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형 등산입니다.
식사 시간에 식사를 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산책을 하지요. 산책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등산에 가깝습니다. 초입에 작은 공원이 있지만 공원을 지나쳐서 산길로 난 길로 곧장 접어 들어 처음부터 끝까지 산길을 걷기 때문이지요.
산길은 오르막과 내리막, 평지가 적절히 섞여 있습니다. 평지가 절반 쯤이고 나머지는 오르막 3군데 내리막 3군데로 이어져 있어서 운동코스로 제격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여름에는 땀을 비오듯 흘려야 하고 봄 가을에도 땀을 덜 흘리려면 반팔을 입어햐 합니다. 겨울에도 가벼운 실내복 차림으로 나서야 오르막을 올라 정상에서 겉옷을 벗어 허리에 매고 치렁치렁하게 다녀야 하는 불편함을 면할 수 있습니다.
산길을 걷기 시작한 지 벌써 2년 여가 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사무실 뒤편에 이렇게 훌륭한 등산로가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애초에 등산을 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등산보다는 헬스에 꽂혀 있었으니까요.
"나이가 들수록 근육운동을 해야 한다, 자세가 꽂꽂해야 젊어보인다, 그러려면 헬스를 해서 등근육을 키워야 한다. 장딴지와 허벅지에 근육이 하나도 없네." 이런 말을 들으며 헬스가 답이다 했지요. 사무실 근처에 있는 헬스를 등록하고 타이즈와 타이즈 위에 입는 반바지, 신발 등을 구비한 후 운동을 시작했지만 헬스가 제게는 답이 되지 못했습니다.
첫째는 헬스를 위한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습니다. 시간상 출근 전에 해야 하는데 운동을 하는 동안 출근시간에 늦을까봐 조마조마해서 시계를 보느라 운동에 집중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루했습니다. 어찌저찌해서 계속 한다고 해도 도무지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았습니다. 혹자는 계속 하다보면 중독이 되어 도파민이 팍팍 분출되면서 엄청 재미있다고 하는데 제게는 그런 날이 올 것 같지 않았습니다. 오히려'너 운동 안하면 죽는다.'해야 비로소 하게 되는게 운동이라고 하더니 딱 맞네 했지요. 시작하자마자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억지스럽기는 했지만 '아직은 너는 나랑 도무지 아니다.' 라는 생각에 어영부영하다보니 한 달이 슈욱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래도 운동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근무지 특성상 교대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오후 근무자라서 보통 12시에서 저녁10시까지 일을 하는데 저녁 6시가 넘어가면 가만히 앉아 있어도 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밤 시간을 버티려면 무엇보다도 체력이 필요했습니다. 밤 시간을 견딜 건강이 시급했지요. 먹고 살기 위해서는 운동을 해야 했습니다. 생계형 운동이라고나 할까요?
헬스가 안되니 좀 더 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을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저녁 밥을 먹고 나서 매일 학교 운동장을 20바퀴를 돌았더니 건강이 좋아지고 있다고 하는 언니의 말에 귀가 솔깃했습니다. 걸을 만한 곳을 찾다가 공원에 가게 되었고 그 때 발견한 것이 지금 다니는 등산로입니다. 등산로를 처음 봤을 때 목마른 사슴이 샘물을 발견한 것처럼 기뻤습니다. 이럴 때 쓰라고 '유레카'라는 말이 있구나 싶었지요.
봄에 입사하고 가을에 시작한 등산이 벌써 3번째 가을을 맞았습니다. 처음에는 가기 싫은 날도 많았습니다. '날이 꾸무리한 게 비가 올지도 몰라, 아침부터 기분이 꿀꿀한 게 등산할 기분이 아냐, 밥을 먹는데 시간을 너무 허비했잖아 등산 못감,' 등 핑계를 대던 것이 이듬해 봄을 맞으면서는 출근할 때부터 등산할 생각에 들떴습니다.
처음에는 식사를 한 후 35분 정도를 걸었지만 지금은 밥을 먹지 않고 55분을 걷습니다. 심한 비가 오거나 폭설이 오는 날을 제외하고는 봄 여름 가을 겨울 한결 같이 걷습니다. 우산을 받쳐들고 갈 때도 있고 손에 우산을 들고 갈 때도 있지만 딱 한 번을 제외하고는 갑작스런 비나 눈으로 봉변을 당한 일은 없었습니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데 우산을 깜박하고 가져가지 않아 하산 무렵 쏟아진 비를 피하느라 공원 쉼터에서 한참을 기다린 적은 있었습니다. 그 날 이후로는 우산을 더 잘 챙겨 다니게 되었습니다.
매번 똑같은 길을 걷는데도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흙과 나무와 하늘과 바람이 늘 그 자리에 여전한 모습으로 있는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자세히 들여다 보지 않아도 자연이 만들어 내는 변화는 가히 경이롭습니다. 새들의 노랫소리에 딱따구리가 딱딱딱딱 흥을 돋우면 사무실에서 생긴 신경쓰이던 소소한 긁힘들이 스르르륵 아물지요.
등산하는 시간은 자연이 주는 선물에 둘러싸이는 시간입니다. 자연이 준 선물은 하나도 버릴 것이 없지요. 게다가 얼마나 풍성한지 모릅니다. 산길을 걸으며 얻은 체력과 맑은 정신은 많은 선물 중 하나일 뿐입니다. 이렇게 쌓인 선물을 '이토록 친밀한 등산' 으로 연재합니다. 자연이 준 선물을 독자님들과 함께 누렸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