 베스를 데리고 간다.
조는 해변에서 베스에게 시를 읽어준다. 시를 들은 베스는 언니도 언니의 글을 쓰라고 말한다. 조는 베허교수의 악평을 떠올리며 베스에게 이젠 더 이상 글을 쓰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럼 날 위해 써 줘, 언니는 작가잖아, 엄마한테 배운 대로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해
-가족이 투닥 대고 웃고 하는 이야기를 누가 읽겠어? 중요할 것도 없는 이야기야
-그런 글들을 안 쓰니까 안 중요해 보이는 거지,계속 써야 더 중요해지는 거야
베스가 죽고 나서 조는 베스가 말한 대로 네 자매가 살아가는 인생 이야기를 쓴다. 베스와 가족과 나아가 다른 사람을 위해 밤낮 가리지 않고 쓰고 고치고 쓰고 고치기를 반복하며 소설 '작은 아씨들' 을 완성하게 된다.
한 손에는 치렁 치렁한 치마를 붙잡고 한 손에는 전날 저녁에 완성한 원고를 들고 온 세상을 가진 듯, 흥분과 환희가 요동치는 모습으로 달려가는 조 마치, 잠시 후 그녀는 출판사 사장 대쉬우드와 인세에 대해 당당하게 협상을 하고 사장이 제시한 것보다 놓은 인세를 확정한 후에야 자신의 원고를 자랑스럽게 내어 준다.
조의 작품을 이미 읽은 출판사 사장 대쉬우드는 대박을 예감하며 책의 출판을 흔쾌히 수락한다.
영화에서 조는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궁핍한 생활에 도움이 되고자 글쓰기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나 글쓰기에 대한 열심도 베허 교수의 악평으로 한 차례 좌절을 겪게 된다. 조의 재능이 묻히는가 했지만 베스가 유언처럼 조에게 한 말이 조 마치로 하여금 다시 글쓰기를 하게 한다.베스의 죽음이라는 더 큰 고난에 맞닥뜨렸을 때에야 비로소 조는 진정한 작가로 거듭나게 되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조는 이후로 흔들림 없이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을 쓰는 데 매진하게 되었다.
조를 통해서 한 사람의 재능이 어떻게 시작되고 꽃을 피우는 지에 대해 볼 수 있다. 부재와 결핍과 이타적인 마음이 해답이라고나 할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의 스칼렛 오하라(비비안 리)가 탁월한 수완을 발휘하는 사업가로 거듭난 이유도 멜라니와 멜라니가 낳은 아기를 비롯한 딸린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즉 이타적인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바람과 함께 모든 것이 사라졌을 때 숨어 있던 재능이 고개를 내밀었고 이타적인 마음이 싹이 난 재능을 끝도 없이 무럭무럭 키운 것이다.
풍족하고 편안하여 아무 고난이 없을 때는 사람들은 자기의 달란트를 알기 어렵다. 고난을 당했을 때 묻혀있던 달란트가 비로소 발견되고 반짝반짝 닦아져서 많은 사람을 살리는 재능으로 쓰임을 받는 것이다.
소설, '작은 아씨들'은 작가 루이자 메이 올컷의 자전적인 이야기이다. 올컷의 글쓰기가 빛을 발할 수 있었던 것은 전쟁으로 인한 궁핍과 동생의 죽음이라는 고난이 있었기에 가능 한 것이었으리라.
베스가 조에게 남긴 말은 글쓰기가 취미인 나에게도 동기부여가 된다. 내 속에서 또 다른 내가 수시로 "누가 읽겠어? 중요할 것도 없는 이야기잖아." 라고 말할 때 "그런 글들을 안 쓰니까 안 중요해 보이는 거지,계속 써야 더 중요해지는 거야 ."라고 하는 베스의 말을 떠올리고는 '음 , 그러니까 안 쓰니까 뭔지 모르는 거군, 결론은 계속 쓰라는 말이지? ' 하는 마음이 된다.
150여 년 전에 고난 당한 그들이 오늘을 사는 나한테 까지 선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니 그들에게 감사해야 하나. 그들을 있게 한 고난에게 감사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