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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홍소금 Dec 05. 2024

소나무야 소나무야

지난주에 폭설이 와서 등산을 하지 못했다. 주말을 지나고 와서 식사시간에 걱정반 설렘반으로 올라갔다. 산에는 눈이 더디 녹을 것 같고 그러면 길이 질어서 걷기가 힘들지 않을까 했다. 눈이 곳곳에 쌓여 있어 진구럭(질퍽한 길, 사투리)일거라는 우려와는 달리 걷기에 불편이 없었다. 내리막길과 오르막길이 미끄러울까봐 걱정이 더 되었었는데 경사진 길은 오히려 물기가 빠지고 굳어 있었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평지길이 질었는데 눈 녹은 물이 고여 있어서 그런 것 같았다. 약간 질퍽해도 길옆에 낙엽이 쌓여 있어 낙엽을 밟으면서 조심조심 지나가면 그만이었다. 사실은 길이 걸을만한가 그렇지 않은가 보다 더 마음을 심란하게 한 것은 폭설에 부러져서 널부러져 있는 커다란 소나무 가지였다. 



등산로는 참나무류의 활엽수가 주를 이루면서 중간중간에 소나무가 자리 하고 있는데 그 소나무들의 피해가 심각했다. 작지도 않은 소나무 가지가 부러진 채 속살을 드러내고 길을 막고 있었다. 장정이 올라가 발을 굴러도 절대로 부러질 것 같지 않아 보이던 우람한 가지 였는데 속절없이 꺾여져 땅 위에 널부러져 있었다. 습설이라고 하더니 황소나 코끼리처럼 대단했을 무게를 상상하며 자연의 위력을 실감했다.  



소나무는 사철 푸르러서 관상목으로도 훌륭하지만 쓰임새가 많은 고마운 나무이다. 봄에 어린 잎을 따서 발효시킨 효소에는 각종 효능이 들어 있다고 한다. 송진이나 송홧가루도 가공하여 약용이나 다식을 만들때 유용하게 쓰인다. 몇 년전에 고향에 갔다가 솔잎 효소가 당뇨에 좋다고 해서 언니 오빠들을 따라 어린 잎을 따서 설탕에 버무려 다용도 실에 놔 둔 적이 있다. 그런데 효소를 만들어 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다가 이사할 때 솔잎효소 유리병을 발견하고 너무 오래되어 꺼림직해서 버리는 바람에 먹어 보지는 못했지만 언니가 솔잎을 잘게 썰어 만들어 준 효소는 먹을 때마다 건강해 지는 느낌이 들곤 했다. 



사실 나에겐 소나무는 솔잎 효소나 송홧가루 보다는 땔감으로 훨씬 친근하다. 등산길에 마구 떨어져 있는 솔잎들을 보면 불쏘시개와 땔감 생각이 절로 난다. 농사꾼이자 나무꾼이셨던 친정 아버지가 보았더라면 지금은 땔감 같은 것이 필요치 않은 시대라는 것도 잊어버리고 "고것, 참!" 하며 입맛을 다셨을 것이다. 



고향에서는 낙엽이 되어 떨어진 소나무 잎을 '갈비'라고 불렀다. 겨울 방학이 되면 짚으로 꼰 새끼줄과 갈고리를 갖고 산에 올라가 갈비를 긁어서 차곡차고 다져서 나뭇짐을 만들었다. 한 짐씩 묶은 갈비를 이고지고 와서는 집 뒤란에 차곡차곡 쌓아 놓고 불쏘시개나 땔감으로 썼다. 아궁이에 갈비를 넣고 태워서 밥을 짓고 국을 끓였다. 연기도 없이 발겋게 타면서 내어 뿜던 뜨끈한 온기로 몸뚱이 앞면이 빠르게 뜨거워지고 얼굴이 열기로 달아 올랐다. 



소나무가지는 청솔가지라고 했는데 청솔가지는 주로 낫으로 잘라 나뭇짐을 꾸려서 똑같이 뒤란에 차곡차곡 쟁여 놓았다가 솔잎과 가지가 마르면 땔감으로 썼다.  간혹 땔감이 떨어 졌을 때는 젖은 청솔가지를 그대로 아궁이에 밀어 넣고 태우기도 했다. 청솔가지의 연기가 어찌나 맵든지 눈물콧물을 닦으면서 애를 먹었지만 불이 한 번 붙으며 무섭게 탔다. 그때는 그게 신기했지만 젖은 가지가 탈 수 있었던 건 소나무 가지에 붙어 있는 송진 때문이었을 것이다.  



소나무의 큰 가지는 말라서 떨어졌거나 부러진 것을 날라다가 톱으로 베고 도끼로 쪼개어 장작을 만들었다. 활활 타던 소나무 장작불에 언 손과 발을 녹였다.  장멍이라고 해야 하나. 바라보고만 있어도 따뜻함과 노곤함이 몰려왔다. 활활 타던 장작불꽃 사그라들면 고등어나 갈치 같은 제철 생선을 구웠다. 숯불구이로 먹던 생선의 짭짤하고 부들쫄깃하고 달달하던 그 맛을 어찌 잊으랴. 숯불이 꺼질락말락 하면 재가 되기 전에 고구마나 밤을 묻어 두었다. 간식이 귀하던 시절에 겉이 반쯤 타들어간 군고구마나 군밤을 까먹고는 기분좋게 잠자리에 들곤 했다.   



크리스마스에는 솔가지를 꺾어다가 가지 위에 솜으로 장식을 했다. 그때는 집집마다 솜이 흔했다. 가을에 목화밭에서 수확한 면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가 무엇인지도 몰랐지만 솔방울이 붙어 있는 솔가지에 눈이 온 모습을 예쁘게 만들려고 애쓰며 노는 것도 색다른 재미가 있었다.  



