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맑고 5월의 태양은 형태를 가진 세상 만물을 차별없이 반짝이게 한다. 봄바람이 낄 자리를 잘 알고 있는 현자처럼 앞서 나가면 초록과 연두, 노랑과 하양, 진홍과 보라가 기쁨에 겨워 물결처럼 춤을 춘다. 터질 듯한 생명력이 흘러 넘치는 봄날의 기쁨이 내 마음의 부대자루에도 한 가득 채워져 부풀어 오른다.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생명의 환희로 뒤덮인 계절의 기쁨이 이토록 강렬하게 동일한 기쁨으로 내게 다가 온 적이 있었던가. 별로 기억나지 않는다. 평생 좋은 것을 보아도 좋은 줄 모르고 살았다.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이 성인이 될 때까지 자식들에게 만큼은 우울한 모습을 숨기고 기쁜 모습, 행복한 모습, 좋은 모습을 보이려 애썼지만 내면에서 올라오는 참기쁨은 늘 내 손이 닿지 않는 저 멀리에 맥 없이 나앉아 있었다.낭중지추처럼 삐죽이 튀어나오는 뾰족한 어두움은 내 노력으로 숨길 수 없었다.
서로 다른 별, 금성에서 온 여자와 화성에서 온 남자가 가정을 이룬 첫 날부터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뤘다. 날이 갈수록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과 훨씬 더 많이 싸웠다. 머리 속이 잡생각으로 들끓었다. 내 입으로 나는 우울과 불안의 아이콘이라고 떠들고 다녔다. 내가 우울한 상황들을 겪기 이전에 이미 장착된 것 같은 우울과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 나를 쉽사리 놔 주지 않았다.
피해자 코스프레를 했다. 내가 아무리 돌려 말해도 결론은 '나는 피해자 너는 천인공노할 인간' 알아 들었남? 하지만 겉모습에 고정된 시선을 서로의 내면 깊숙한 곳으로 옮겨 바라 보면서 점점 할 말을 잃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도 할 말을 잃어 버리기 까지 실로 엄청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라는 말에 의심이 들기 시작한 이후로 이 말이 힘을 잃어버리기 까지 꼬박 10년이 걸렸다.
옳고 그름이 막을 내리는가 싶었는데 뒤이어 끝없이 밀려오는 새로운 적들과 새로운 전쟁을 치뤄야 했다. 그리고 그 전쟁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아마도.
독일 작가 카롤린 엠케는 저서 ‘혐오 사회’에서 “미움 받는 존재는 모호하다. 정확한 것은 온전히 미워하기 쉽지 않다” 라고 했다.
'나는 피해자 너는 가해자' 라는 2분법에서 벗어나 나를 객관적으로 살피고 상대방의 입장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연구하고 연구할수록 상대방의 문제라기 보다 오히려 내 문제에 가까웠다. '나를 아는 만큼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고 했는데 그 말은 언제나 참이다. 나를 조금씩 알게 되면서 상대방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었다. 내 문제에서 벗어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나의 시야와 지경도 차츰 넓어졌다. 상대방을 결코 미워할 수 없었다.
끔찍 징글 지겨웠지만 나를 철들게 하고 내 인생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사건들과 사람들에 대해 써내려가보기로 했다.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고난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감히 역경을 통해 깨달음과 성장을 이루었다고 자부한다.
연재를 하는 동안 나의 상처가 닦고 문질러져서 반짝이기를, 그리하여 상처(scar)가 별(star)이 되어 힘든 그 한 사람을 비추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