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욕심이 많은 아이였다.
전 과목에서 한 문제만 틀려도 울어 재끼는 재수 없는 아이.
내게 99점은 실패작이었고 2등은 첫 번째 꼴등이었다. 아버지는 늘 말하셨다.
“적당히 해라.”
그렇지만, 내 사전에 적당히는 없었다.
있었다 하더라도 찢어버렸을 것이다.
호주로 떠날 때, 나는 ‘완벽주의’를 캐리어 깊숙이 눌러 담았다. 비행기 짐에는 무게 제한이 있었지만, 나의 강박에는 무게 제한이 없었다.
나의 완벽주의는 대학에 입학한 후에도 여전했다. 눈을 뜨자마자 에너지 드링크 한 캔을 벌컥벌컥 마시고 시험 범위를 통째로 외우기 시작했다. 그래서 대학 시절 내 별명도 몬스터였다.
교과서의 모든 문장, 심지어 도표와 참고사진의 위치까지 다 씹어먹었다. 혹시라도 시험에 나올 수 있으니까. 내 책상 위에는 늘 빈 캔이 쌓였고, 룸메이트는 그 상태를 ‘몬스터의 무덤’이라 불렀다. 하루 세 캔은 기본이었으니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주변인들은 “그렇게까지 안 해도 돼”라며 나를 걱정했지만, 나는 속으로 그들을 안쓰럽게 여겼다. 성공이란 99% 노력과 1% 몬스터로 이루어진다는 걸 왜 모를까 하고.
그렇게 잠을 줄인 대가는 컸다. 최장 무수면 기록 4일.
나는 눈 밑의 다크서클을 ‘성공의 훈장’으로 여겼다. 지금 생각하면 참 무모한 훈장이었다.
몸의 반란, 빨간색 도트 아트
그때의 나는 정신력으로 몸을 컨트롤할 수 있다고 믿었다. 내게 몸은 뇌를 운반하는 택시일 뿐이었다. 택시 기사가 파업을 선언하는 날이 올진 몰랐다.
샤워 도중 팔에 생긴 빨간 점을 발견했는데,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점이 팔에서 다리, 다리에서 등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더 심각한 증상은 따로 있었다. 매일 아침 구토를 하고 어지럼증은 디폴트.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그래도 나는 책상 앞을 떠나지 않았다. 그것이 내가 사는 방식이었다.
세탁기 속 지구, 길바닥 첫 무대
시간이 지나면서 몸 상태는 점점 최악으로 치달았다. 그럼에도 중요한 수업을 놓칠 수 없었던 나는 매일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캠퍼스로 향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세상이 세탁기처럼 돌기 시작했다. 지구가 자전 속도를 세 배쯤 높인 것 같았다. 그렇게 내 의식도 TV가 꺼지듯 끊겨 버렸다.
눈을 떴을 때 나는 길바닥에 누워 있었다. 입버릇처럼 “하늘도 보고 살아야지”라고는 했지만, 이런 식은 원하지 않았다. 웅성이는 사람들, 다가오는 구급차 소리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입안에는 피맛이 돌았다. 쓰러지면서 입술이 터진 모양이었다. 빨간 반점과 부은 입술. 나는 완전체 딸기가 되었고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몸이 보내는 경고를 얼마나 무시했는지를.
Rash Girl의 등장
병원에서 보낸 시간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했다.
혈액검사부터 CT, MRI까지. 의사와 간호사들은 병실 앞에서 모여 나를 두고 토론을 하고는 했다. 그리고 나는 듣고야 말았다. 그들이 나를 “Rash Girl”이라고 부르는 것을.
화가 나지는 않았다. 슈퍼히어로 같은 별명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가늠이 안 될 뿐이었다.
전략적 후퇴, 한국행
죽을까 두려웠던 나는 결국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인천공항에 발을 딛는 순간, 안도감과 자괴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이게 도망인지 전략적 후퇴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한국에서 병원에 입원한 뒤에야 병명이 밝혀졌다. ‘자반증’. 원인은 극도의 스트레스와 과로.
아, 내 몸이 파업을 선언한 거였구나. 나는 참 나쁜 사장이었다.
빨간색 성적표
몸이 조금 회복된 나는 다시 호주로 돌아갔다. 그리고 FAIL로 도배된 성적표를 받았다. 진단서를 제출했는데 도대체 왜? 병원에서 내 이름을 잘못 표기해 병가가 무단결석 처리된 것이었다.
좌절한 나는 자퇴서를 냈다.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할 수 있는 말은 한마디뿐이었다.
“죄송해요.”.
이후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퀸즈랜드를 떠나 멜버른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눈을 낮추어 남을 것인가.
나는 결국 정든 도시, 퀸즈랜드에 남기로 했다.
이 사건으로 나는 인생 첫 실패를 맛봤다. 완벽주의는 허무한 결과를 가져다주었고 나는 ‘실패한 완벽주의자’가 됐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완벽주의를 고수하고 에너지 드링크와의 관계를 끊지 못하고 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으니까. 진정한 사랑은 한 번의 실패로 끝나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