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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essed To Bless Oct 30. 2022

"파는 게 아니에요!"

너희 셋이 잠든 사이

규희의 돌잔치를 끝내자마자 우리 가족은 매사추세츠로 이사를 했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남편과 달리 나는 익숙한 것에 머물러 있고 싶어 하고 그다지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 성향이다. 양가 부모님이 건강하신 동안은 다른 곳에서 일을 해보고 싶다고 남편이 말했을 때만 해도 별로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부지런히 다른 지역의 직장들을 열심히 알아보고 인터뷰를 다니던 남편은 결국은 하버드와 MIT  명문대로 유명한 보스턴 지역으로 직장을 옮겼다. 


미국으로 이민 와서 10년을 넘게 살았던 메릴랜드주가 어떻게 보면 미국에서의 내 고향이기도 한 셈이다.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친정식구와 친구들, 그리고 지인들의 곁을 떠나 일가친척 없는 그곳에서의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힘든 일이었다. 새직장에서 새로운 업무로 분주하게 지내야 했던 남편이 출근을 하고 나면 나는 어린 규희를 데리고 근처 놀이터나 공원을 찾았다. 규희가 유난히 보채는 날에는 선물 받은 한국식 포대기에 아이를 둘러업고 동네를 이리저리 걷다 보면 그런 우리 둘의 모습이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는 행인들도 종종 있었다. 


하루 종일 규희의 알 수 없는 옹알이를 들으며 거의 혼잣말처럼 대화를 하다가 지쳐갈 때쯤이면 문득문득 쓸쓸하고 외롭다고 느꼈다. 그때는 그런 나를 다독여 주는 법도 잘 알지 못했었다. 


새로운 보금자리가 조금씩 안정되어 갔고 지인들도 하나둘씩 생기면서 낯섦도 서서히 물러가고 있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규희가 네 살이 되던 해 둘째 진희가 태어났고, 그 후 4년 후에 막내 송희가 태어났다. (나중에 막내 연희가 우리에게 올 줄 은 꿈에도 몰랐다) 그렇게 우리 부부가 원했었던 세 아이의 부모가 되었다.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쁜 일상을 살면서 내일 남편의 도시락은 뭐가 좋을지, 오늘 저녁 메뉴를 뭘로 할지 같은 하찮은 걱정 따위는 차라리 쉽다. 좋은 부모가 되고 싶은 막연한 마음은 있었지만 날마다 아이들의 행동과 정서를 어떻게 다루고 대해주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하는 일은 언제나 어려웠다. 


게다가 아이들 나이가 터울이 좀 있어서 첫 아이 기저귀를 떼는가 싶으면 다시 둘째와 씨름해야 했고, 이제 끝났다 싶었는데 막내와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다. 또한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엄마들이 라이드를 해야 하는 일이 많다. 텔레비전에서 종종 어린이집 차가 집압까지 와서 아이들을 픽업하고 데려다주는 장면을 볼 때마다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하지만 덕분에 주옥같은 아이들과의 대화가 주로 차 안에서 일어나는 건 감사하다) 


가장 딱 할 때가 아이가 아플 때다. 충분히 쉬어 주어야 하고 외출을 삼가야 하는 아픈 아이를 데리고 다른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어야 할 때가 그렇다. 설상가상으로 날씨까지 안 좋으면 난감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양가 부모님이 멀리 떨어져 사시는 우리 같은 경우에는 부모님들의 도움이 그나마 그림의 떡인 것이다. 


비록 아이들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내게는 세 아이와 관련해 잊지 못할 기억 한 가지가 있다. 며칠 째 고열에 시달려 힘들어하던 둘째 진희를 데리고 학교에서 규희를 픽업해 와야만 했다. 설상가상으로 마침 우유랑 계란 등의 식료품이 똑 떨어져 할 수 없이 슈퍼에 가야 했는데 필요한 몇 가지만 얼른 장을 보고 서둘러 집에 올 심산이었다. 그런데 슈퍼에 도착해 보니 세 아이들이 죄다 잠이 들어버렸던 것이다. 곤란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일단 입술을 질끈 깨물고 늘 차에 가지고 다니던 어린이용 이불을 카트 바닥에 깔았다. 먼저 큰아이 규희를 눕혀놓고, 감기가 옮겨 갈까 봐 아픈 진희를 엇갈려 눕히고는 입고 있던 나의 재킷을 벗어 덮어주었다. 이 와중에도 천사처럼 쌔근거리며 잘도 자고 있던 막내 송희를 카싯에(carseat) 있는 그대로 카트 상단부에 올려놓았다. 나는 곧바로 유제품 코너로 돌진했다. 매의 눈으로 사야 할 것들을 빠르게 찾고 있는데 어느 노신사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한눈에 보아도 그는 인자해 보였고 얼굴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 


"안녕하세요 아기 엄마, 이 아이들은 얼마죠?" (Hello mom, how much are these?)


단번에 그의 유쾌한 농담이란 걸 알아차렸고 비록 마음은 급했지만 가능한 친절하게 대답을 했다

“오우 아니요, 이 아이들은 파는 게 아니에요. 게다가 값을 매길 수도 없고요!"

(“Oh no~ They are not for sale. Moreover they are priceless!")


내 대답이 마음에 드셨는지 카트 안에 구겨 넣은(?!) 우리 아이들에게 눈을 떼지 못한 채 말을 이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군요! "(“I can see what you mean!”)


그리고는 시선을 나에게로 옮기시더니 그의 손이 조심스럽게 내 어깨를 가볍게 토닥여 주었다. 

"아기 엄마,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하고 있어요. 쉽지는 않다는 걸 알고 있죠. 그렇지만 당신은 반드시 소중한 열매를 얻게 되실 겁니다. 그러니 힘내세요!" 

( “Mom, I want you to know that you are doing the most important job in the world. I know it is not easy but you shall receive precious fruits! So keep up the good work!”)


지난 며칠 동안 아픈 진희를 돌보느라 잠을 설치고 송희를 수유해야 해서 그마저도 밤중에 몇 번씩 일어나야 했던 나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노신사의 그 말을 듣는 순간, 피곤했던 나의 무거운 몸속에 무언가 아주 포근하고 따스한 것이 스며들면서 나를 끌어올려주는 듯 한 알 수 없는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눈물이 나오려는 걸 참아야 할 만큼 뭉클한 감정이 나를 붙들었다. 그런 그의 말이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잘 알지 못한 채 그 노신사는 이렇게 말해주고 돌아섰다. 


"당신을 축복합니다~!"

(“Bless your heart!”)


마저 장을 보고 차로 돌아와 세 아이 들을 한 명씩 다시 차에 태웠다.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깨지 않았다. 조금 전보다 더 차가워진 기운을 느끼며 혹시 눈이 오지 않을까.. 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소담스러운 눈송이들이 하나둘씩 차창에 내려앉기 시작했다. 부지런히 운전하며 집으로 가는 길에 불끈 쥔 주먹 대신 양손으로 핸들을 꼬옥 잡으며 나도 모르게 혼자 되뇌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일을 하는 나는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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