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되기 요잇 땅!
드라마를 통해서 학습된 임신에 관한 환상이 있었다. 행복한 부부가 간절히 원하고 기다렸던 임신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연출됐던 흔하디 흔한 그런 장면, 아내를 안고 환희에 찬 남편이 서너 번 빙그르르 돌아준다던가, 서로를 마주 보며 행복하게 눈물을 흘리며 감격해하는... 적어도 그런 모습은 그날의 나에게는 없었다. 물론 그 순간을 상상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내가 바랬던 임신이 그 타이밍은 아니었기에 나에게 찾아온 첫 임신 소식은 몹시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반드시 계획을 하며 진행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때는 임신이 확실하게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무엇보다도 곧 일을 시작하려고 계획했던 나에게 뜻밖에 찾아온 임신소식은 솔직히 반가울 리 없었다. 그러다가 여러 가지 생각을 거듭한 며칠 후, 아직 나오지도 않은 배에 내 손을 얹고서는 도무지 감이 안 오는 그 생명체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했다. 이제는 성인이 되어 사회 초년생으로 열심히 제 몫을 하며 살아가는 큰 딸을 볼 때마다 나를 엄마로 시작하게 해 준 그 아이의 존재가 새삼 고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첫 아이가 나에게 찾아와 주었던 그때가, 내가 엄마가 되는 가장 정확한 타이밍이었다고 믿는다.
많은 것이 처음인 인생을 누구나 살아가지만 나에게 있어서 첫 임신과 출산도 그렇다. 감사하게도 별스러운 입덧도, 걱정이 될만한 증상들도 없이 무난하게 열 달을 보낼 수 있었다. 왠지 엄청 신게 먹고 싶어야 할 것 같고, 한밤중에 한국에서만 먹을 수 있는 군것질거리를 찾거나 아니면 엄동설한에 갑자기 산딸기가 먹고 싶다고 해서 한 두 번쯤은 남편을 곤란하게 했을 수 도 있을, 임산부로서의 특권을 누려보지 못한 게 솔직히 가끔 아쉽기도 하다.
산부인과 의사로부터 진통의 증상과 시간 간격 등을 여러 번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병원에서 가성 진통이라며 한 차례 되돌아온 후 다시 병원을 찾고 나서야 입원할 수 있었다. 그 후 진통하기를 13시간째, 내게 찾아온 최대 난관의 순간이었다. 솔직히 산모만큼 아픈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그 시간 동안 옆을 지키고 있던 남편도 수고로왔을 거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산통을 진통제의 도움 없이 고스란히 경험해 보고 싶었던 나는 13시간의 진통을 온몸으로 고스란히 받아냈었다. 그러다가 너무나 아픈 이 진통이 얼마나 더 갈까 싶어 갑자기 무서워지면서 다음 진통이 올 때마다 온몸이 경직 돼버렸다. 결국은 무통주사를 맞았고 그로 인해 감각을 느낄 수 없었던 나는, 아기를 밀어내야 할 타이밍을 여러 번 놓치고 말았다. 담당의사가 더 이상은 안 되겠다고 생각이 됐던지 결국은 덩치 좋은 간호사 한 명을 내 배위로 올라가게 한 후, 내 배를 그 간호사의 손과 몸의 힘으로 함께 밀어내면서 드디어 우리들의 첫 딸, 규희를 안아 볼 수 있었다. 좀 희귀한(?!) 출산과정이었을지 모르겠지만 신속한 의사의 판단과 수고해 준 간호사 덕분에 얻은 선물 1호를 얻은 경험은 실로 경이로웠다.
출산의 신비스러웠던 기쁨도 잠시, 날마다 벽에 머리를 박는듯한 육아의 현장에 실습 없이 들어선 나는 모든 것을 처음부터 배워나가야만 했다. 콩팥 이식을 했던 남편을 피곤하지 않도록 배려하라는 친정 엄마의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의 당부 때문에 수유와 육아에 지쳤어도, 퇴근해서 나보다 더 힘든 얼굴을 하고 일찍 잠이 들어버린 남편에게 도와달라는 말도 하지 못했던 적도 많았었다. 무얼 어떻게 해주어도 울음을 멈추지 않았던 큰 아이를 안고 그만 나도 같이 울음을 터뜨려버리고 말았을 때 규희가 울음을 그치고 울고 있던 초년생 엄마인 나를 이상하게(?) 올려다본 적도 있었다.
분명히 간호사들에게 잘 배워두었는데 아이에게 젖을 물릴 때마다 잘못해서 그랬는지 젖꼭지가 죄다 헐었고 그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도 어려웠다. 겨우 분만의 고통을 이겨냈는데, 이렇게 곧바로 젖몸살의 고통이 기다릴 줄이야...
피가 나서 상처 부위에 계속 연고를 바르긴 했지만 2-3시간마다 모유를 먹여야 하는 신생아의 배꼽시계에 맞추느라 상처가 채 아물 새가 없이 다시 아이에게 젖을 물려야만 했다.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아기였지만 그 입을 벌려 내 젖꼭지를 찾는 그 조그만 입이 그때마다 얼마나 공포스러웠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란 참... 대단하다. 너무너무너무 아팠지만 아이에게 다시 젖을 내어주는 나를 보며 마침내 나도 그 "위대한 엄마"의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이었을까?라는 걸맞지 않은 생각을 했었다.
온 힘을 다해 빨아대는 아이의 오물거리는 힘찬 입술의 움직임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의 고통쯤 아랑곳하지 않게 되었다. 한밤중에 부스스 일어나 눈도 뜨지 못하고 불도 켜지 않은 채 마치 무의식 중에 의식을 행하듯 우는 아이를 안고, 가슴을 열어 다시 그 짓물러진 젖꼭지를 아이의 입에 물리기를 얼마나 수없이 반복하였던가...
그래도 우리 규희가 나에게 눈을 맞추고 환하게 웃어주면 그걸로 다 됐었다. 그게 뭐라고 그것만으로도 많은 것들을 참아내는 게 힘들다고 생각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많이 웃고, 많이 울고, 또 많이 먹으며 서둘러 찾아온 우리의 선물 1호는 그렇게 무럭무럭 자라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