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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재 미첼 MJ Mitchell Mar 16. 2022

시 詩 - 지구 궤도
       -여기는 겨울

민재미첼

지구궤도


민재미첼


빈 소주병에 푸념을 담아 쏘아 올렸어

빠리 노래방과 마포 갈비집 사이 좁은 골목

라디오를 듣던 남편이

궁수자리에서 신호가 왔다고 했지

그는 어쩌면 더 먼 곳에서 왔는지 몰라

우주를 향한 그리움이 골목보다 더 길지도

빨강 맨드라미가 말라가는 동안 화분위로

박살난 푸념들이 비료가 되고 독이 되고

노란 가로등이 생각을 보글보글 끓이는 동안

피곤에 지쳐 엎드린 안개는 꼼짝도 않고

초라한 일상으로 잇대어 만든 담장을 따라

끈질기게 따라오는 고문 같은 장미넝쿨

전기밥솥의 신호음조차 해독하지 못하는

남편보다 먼저 궁수자리로 가버릴까

차라리 지구가 궤도를 이탈하길 기다려볼까



여기는 겨울


민재미첼


눈은 그치지 않고 내렸다

두툼한 양말 속 가지런한 발가락들이

그리운 나지막한 산맥을 닮았다

봄이 왔을까 그곳 남쪽은

골짜기 아래 낮은 담장

버섯처럼 일가를 이룬

크고 작은 항아리들 감싸고

양지쪽으로 키 작은 민들레

노랗게 웃고 있을는지

분홍 봄 햇살 내다보던 금정사 부처님

시린 눈 지그시 감고 앉아 계실는지

여기는 아직 흰 눈이 쌓여 종내는

파랗게 깊은 겨울

시릴수록 그리움이 또렷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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