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로를 따라 걷다보면 이름을 붙이고 싶은 장소가 있습니다. 빨간머리 앤처럼요. 빨간머리 앤은 우여곡절을 잠시 겪은 뒤 매튜아저씨의 마차를 타고 가다가 길 양 옆으로 활짝 핀 벚꽃을 보며 '새하얀 환회의 길'이라고 부릅니다. 초록 지붕 집을 향해 가면서 반짝이는 호수, 연인의 길 등 풍경에 잘 어울리는 이름을 계속해 지어주지요.
'일부러 빨간머리 앤처럼 해볼까' 했던 것은 아닌데 이름을 지어놓고 보니 길을 따라 가며 이름을 짓던 앤이 생각났습니다.
등산로에는 3곳의 오르막이 있습니다. 첫 번째 오르막 정상에 작은 공터가 있습니다. 거기에서 숨을 고르며 하늘을 올려다 봅니다. 등산로 중에서 하늘이 가장 잘 보이는 곳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파란 하늘보다는 구름을 보려고 고개를 뒤로 젖히는 것이지요. 이곳에서 보이는 구름은 천진난만한 아이 같습니다. 장난꾸러기 구름이 가장 좋아하는 놀이는 모양바꾸기 놀이입니다. 이때 구름과 바람은 쿵짝이 잘 맞습니다. 구름이나 바람이나 지루함을 못견디는 아이처럼 마음 내키는 대로 즐겁고 명랑하게 놉니다. 물방울이 모여서 만들어진 구름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솜털같이 가벼운 모습입니다.
그래서 '구름 놀이터'입니다. 나뭇잎이 다 떨어진 계절이 오면 구름의 장난끼는 절정에 다다릅니다. 가지만 남은 나무에 동그랗게 자리를 잡고서 구름 나무로 깜짝 변신합니다. 가지를 빙 둘러싸고는 시치미를 떼고 있는 구름나무를 보면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번집니다. 나 어디있게요? 날 찾아 보시라니까요? 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그런 날은 행복합니다. 구름나무를 카메라에 담는 행복, 사무실에서 사진을 쳐다보며 또 행복, 공유하고 자랑하면서 행복, 구름나무로 인해 몇 번이고 몇 번이고 행복하지요.
구름정원을 지나면 등산로에서 가장 가파른 내리막길입니다. 그곳을 지나가면 작은 골짜기가 울리도록 큰 소리로 노래하는 새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이름하여 큰 새가 노래하는 곳이지요. 등산로에서 수목이 가장 울창한 곳이기도 합니다. 길 양 옆으로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곳곳에 커다랗게 자리 잡고 있는데 그 주위로 작은 나무와 잡목이 우거져 있습니다. 늦은 봄과 여름에 이 작은 골짜기에서 들려오는 이름모를 새들의 지저귐이 얼마나 반가운지 모릅니다. 이름을 알 수 있는 새는 오직 뻐꾸기 뿐입니다. 뻐꾹뻐꾹 하는 뻐꾸기의 거칠 것 없는 고음이 그렇게 맑고 투명하고 고울 수가 없습니다. 남의 둥지에 새끼를 낳고는 양육의 수고 같은 것은 아랑곳하지 않는 뻔뻔한 새처럼 보이지만 우는 소리를 들으면 모든 게 용서가 됩니다. 밥솥에서 취사 완료 알람음으로 누가 뻐꾸기 소리로 정했는지 모르겠지만 그 양반 참 혜안일세, 합니다.
초여름날 진한 밤꽃 냄새가 코를 찌르며 그 냄새를 좀 아는 사람들을 아련하게 만드는 곳도 바로 이곳입니다. 밤꽃 향기가 나기 시작하면 비가 오지 않을 때는 냄새가 이주일 정도 지속됩니다. '밤꽃 냄새가 진동을 하면 과부와 홀애비는 밤꽃 아래로 지나가면 안된다.' 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느낌이 팍팍 온답니다.
어디선가 목수가 나무와 나무에 상반되는 요철을 맞추느라 망치로 박는 소리가 들린다면 그건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는 소리입니다. 사방이 고요한 겨울 한 낮에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는 소리가 울려퍼지면 길을 걷던 저 뿐아니라 온 사방이 귀를 쫑긋 기울인답니다. 바람도 가던 길을 멈추고 구름도 장난끼를 잠시 접습니다. 한마음으로 겨울 숲 속 최고의 사냥꾼을 응원하는 것이지요.