땔감, 건강식품, 약재, 놀잇감 등, 뭐하나 버릴 것 없는 소나무인데 습설에 피해가 심각했다. 왜 유독 소나무 가지가 많이 부러졌을까? 궁금해서 검색을 해 보았지만 이렇다할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아쉬웠지만 현장에서 내 눈으로 살펴보는 수 밖에 없었다. 폭설에서 부러지지 않고 꿋꿋하게 남아 있는 주위의 활엽수와 소나무를 비교해 보았다. 먼저 눈에 띈 것은 참나무 같은 활엽수의 가지였다. 활엽수의 가지들은 이런 일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지혜롭게 만세를 부르듯이 가지가 위로 뻗어 있었다. 그러니 나뭇가지의 경사가 가팔라서 눈이 쌓일 수가 없는 거였다. 게다가 나뭇잎은 다 떨어졌고 남아 있다 하더라도 가느다란 가지 끝에 달랑달랑 위태롭게 달려 있어 눈이 쌓일 것 같지 않았다. 



반면에 소나무는 팔로 '옆으로 나란히'를 한 것처럼 가로로 뻗은 가지가 많았다.  위로 올라갈수록 활엽수 처럼 나무 둥치와 각도를 좁히며 뻗어 있긴 했지만 이파리가 없는 활엽수와는 달리 푸른 잎이 빽빽히 달려 있어 눈이 쌓이기 좋은 구조였다.  

굵은 가지가 가로로 뻗어 있는 데다가 잎이 빽빽이 달려 있으니 눈이 쌓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습설로 무거웠을 눈이 한꺼번 내려 앉아서 버티지 못하고 그만 부러지고 말았을 소나무, 

길을 막고 누워 있는 소나무 가지를 보며 내놓지 못한 속엣말을 해 보았다. 



소나무야 소나무야, 사철 푸른 소나무야

따스한 온기와 따뜻한 음식을 위해 

갈비와 장작이 되어주고 

크리스마스엔 솔방울이 달린 채 멋진 트리가 되어 주었지. 

크리스마스가 뭔지도 몰랐지만 솜을 얹어 장식을 하며 

펄펄 눈이 와서 소복소복 눈이 쌓였네

쉴새 없이 종알거리고 놀았단다. 

휘황찬란한 그 어떤 트리보다도 더 푸근한 행복을 안겨 주었던 소나무야,

모질지 못하고 약삭빠르지 못한 너의 부드러움과 넉넉함이 

고운 떡가루 모습이지만 속에는 물기를 잔뜩 머금은

앙큼한 습설의 심술에 그만 부러지고 말았구나 

소나무야 소나무야, 고마운 소나무야

몸통에서 떨어져 나온 채 낙엽이 쌓인 땅에 누워 무슨 생각을 하니? 

너가 붙어 있었던  커다란 몸통과 가지를 한 눈에 쳐다보는 기분이 어떠니? 

남겨진 몸통과 가지가 너의 뒤를 이어 제 몫을 감당할 거라는 걸 아니?

이제 땅 위에 누워 있지만 또 다른 쓰임을 위해 

나아가는 새로운 여정을 품었으니 부디 편안히 잠들었으면 좋겠구나. 




딱따구리 통신!


1. 하반기 친절 우수 직원으로 뽑혔습니다. 

친절우수 직원으로 뽑은 이유 중에 있는 내용 중 하나를 그대로 복붙해 보았습니다 

'제가 추첨 떨어져셔 속상해서 두 시간을 하소연을 했는데 다 들어주면서 내마음 같이 속상해 해좄어요 좀 감동이 도이 칭찬합니다 정말 속이 넓고 친철해요.'

그 회원이 기억이 났습니다. 회원의 남편분이 먼저 전화를 하셔서 아내의 유일한 낙이 아쿠아로빅인데 떨어뜨리면 어떡하냐고? 아내가 몸져 누웠는데 이일을 어떡하면 좋냐고 하셨지요. 그리고 남편과 아내 두 분이서 번갈아 가며 통화를 했습니다. 언제 들어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 제일 많이 반복해서 물었습니다. 저도 처음에 같이 안타까워 하다가 나중에는 슬슬 짜증이 났습니다. (추첨이 원래 그런거지, 나보고 어쩌라고)하는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그래도 그렇게 대놓고 말 할 수 없어서 그냥 같이 기다리자고 했습니다. 

길고긴 통화로 마음이 풀렸는지 알았다고 하면서 그제야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분은 11월에 순서가 되어 들어왔습니다. 7월에 추첨하고 4개월을 기다렸네요.


2. 김장을 했습니다.

20킬로 5박스를 해서 언니집과 나눴습니다. 조카가 이번 배추 절임 상태가 어떠냐고 해서 밭으로 갈 정도는 아니고 서긴 섰는데 그 자리에 주저 앉아서 일어나지 못한다고 했더니 아주 이상적으로 절여 졌다네요. 배추가 역대급으로 맛있다고 했더니 이모는 매년 그렇게 말했다고 하면서 이모말에서 30퍼센트는 차감하고 들어야 한대요. 연예인 이야기를 했는데 그래도 인구절벽시대에 아기를 낳았으니 애국자라고 했더니 이모랑 대화하면 어디로 튈지 모른다고 하면서 웃었습니다. 


3. 자소서를 썼습니다.

자소서를 겨우 써서 메일로 보냈습니다. 어찌나 쓰기가 싫은지 구직이고 뭐고 다 때려치고 싶다는 마음이 목구멍까지 올라 왔습니다. 막상 쓰기 시작하니 이외로 술술 써져서 '휴' 하고 한 시름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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