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에서 하롱베이로 이동하는 동안 들판에는 물이 풍부한 수로가 도로를 따라 길게 이어졌다. 평평한 들판이라 그런지 물의 흐름이 느껴지지 아니하였고 어릴 적 고동을 잡았던 고향 마을의 도랑처럼 시원함도 전해지지 아니하였다.
이튿날 아침, 유람선에서 만난 하롱베이의 바닷물은 득량만처럼 파도가 찰랑거리는 바다가 아니라 찻잔의 물처럼 고요했었다. 우리나라의 해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파래 감태 김 미역 다시마 등 해조류도 없었다. 모래사장에서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도 있었지만, 백사장에서 기어 다니는 게, 갯벌에서 사는 꼬막이나 바지락 등의 조개류도 불 수 없었고, 회진 앞바다에서 팔딱팔딱 뛰는 옥돔과 같은 어류도 없었다. 관광객이 던져주는 과자를 낚아채려고 묘기 비행을 하는 갈매기도 한 마리 볼 수 없었다. 하롱베이의 바닷물은 생물이 번성하는 물이 아니었다.
- 하늘에서 내려다본 물
같은 달 31일 해질 무렵, 캄보디아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베트남의 하노이 노이바이 공항에서 출발한 여객기는 라오스 상공을 지나 캄보디아의 씨엠립 공항을 향해 거의 남쪽 방향으로 날아간다.
비행기의 차창으로 바깥 풍경이 보인다. 하얀 구름이 쫘악 깔려 있고 그 위로 태양이 빛난다. 간혹 구름 사이사이로 지표면이 보일 때도 있었는데, 그곳이 베트남인지 라오스인지 아니면 캄보디아인지 나로서는 분간할 수 없다. 다만 강줄기가 구불구불 길게 뻗어 있고, 서쪽으로 뉘엿뉘엿 넘어가는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직사각형 모양의 고인 물이 군데군데 널려 있는 것으로 보아 물이 풍부한 지역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캄보디아의 물
똔레삽 호수를 관광하는 날, 이동하는 버스에서 바라본 캄보디아의 들판도 베트남처럼 논이 저 멀리까지 이어진 대지(大地)였다.
버스가 지나가는 도로변에는 집들이 도열하듯 서 있다. 그 집들 사이사이로 보이는 지면은 도로 면에 비해 1~2m 정도 낮았고, 거기에는 물이 고여 있었다. 집은 각목으로 기둥을 세우고 나무판을 이용하여 바닥을 깔고 벽을 막고 지붕을 덮은 캄보디아 특유의 서민 가옥이다. 물이 고인 땅바닥 위에 격자 모양으로 엮은 나무 기둥이 이들 가옥을 떠받쳐서 도로면과 수평을 유지하고 있다. 우기(雨期)에는 이 가옥의 바로 아래까지 물이 차오르고 심하면 무너지기도 한다고 하니 그 엄청난 수량(水量)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관광버스에서 내다본 캄보디아의 서민가옥
똔레삽 호수로 가던 버스가 잠깐 멈춘 관광지에는 커다란 수로가 하나 있었다. 그 물은 장성군 평림댐의 수로처럼 흐르는 물이 아니라 새파란 이끼가 짙게 덮여 있는 고인 물이었다.
이끼가 잔뜩 끼어 있는 고인 물
똔레삽 호수를 관광할 때에는 나룻배 정도의 보트를 이용했다. 보트가 지나가는 수로는 그 폭이 겨우 50m 정도로 좁다. 신기한 것은 보트의 꽁무니에서 스크루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며 나아간다. 간혹 ‘부우우웅!’ 하는 엔진의 거친 소리가 날 때는 뒤쪽에서 버얼건 물보라가 크게 일어났다.
수상 가옥이 몰려 있는 지점에서 보트를 돌렸을 때, 20m 정도 떨어진 수상가옥에서 우리를 향해 손짓하는 분이 있었다. 보트의 선장은 종이가 들어 있는 생수병을 그쪽으로 던졌다. 그러나 생수병은 그분이 서 있는 지점에서 벗어나고 말았다. 상대방은 그것을 건지러 물속으로 들어갔는데, 겨우 허리에 찼다.
똔래샵호수의 수상가옥
똔레삽 호수는 그 면적이 2,700㎢나 되는 동양의 최대라고 자랑한다. 광주광역시의 면적이 501㎢이니 그럴만도 하다. 그러나 호수의 수심은 지극히 얕았다. 호수의 멋진 풍경을 상상했던 꿈은 사라지고 ‘여기에서 멈추면 어쩌나?’하는 걱정이 생겼다.
보트가 지나가는 주변에서 투망을 던져 고기잡이하는 사람을 보았으나 고기가 잡힌 것 같지는 않았고, 수영을 즐기는 사람도 있었지만, 황토 색깔의 물이라 그런지 시원하다거나 재미있을 것 같은 느낌이 전해지지 않는다.
똔래샵호수에서 고기 잡는 사람들
똔레삽 호수의 관광이 끝날 때까지 물가 식물이나 물속에서 사는 동물을 볼 수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흔한 개구리밥 가래 생이가래 부들 마름 물옥잠 미나리 등 물풀도 보이지 아니하였고, 시냇가에서 사는 능수버들과 같은 나무도 없었다. 개구리도 한 마리 본 일이 없다.
똔레삽 호수의 물도 생물이 살기에 좋은 물이 아닌 것 같다.
베트남의 바닷물이나 캄보디아의 민물은 우리나라의 물과는 그 성질이 판이했다. 그 풍부함에 비해 마실 물조차 귀했다. 그런 까닭에 관광버스에는 생수를 싣고 다닌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 아이러니(irony)【명사】① 풍자. 말의 복선(伏線). 반어(反語). 역설. ② 예상 밖의 결과가 빚은 모순이나 부조화. ┈┈• 역사의 ∼. ③ 참다운 인식에 도달하기 위해 소크라테스가 쓴 문답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