가을 추석 무렵이면 초여름에 저 같은 사람을 아련하게 만들었던 밤꽃이 알밤이 됩니다. 바람이 불면 투둑하고 떨어지는 알밤을 가장 먼저 반기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맞습니다. 동네 어르신들입니다. 어느 시간대에 가더라도 배낭을 메고 알밤을 줍는 어르신 한두 명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저도 이번 가을에 알밤을 주우려고 하다가 미끄러진 적이 있습니다. 하마터면 발목을 접지를 뻔 했습니다. 식겁을 한 후에는 '다시는 밤 안 줍는다. 다람쥐도 먹고 살아야지.' 합니다만 여우의 신포도 변명에 가깝습니다.
내리막길이 황토길이라고 섣불리 맨발 걷기에 나섰다가는 무릎에 부담이 오는 것을 금방 느낄 수 있습니다. 관절에는 무리가 갈지 모르지만 새가 노래하는 곳은 눈과 귀와 코가 가장 즐거운 곳입니다.
새가 노래하는 곳을 빠져 나오면 시야가 탁 트입니다. 타라의 언덕에 도착했다는 신호입니다.
언제나 바람이 가장 시원하게 때로 세차게 부는 곳이 있는데 바로 타라의 언덕입니다. 거기에서 바람을 맞으면 온갖 잡생각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는 듯합니다. 그래서 '타라의 언덕'이라고 지었습니다. 스칼렛 오하라가 사랑하는 레트 버틀렛이 떠났지만 타라의 농장을 바라보며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거야.(원제는 내일은 또 다른 내일('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이었다. )하며 자신을 추스를 때 세찬 바람이 그녀의 머리카라과 치마 위에 불었지요.
등산로의 막바지에 있는 타라의 언덕에는 발 앞에 있는 무덤 저 너머로 사람들이 모여사는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삶과 죽음이 한 눈에 들어오지요. 그곳에서 땀을 바람으로 말리며 '내가 지금 무덤 안에 누워 있는 게 아니잖아, 좀 더 힘을 내 봐야지, 한 번 더 해 보는 거야.' 하는 마음이 저절로 솟아납니다. 다시 시작할 마음이 모아지는 '타라의 언덕'입니다.
등산로를 걸으며 여전한 모습으로 계절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자연을 봅니다. 하늘과 태양과 바람과 구름과 새와 나무 덕분에 쉼을 얻고 심신이 건강해지지요. 하지만 그러한 자연이 나 한 사람을 기쁘게 해 주기 위해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니지요. 여전한 방식으로 그 자리에서 각자가 할 일을 한 것 뿐인데 제가 많은 것을 받아 누리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등산을 할 때마다 여전한 방식으로 내게 맡겨진 삶을 묵묵하게 살면 되겠구나, 그러면 누군가는 나로 인해 받는 것이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 듭니다.
딱따구리 통신
어제 오늘 폭설이 내렸습니다. 산에 가지 못했지만 눈 꽃 구경을 실컷 했습니다. 눈덮인 나무가 벚꽃보다 더 화려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화려함이 가지를 부러뜨립니다. 보기엔 멋지지만 나무 입장에서 무겁고 차가운 고역덩어리입니다. 벗어 던지고 싶겠만 나무가 스스로 털어 낼 수는 없지요. 다행히도 아침이 되어 해가 뜨자마자 순식간에 녹아 내리더군요.
출근을 하다가 아들과 통화를 했습니다.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습니다.
아들에게 완벽하려고 하지 말고 기준을 낮추라고 했습니다. (높은 기준, 말하자면 무거운 짐같은 눈을 털어 내라구요)
눈을 이고 고통스러울 나무를 보며 아들의 기준이 아니라 엄마기준이 자기도 모르게 눈처럼 아들을 짓누르고 있지는 않을까 하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들에게 다시 톡을 했습니다.
너한테 기준을 낮추라고 했는데 말해놓고 보니 너가 실은 엄마의 기준에 꽂혀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엄마의 기대에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하니까 스트레스를 받는구나 했어.
너의 평생을 통틀어 엄마의 기준이 짐이 되었다면 미안하다, 이제부터라도 니 맘대로 하렴!
나를 짓누르는 눈 같은 짐들이 태양을 만나 녹아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따뜻한 위로, 진심어린 사과도 좋겠지만 때론 나를 직면하게 하는 누군가의 돌직구를 되새기며 '옳소이다' 한다면 이 또한 눈을 녹이는 태양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